나는 몸이 전부일까, 하나님을 닮았다는 건 무슨 뜻이고, 첫 사람은 정말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을까?
칼빈은 타락하기 전 처음 사람의 모습을 그린다. 먼저 영혼이 단순한 숨결이 아니라 죽지 않는 실체임을 양심, 지성, 성경으로 증명한다(2절). 이어서 하나님의 형상이 자리한 곳은 영혼이라고 말한다. 그 형상의 내용은 그리스도가 회복하시는 지식·의·거룩함에서 가장 잘 보인다고 밝힌다(3~4절). 영혼이 하나님 본질의 조각이라는 마니교식 생각은 하나님을 악의 원천으로 만든다며 물리치고, 영혼은 무에서 창조되었다고 말한다(5절). 그다음 철학자들의 복잡한 영혼론을 걷어내고 영혼을 지성과 의지라는 두 기능으로 단순하게 정리한다(6~7절). 끝으로 처음 아담은 자유로운 선택으로 영생에 이를 수 있었지만 스스로 넘어졌으므로 책임은 아담에게 있다고 결론짓는다. 그 후손은 그 상태를 잃었다는 말로 2권(죄와 자유의지)으로 가는 길을 연다(8절).
1. 절별 정리
2. 영혼은 실체가 있고 죽지 않는다 (절 제목이 발췌에 없어 정리자가 붙임)
칼빈은 성경에서 '영'이라는 말이 홀로 쓰이면 '영혼'과 같은 뜻이라고 정리한다. 그리스도와 스데반은 죽을 때 자기 영을 맡겼다. 이는 몸을 떠난 영혼을 하나님이 영원히 지키신다는 뜻이다. 어떤 이들은 영혼이 하나님이 몸에 불어넣은 숨결이나 기운일 뿐이고 실체(그냥 작용이 아니라 실제로 '있는' 존재)는 없다고 말한다. 칼빈은 이를 어리석은 상상이라 보고 먼저 사람 안에서 증거를 찾는다. 선악을 가리며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떠는 양심이 있다. 자연의 비밀을 캐고, 과거를 바탕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정의를 생각하는 지성도 있다. 이런 것은 몸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잠든 사이 일어나지 않은 일을 떠올리는 것도 짧게 덧붙인다. 다음으로 성경을 든다. 성경은 몸을 흙집과 장막이라 부르고 영혼의 구원과 심판을 말한다. 예수님도 몸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다. 칼빈은 이 주제가 어렵지 않다며 사두개인의 오류를 언급하고 짧게 마친다.
- '영'이 홀로 쓰이면 '영혼'과 같은 뜻
- 영혼은 숨결·기운이 아니라 실체
- 양심은 불멸하는 영혼의 증거
- 하나님을 생각하는 지성은 몸을 넘어섬
- 성경은 영혼을 사람의 주된 부분으로 봄
(표 정정: 위 다섯째 줄은 '고린도후서 7:1' 하나로 읽는다. 칼빈이 든 구절은 고린도후서 7:1이다.)
3.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칼빈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졌다는 사실도 영혼이 실체임을 보여 준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의 겉모습에도 비친다. 사람만 얼굴을 들어 하늘을 본다는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의 시구를 형상에 넣어도 칼빈은 크게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형상의 본래 자리는 영혼이고 형상은 영적이라는 원리는 지켜야 한다고 한다. 오지안더(16세기 독일 루터파 신학자)는 형상을 몸까지 넓혀, 장차 그리스도가 입으실 몸이 아담의 몸의 본보기였다고 주장했다. 칼빈은 두 가지로 반박한다. 그러면 성자가 성령의 형상이 되어 삼위의 구별이 무너진다. 또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에 성자도 포함되니 성자가 자기 자신의 형상이 되는 모순이 생긴다. 어떤 해석자들은 '형상'은 영혼의 본질, '모양'은 그 성질이라고 나눈다. 칼빈은 이것이 같은 뜻을 두 번 말하는 히브리식 반복일 뿐이라고 보고, 바로 다음 절(1:27)에 '형상'만 두 번 나온다는 점을 근거로 든다. 칼빈의 정리는 이렇다. 형상은 사람을 다른 생물보다 뛰어나게 하는 탁월함 전체이며, 타락 전 아담의 순전함을 가리킨다. 그 주된 자리는 영혼이지만 몸에도 어느 정도 미친다.
- 형상의 본래 자리는 영혼, 형상은 영적
- 겉모습에도 영광이 비침은 인정
- '형상'과 '모양'은 같은 뜻의 반복
- 오지안더의 '몸 원형론'은 삼위 구별을 흐림
- 형상은 타락 전 아담의 순전함 전체
보충: 아담의 순전함은 네 가지로 그려진다. 바른 이해가 가득했고, 감정이 이성의 테두리 안에 있었고, 감각이 질서 있게 다스려졌고, 자기 탁월함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겼다. 오지안더가 "형상은 영혼이 아니라 흙에서 온 아담 전체"라고 하자 칼빈은 이렇게 답한다. 사람 전체를 '죽을 인생'이라 불러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 그러니 영혼을 염두에 두고 사람을 형상이라 불러도 모순이 아니다. 천사도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어졌다. 그런데도 모세가 이 호칭을 사람에게 쓴 것은 눈에 보이는 피조물 가운데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높이려는 것이다.
4. 하나님의 형상의 참된 본질
칼빈은 형상이 무엇인지 가장 잘 보이는 곳이 '회복'이라고 말한다. 아담은 반역으로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형상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았지만 너무 부패해서 남은 것도 끔찍하게 일그러졌다. 그래서 구원은 그리스도가 형상을 회복하시는 데서 시작되고, 그분은 '둘째 아담'이라 불린다. 바울은 중생(성령으로 새로 태어남)의 목적이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바꾸는 데 있다고 하며, 새 사람의 내용으로 '지식'과 '참된 의와 거룩함'을 든다. 따라서 형상은 정신의 빛, 마음의 올바름, 모든 부분의 건강함에서 드러난다. 칼빈은 이 목록이 일부로 전체를 말하는 제유법임을 인정한다. 그래도 창조 때 으뜸이던 것이 회복에서도 으뜸이라는 원리는 흔들리지 않는다고 본다. 칼빈은 형상을 '타락 전 아담에게 드러난 인간 본성의 완전한 탁월함'으로 정의한다. 지금은 거듭난 사람에게 일부만 보이고, 완전한 빛은 하늘에서 드러난다. 끝으로 두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하나는 영혼의 지성·의지·기억을 삼위일체의 거울로 본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색이고, 다른 하나는 형상을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권으로 보는 견해다.
- 형상은 회복에서 가장 잘 보인다
- 타락 후 형상은 소멸이 아니라 끔찍한 기형
- 구원은 그리스도의 형상 회복에서 시작
- 형상의 내용은 지식·의·거룩함
- 완전한 회복은 하늘에서
보충: 이 정의로 몸 모양을 내세운 오지안더의 주장은 저절로 무너진다. 남자만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라 부르는 고린도전서 11:7은 문맥상 사회 질서에 관한 제한된 표현이라고 칼빈은 본다.
5. 영혼에 관한 마니교도들의 오류
칼빈은 세르베투스가 되살리려 한 마니교의 생각을 다룬다. 마니교는 3세기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종교다. 마니교도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생기를 불어넣으셨다는 말씀을 근거로 영혼이 하나님 본질의 한 조각이라고 했다. 칼빈은 그렇다면 사람의 변덕, 무지, 악한 욕망, 연약함이 모두 하나님 본성의 탓이 된다고 반박한다. 하나님을 조각내 사람마다 나눠 갖는 셈이 되니 끔찍한 결론이라는 것이다. 바울이 시인 아라투스를 인용해 우리를 '하나님의 소생'이라 한 것도 본질이 같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재능 면에서 닮았다는 뜻이다. 따라서 영혼은 천사처럼 '창조된' 존재다. 하나님 본질이 흘러든 것이 아니라 무에서 생겨난 것이다. 오지안더도 '본질적 의'와 묶어서만 형상을 인정했다. 칼빈은 하나님이 본질을 붓지 않으셔도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자기와 하나 되게 하실 수 있다며, 이 주장에서 마니교 냄새가 난다고 지적한다.
- 영혼은 하나님 본질의 조각이 아니다
- 그렇다면 사람의 악이 하나님 탓이 됨
- '하나님의 소생'은 재능에서 닮았다는 뜻
- 영혼은 무에서 창조됨
- 회복은 본질 주입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영혼에 관한 철학자들의 견해들에 대한 비판, 6-8절
6. 영혼과 그 기능들
칼빈은 영혼의 정의를 철학자에게서 구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말한다. 플라톤 말고는 영혼의 불멸하는 실체를 인정한 사람이 거의 없다. 플라톤이 더 정확한 것도 영혼 안에 신의 형상이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성경에 따르면 영혼은 형체 없는 실체다. 공간에 갇히지 않지만 집에 살듯 몸 안에 살면서 몸을 살리고, 일상의 의무를 이끌고, 사람을 깨워 하나님을 공경하게 한다. 이 마지막 면은 타락으로 흐려졌지만 흔적은 남아 있다. 명예를 걱정하는 것은 수치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고, 수치심은 존귀함을 귀히 여기는 데서 나온다. 그 뿌리에는 의를 위해 태어났다는 깨달음, 곧 '종교의 씨앗'이 있다. 영혼의 가장 중요한 일은 하늘의 생명을 사모하는 것이고, 하나님께 가까이 갈수록 이성이 있음을 스스로 증명하게 된다. 감각적 영혼과 이성적 영혼이 따로 있다는 '두 영혼설'은 물리친다. 사람 안의 갈등은 본성이 부패해서 생긴 것이지 영혼이 둘이라는 증거가 아니라는 이유다.
- 철학으로는 영혼을 정의할 수 없다
- 영혼은 몸에 깃들어 삶을 이끈다
- 수치심 뒤에 종교의 씨앗이 있다
- 영혼의 최고 일은 하늘 생명 사모
- 두 영혼설 거부: 갈등은 부패 탓
보충: 철학자들의 세밀한 영혼 분류가 있다. 감각 쪽은 다섯 감각, 감각을 모으는 공통 감각, 상상(판타시아), 이성, 오성으로 나뉜다. 욕구 쪽은 의지, 분노, 정욕으로 나뉜다. 칼빈은 이 분류가 사실이거나 그럴듯하고 공부해도 좋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경건을 세우는 데는 단순한 정의로 충분하고 오히려 헷갈릴 수 있다며 지나간다. 철학자들은 영혼을 지성과 욕구로 나누고, 욕구가 이성을 따르면 '의지', 이성의 멍에를 벗으면 '격정'이라 부른다. 결국 그들은 사람에게 스스로를 다스릴 이성이 있다고 가정한다.
7. 영혼의 두 가지 기능
칼빈은 철학자들이 타락의 형벌로 생긴 본성의 부패를 모른다고 비판한다. 그래서 창조 때의 상태와 타락 후의 상태를 뒤섞었다는 것이다. 칼빈 자신은 영혼을 지성(오성)과 의지 두 기능으로 단순하게 본다. 지성은 사물을 옳다·그르다로 가려낸다. 의지는 지성이 좋다고 한 것을 고르고 따르며, 나쁘다고 한 것은 피한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세밀한 논의는 따질 필요가 없다고 본다. 그 논의는 마음 자체는 움직이지 않고 선택으로만 움직이며, 그 선택은 '욕구적 오성'이라는 것이다. 지성이 영혼의 지도자이고 의지는 지성의 판단을 기다린다는 정도면 충분하며, 아리스토텔레스도 결국 비슷한 말을 한다. 칼빈은 감각을 지성 쪽에 포함하고, 철학자들이 쓰는 '욕구'보다 일상어인 '의지'를 쓴다. 지성이 의지를 얼마나 확고하게 이끄는지는 다른 곳(2권 2장)에서 다루겠다고 미룬다.
- 철학자들은 창조와 타락 상태를 혼동
- 영혼은 지성과 의지 두 기능
- 지성은 분별, 의지는 선택과 따름
- 감각은 지성 쪽에 포함
- '욕구'보다 '의지'라는 말을 씀
8. 자유 선택권과 아담의 책임
하나님은 영혼에 선악과 옳고 그름을 가리는 지성을 주시고 이성의 빛을 안내자로 주셨다. 철학자들은 이 부분을 '헤게모니콘', 곧 '이끄는 부분'이라 불렀다. 하나님은 여기에 선택을 맡은 의지를 붙이셨다. 처음 상태에서 이 능력들은 땅의 삶을 이끌기에 충분했고, 하나님과 영원한 복에까지 올라갔다. 의지도 이성을 온전히 따랐다. 그래서 아담은 원하기만 하면 자유 의지로 영생에 이를 수 있었다. 칼빈은 여기서 하나님의 예정을 끌어들이지 않는다. 지금 다루는 것은 무엇이 일어날 수 있었는가가 아니라 사람 본성이 어떤 상태였는가이기 때문이다. 아담은 설 수 있었지만 자기 의지로 넘어졌다. 쉽게 넘어진 것은 의지가 양쪽으로 기울 수 있었고 끝까지 견디는 힘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선택은 전적으로 그의 자유였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죄를 지을 수 없게 만드셨어야 한다는 불평에 칼빈은 이렇게 답한다. 하나님께는 그럴 의무가 없다. 왜 견디는 힘을 주지 않으셨는지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획이니 캐묻지 않는 것이 지혜다.
- 하나님은 지성과 의지를 짝지어 주심
- 처음 아담은 영생에 이를 능력이 있었다
- 아담은 자기 의지로 넘어졌다
- 처음 상태와 후손의 상태는 다르다
- 견디는 힘을 안 주신 이유는 감추어짐
보충: 철학자들은 이 변화를 몰라 폐허 속에서 온전한 건물을 찾은 셈이다. 그들은 자유 선택이 없으면 사람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고 덕과 악의 구별도 사라진다고 보았다. 칼빈은 사람이 변하지 않았다면 좋은 생각이었겠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 하면서 철학과 타협해, 영적으로 망한 사람에게서 여전히 자유 선택권을 찾는 이들도 같은 잘못을 한다. 이 논의는 2권으로 미룬다. 처음 사람과 그 후손의 상태는 전혀 다르다. 후손은 아담에게서 부패와 유전되는 오염을 물려받았다. 아담의 의지가 약했다는 핑계도 통하지 않는다. 그만큼 받고도 스스로 죽음을 택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다.
2. 오해와 반론
| 입장 | 주장 | 칼빈의 답 | 근거 구절 |
|---|---|---|---|
| 영혼을 '기운'으로 보는 이들 | 영혼은 하나님이 불어넣은 숨결·힘일 뿐 실체가 없다 | 양심, 하나님을 아는 지식, 몸을 넘어서는 지성, 그리고 성경이 실체임을 보여 준다 | 마태복음 10:28, 누가복음 16:22-23, 히브리서 12:9 마태복음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누가복음 16:22-23 22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23그가 음부에서 고통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히브리서 12:9 또 우리 육신의 아버지가 우리를 징계하여도 공경하였거든 하물며 모든 영의 아버지께 더욱 복종하며 살려 하지 않겠느냐 |
| 사두개인 | 천사도 영도 없다 | 성경이 오류로 기록한 생각이다 | 사도행전 23: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
| 오지안더 ① | 형상은 몸과 영혼 모두이고, 성육신할 그리스도의 몸이 아담 몸의 원형이다 | 성자가 성령의 형상이 되어 삼위 구별이 무너지고, 성자가 자기 자신의 형상이 되는 모순이 생긴다. 형상은 영적이다 | 창세기 1:26-27 26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 '그럴듯한' 해석 | 아담이 하나님의 유일한 형상인 그리스도와 맞았기 때문에 형상이다 | 확실한 근거가 없다 | (직접 인용 없음) |
| 형상·모양 구분론 | 형상(첼렘)은 영혼의 본질, 모양(데무트)은 그 성질이다 | 같은 뜻을 두 번 말하는 히브리식 반복이다 |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 오지안더 ② | 형상은 영혼이 아니라 흙에서 온 아담 전체다 | 사람 전체를 '죽을 인생'이라 해도 영혼은 죽지 않는다. 영혼을 두고 사람을 형상이라 불러도 모순이 아니다 | (직접 인용 없음) |
| 아우구스티누스의 사색 | 지성·의지·기억이 삼위일체를 비추는 거울이다 | 건전한 해석이라 할 수 없다 | (직접 인용 없음) |
| 통치권설 | 형상은 만물을 다스리는 권한이다 | 형상은 사람 바깥이 아니라 영혼의 내적 선함에서 찾아야 한다 | 골로새서 3:10, 에베소서 4:24 (4절의 정의)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
| 고린도전서 11:7의 문자적 적용 | 남자만 하나님의 형상이다 | 문맥상 사회 질서에 관한 제한된 표현이다 | 고린도전서 11:7 남자는 하나님의 형상과 영광이니 그 머리를 마땅히 가리지 않거니와 여자는 남자의 영광이니라 |
| 마니교·세르베투스 | 영혼은 하나님 본질의 한 조각이다 | 그러면 사람의 악이 하나님 탓이 된다. 영혼은 무에서 창조되었다 | 창세기 2:7, 사도행전 17:28, 전도서 12:7 창세기 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사도행전 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존재하느니라 너희 시인 중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 전도서 12:7 흙은 여전히 땅으로 돌아가고 영은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기억하라 |
| 오지안더 ③ | 그리스도의 본질이 부어지는 '본질적 의' 없이는 형상도 없다 | 하나님은 본질을 붓지 않고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를 자기와 하나 되게 하신다 |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
| 철학자들(플라톤 외) | 영혼의 기능은 현세의 삶에만 묶여 있다 | 성경은 영혼이 형체 없는 불멸의 실체라고 가르친다 | (2절의 구절들) |
| 두 영혼설 | 감각적 영혼과 이성적 영혼이 따로 있다 | 내면의 갈등은 본성이 부패해서 생긴 것이지 영혼이 둘이라는 증거가 아니다 | (직접 인용 없음) |
| 철학자들의 자유 선택론 | 자유 선택이 없으면 이성적 동물이 아니고 덕과 악의 구별도 사라진다 | 창조 상태와 타락 후 상태를 혼동했다. 폐허에서 건물을 찾는 격이다 | (직접 인용 없음, 2권 2장에서 자세히) |
| 철학과 타협하는 그리스도인 | 타락한 사람에게도 자유 선택권이 있다 | 영적으로 망한 사람에게서 그것을 찾는 것은 어리석다 | (직접 인용 없음, 2권 2장) |
| 하나님을 탓하는 반론 | 아담의 의지가 약했으니 변명할 수 있다. 하나님이 죄 지을 수 없게 만드셨어야 한다 | 하나님께는 그럴 의무가 없다. 많이 받고도 스스로 넘어진 아담에게 변명의 여지가 없다. 이유는 하나님의 감추어진 계획이다 | (직접 인용 없음) |
3. 용어
- 영혼
- 하나님이 지으신, 몸과 구별되며 죽지 않는 사람의 부분.
- 하나님의 형상
- 사람이 하나님을 닮도록 지어진 것. 칼빈은 그 중심을 영혼의 바른 앎, 의로움, 거룩함으로 본다.
- 형상과 모양(첼렘·데무트)
- 창세기 1:26에 나오는 두 히브리어 단어. 칼빈은 같은 뜻을 반복한 것으로 본다.
- 중생
- 성령으로 새로 태어나는 것. 칼빈은 그 목적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데 있다고 본다.
- 제유법
- 일부를 말해서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 방식.
- 마니교
- 3세기 페르시아에서 시작된 종교. 영혼을 신적 존재의 조각으로 여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본질적 의
- 그리스도의 신적 본질이 우리 안에 흘러들어야 의로워진다는 오지안더의 주장.
- 오성(지성)
-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을 가려내는 영혼의 능력. 칼빈은 영혼의 '지도자'라 부른다.
- 의지
- 지성이 좋다고 한 것을 고르고 따르는 영혼의 능력.
- 자유 선택권
- 선과 악 가운데 스스로 고를 수 있는 능력. 칼빈은 타락 전 아담에게 온전히 있었다고 본다.
4. 청년의 삶으로
칼빈의 답: 하나님의 형상은 겉이 아니라 영혼 안의 선함에 있고, 그것은 그리스도가 회복하신다.
칼빈의 답: 처음 사람의 순전함에는 자기 탁월함을 하나님의 선물로 여기는 마음이 들어 있었다.
칼빈의 답: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떠는 양심은 사람이 몸 이상의 존재라는 증거다.
칼빈의 답: 내면의 갈등은 창조가 아니라 타락에서 왔다. 하나님을 탓할 수 없고, 회복은 성령의 일이다.
칼빈의 답: 그런 자유는 타락 전 아담의 것이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새로움이다.
5. 이 편의 결론
- 사람은 몸과 구별되는, 죽지 않지만 창조된 영혼을 가진 존재다.
- 하나님의 형상은 영혼에 자리하며, 그 내용은 그리스도가 회복하시는 지식·의·거룩함에서 가장 잘 보인다.
- 영혼은 하나님 본질의 조각이 아니라 무에서 창조되었고, 회복도 성령의 은혜와 능력으로 이루어진다.
- 영혼은 지성과 의지로 이루어지며, 처음 아담은 이 능력으로 영생에 이를 수 있었다.
- 아담은 자기 의지로 넘어졌으니 책임은 사람에게 있고, 후손은 그 부패를 물려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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