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제1권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

1권 6편 삼위일체 2 · 반론에 답함

존 칼빈 『기독교강요』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 제1권 13장 16절 후반~29절 (생명의말씀사 『기독교강요』 상, 169~192쪽). 발췌에서 책 178~179쪽(22절 끝~23절 앞부분)이 빠져 있다. 191~192쪽의 14장 1절 앞부분은 다음 편(창조론) 재료로 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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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눈에 보기

하나님이 한 분이라면서 왜 셋이라고 하고, 셋이면 결국 신이 셋 아닌가요?

칼빈은 먼저 세례 명령(마태복음 28:19)에서 출발한다. 우리는 한 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데, 그 이름이 성부·성자·성령이므로 세 분은 모두 참 하나님이다(16절). 이어서 성경이 세 분을 분명히 구별한다는 것을 보이고(17절), 그 구별을 '순서'와 '관계'로 설명한다(18~20절). 결론은 이렇다. 본질은 하나이고 나뉘지 않는다. 각 위격은 그 하나의 본질 안에서 고유한 특성으로 구별된다. 21절부터는 이 결론을 공격하는 사람들에게 답한다. 오직 성경만 기준으로 삼으라는 원칙을 세운 뒤, 세르베투스와 "성부만이 본질을 가진 참 하나님"이라는 주장을 반박한다(22~26절). 끝으로 이단들이 끌어다 쓴 교부들의 글이 실제로는 정통 삼위일체를 지지한다는 것을 보이며 마무리한다(27~29절).

1. 절별 정리

16. (절 제목과 앞부분은 앞 편에 있음) 한 세례, 한 믿음, 한 하나님

하나님은 한 분이실 뿐 아니라 삼위 안에서 자신을 더 가깝게 알려 주셨다. 칼빈은 바울이 묶어 말한 '한 하나님, 한 믿음, 한 세례'(에베소서 4:5)를 근거로 추론한다. 세례가 하나이니 믿음이 하나이고, 믿음이 하나이니 하나님도 한 분이다. 그런데 예수님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마태복음 28:19). 그러니 우리가 세례 받는 그 이름의 주인, 곧 성부·성자·성령은 모두 한 분 참 하나님이다. 믿음은 이것저것 기웃거리는 일이 아니라 한 하나님께 붙어 있는 것이므로, 믿음의 대상이 셋이라면 신도 셋이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하지만 세례는 하나이므로 그럴 수 없다. 이 결론에 비추어 칼빈은 두 오류를 짚는다. 하나는 성자를 '신적'이라 부르면서도 하나님의 본질은 빼 버린 아리우스파이다. 다른 하나는 성령을 사람에게 부어지는 선물 정도로만 본 마케도니우스파이다.

  • 세례가 하나 → 믿음이 하나 → 하나님이 한 분
  • 세례는 성부·성자·성령 '한 이름'으로 받는다
  • 그러므로 세 분 모두 참 하나님이다
  • 아리우스파: 성자에게서 하나님의 본질을 뺌
  • 마케도니우스파: 성령을 은사로만 봄
에베소서 4:5한 주, 한 믿음, 한 세례. 추론의 출발점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마태복음 28:19세례의 '한 이름'이 성부·성자·성령임을 보여 줌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이사야 11:2지혜·총명·경외가 성령에게서 나옴. 성령은 은사의 근원이지 은사 자체가 아님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고린도전서 12:11은사는 여러 가지여도 성령은 '같은 한 성령'. 성령은 나뉘지 않음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17. 삼위이신 하나님

성경은 하나님이 한 분이라고 하면서도 성부와 말씀(성자), 말씀과 성령을 분명히 구별한다. 이 신비는 크기 때문에 깊은 공경과 신중함이 필요하다. 칼빈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말을 높이 평가한다. 그 뜻을 풀면 이렇다. "한 분을 생각하면 곧 세 분의 빛에 둘러싸이고, 세 분을 구별해 보면 곧 다시 한 분께 돌아간다." 그러니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생각에서 멀어지게 만드는 삼위일체론은 안 된다. 그렇다고 '성부·성자·성령'이라는 이름이 아무 의미 없는 것도 아니다. 그 이름들은 진짜 구별을 가리킨다. 칼빈은 그 증거를 차례로 든다.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성자는 자기를 증언하시는 분이 '따로' 계시다고 하셨다. 아버지는 말씀으로 만물을 지으셨다. 이 땅에 와서 죽고 부활하신 분은 성부가 아니라 보내심을 받은 성자이시다. 이 구별은 성육신 때 생긴 것이 아니다. 성자는 그 전부터 아버지 품에 계셨다. 성령도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분이고, 예수님이 '다른' 보혜사라 부르신 분이다.

  • 구별은 하지만 분리는 하지 않는다
  • 한 분↔세 분을 오가며 생각하라(그레고리우스)
  • 세 이름은 실제 구별을 가리킨다
  • 성자의 구별은 성육신 이전부터 영원하다
  • 성령은 성부와도, 성자와도 구별된다
스가랴 13:7하나님이 '내 짝 된 자'를 부르심. 앞 편에서 인용한 구절로, 성자가 성부와 구별됨을 보여 줌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칼아 깨어서 내 목자, 내 짝 된 자를 치라 목자를 치면 양이 흩어지려니와 작은 자들 위에는 내가 내 손을 드리우리라
요한복음 5:32예수님을 증언하는 '다른 이'가 계심. 성부와 성자의 구별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요한복음 8:16예수님이 혼자가 아니라 보내신 아버지와 함께하심. 같은 논지
만일 내가 판단하여도 내 판단이 참되니 이는 내가 혼자 있는 것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가 나와 함께 계심이라
요한복음 1:3만물이 말씀으로 지어짐. 성부가 말씀과 구별되어야 가능한 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히브리서 11:3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짐. 같은 논지 (번역서 OCR 표기 '히 끄:3'은 11:3으로 읽음)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요한복음 1:18성자가 '아버지 품속에' 계심. 성육신 이전부터 구별됨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7:5창세 전에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광. 영원한 구별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요한복음 15:26성령이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심'. 성령과 성부의 구별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부터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언하실 것이요
요한복음 14:26아버지가 보내실 성령. 같은 논지(참조 구절)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요한복음 14:16'다른' 보혜사. 성령과 성자의 구별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어디까지나 구별(distinction)이지 분리(division)는 아니다.칼빈, 『기독교강요』

18. 성부, 성자, 성령이 서로 구별되심

칼빈은 이 구별을 사람의 일에 빗대어 설명하는 것을 매우 조심스러워한다. 옛 교부들도 비유를 쓰긴 했지만 스스로 그 비유가 딱 맞지 않는다고 인정했다. 잘못된 비유는 악의를 품은 사람에게 비방거리를 주고, 모르는 사람은 착각에 빠뜨린다. 그래도 성경에 분명히 나온 구별에 대해 입을 다물 수는 없다. 성경이 보여 주는 구별은 이렇다. 모든 일의 시작과 근원은 성부께 있다. 지혜와 계획, 질서 있는 실행은 성자께 있다. 일을 이루는 힘과 효력은 성령께 있다. 영원 안에는 앞뒤가 없다. 하지만 순서를 생각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성부를 먼저, 그에게서 나신 성자를 다음으로, 두 분에게서 나오시는 성령을 마지막으로 생각한다. 그래서 "성자는 성부로부터, 성령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 말한다. 로마서 8장은 같은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예수를 살리신 이의 영'이라고도 부른다. 이것이 그 증거이다.

  • 인간적 비유는 신중하게, 되도록 피한다
  • 성부: 근원 / 성자: 지혜·질서 / 성령: 능력·효력
  • 영원에는 앞뒤가 없지만 '순서'는 있다
  • 성령은 성부와 성자 모두에게서 나오신다
  • 같은 성령이 아버지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
로마서 8:9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 부름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로마서 8:11같은 성령을 '예수를 살리신 이(성부)의 영'이라 부름. 두 분 모두의 영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베드로전서 1:11선지자들 속에서 예언하게 하신 분이 '그리스도의 영'
자기 속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 받으실 고난과 후에 받으실 영광을 미리 증언하여 누구를 또는 어떠한 때를 지시하시는지 상고하니라
베드로후서 1:21선지자들이 성령에 이끌려 말함. 성부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같은 영임을 보여 주는 참조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

19. 성부, 성자, 성령의 상호관계

이런 구별은 하나님이 완전히 한 분이시라는 사실과 부딪치지 않는다. 성자는 성부와 같은 성령을 함께 가지시므로 성부와 한 하나님이다. 성령은 성부와 성자의 영이므로 두 분과 상관없는 다른 존재가 아니다. 각 위격(구별되는 '한 분 한 분'을 가리키는 신학 용어)은 고유한 특성을 지니면서도 신적 본성 전체를 온전히 가지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나는 아버지 안에, 아버지는 내 안에"라고 말씀하셨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설명을 빌린다. '성부·성자'라는 이름은 서로의 관계를 나타내는 말이지 본질 자체를 나타내는 말이 아니다. 이 설명으로 교부들의 엇갈려 보이는 말도 정리된다. "성부가 성자의 시작이다"라는 말은 관계를 두고 한 말이다. "성자는 스스로 신성을 가지신다"는 말은 성자 그 자체를 두고 한 말이다. 칼빈은 이 이상 교묘하게 파고들다 헤매기보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관계' 설명에서 멈추는 것이 안전하다고 말한다.

  • 구별이 있어도 한 분이심은 깨지지 않는다
  • 각 위격 안에 신성 전체가 온전히 있다
  • 성부는 성자 안에, 성자는 성부 안에
  • 성부·성자는 '관계'의 이름이다(아우구스티누스)
  • 관계에서 멈추라. 더 파고들면 길을 잃는다
요한복음 14:10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안에 계심. 구별되지만 분리되지 않음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는 내 안에 계신 것을 네가 믿지 아니하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는 말은 스스로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서 그의 일을 하시는 것이라

20. 삼위일체 하나님

칼빈은 지금까지 내용을 '알아서 유익한 만큼'만 간단히 정리한다. 우리가 "한 하나님"을 고백할 때 '하나님'이라는 말은 하나뿐인 본질(하나님이 하나님 되게 하는 실체)을 가리킨다. 그 안에 세 위격이 계신다. 그래서 아무 단서 없이 '하나님'이라고만 하면 성부·성자·성령 모두를 가리킬 수 있다. 성자를 성부와 나란히 말할 때는 관계를 생각하게 되므로 둘이 구별된다. 이때는 순서상 근원이신 성부께 '하나님'이라는 이름이 특별히 붙는다. 그래도 성자를 "성부와 다른 또 하나의 하나님"이라 부르는 것은 큰 모독이다. 증거도 있다. 바울은 '주'께 세 번 기도했다. 그리고 그 응답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이어서 말한다. 사도들은 '여호와'를 헬라어 '주(큐리오스)'로 옮겨 썼으니, 바울이 기도한 '주'는 요엘서의 여호와와 같고 그리스도도 포함된다. 또 예수님이 "하나님은 영이시다"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의 본질 전체가 영이라는 뜻이다. 그 안에 성부·성자·성령이 모두 포함된다.

  • '하나님' = 하나의 본질, 그 안에 세 위격
  • 단서 없는 '하나님'은 삼위 모두를 가리킬 수 있다
  • 나란히 말할 때는 순서상 성부를 '하나님'이라 함
  • 성자를 '다른 하나님'이라 하면 모독이다
  • 바울이 기도한 '주'에 그리스도가 포함된다
고린도후서 12:8바울이 '주'께 세 번 간구함. 단서 없는 '주'(=여호와)
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고린도후서 12:9응답 뒤 '그리스도의 능력'을 말함. 그 '주'가 그리스도를 포함함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사도행전 2:21베드로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인용함. 사도들의 '주' 용법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요엘 2:32사도행전 2:21의 원래 구절. 여기서 '주'는 여호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 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요한복음 4:24"하나님은 영이시니". 본질 전체가 영이고 삼위가 그 안에 계심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이단들에 대한 반박. 21-29

21. 하나님의 본질에 관한 논의는 오직 성경만을 근거로 하여야 함

사탄은 믿음을 뿌리째 뽑으려고 거의 모든 시대에 성자·성령의 신성과 위격의 구별을 두고 싸움을 일으켰다. 칼빈은 지금까지 배우려는 사람을 손잡아 이끄는 데 마음을 썼다고 말한다. 이제부터는 진리를 비방에서 지켜야 한다. 그 전에 그는 원칙 하나를 세운다. 우리의 생각과 말은 하나님 말씀이 허락한 선을 넘으면 안 된다. 사람은 매일 보는 태양도, 자기 자신도 다 알지 못한다. 그런 사람이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을 자기 잣대로 잴 수는 없다. 힐라리우스의 말처럼 하나님에 대한 유일하게 정당한 증인은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계시하신 대로만 생각하고 말씀만 따라 탐구해야 한다. 그것이 곧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하나님께 맡기는 길이다. 크리소스토무스가 궤변가들과 다퉜지만 소용없었다는 예를 들며, 칼빈은 교묘한 논리보다 온유한 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다 깨닫지 못하더라도 하늘의 말씀을 규범으로 삼게 하는 것이 목표이다.

  • 말씀이 허락한 한계를 넘지 말 것
  • 태양도 자기도 모르는데 하나님을 잴 수 없다
  • 하나님에 대한 증인은 하나님 자신이다
  • 교묘한 논리보다 온유한 태도로
  • 다 몰라도 말씀을 기준으로 삼으면 된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 자신께 맡겨두도록 하자.칼빈, 『기독교강요』

22. 삼위일체를 공격하는 세르베투스의 이단적 사설

삼위일체를 공격한 이단은 너무 많아서 다 나열하지 않는다. 크게 보면 두 부류이다. 하나님의 본질을 여러 조각으로 나누는 쪽(아리우스 계열)과 위격의 구별을 뒤섞어 없애는 쪽(사벨리우스 계열)이다. 다음 세 가지만 붙잡으면 옛 오류들은 모두 막힌다. 본질은 하나이고 나뉘지 않는다. 그 본질은 세 분 모두에게 속한다. 그러나 세 분은 고유한 특성으로 구별된다. 문제는 당대의 세르베투스이다. 스페인 출신 의사로, 1553년 제네바에서 정죄받아 화형당했다(번역서 각주). 그는 '삼위일체'라는 말 자체를 혐오해 이를 믿는 사람들을 무신론자 취급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본질 안에 삼위가 있다고 하면 하나님이 셋으로 쪼개지므로, 위격은 실제로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하나님을 보여 주는 겉모습일 뿐이다. 결국 그는 사람이나 나무, 돌 안에 있는 영이 하나님의 일부인 것처럼, 성자와 성령에게도 하나님의 일부가 나뉘어 있다고 말했다. 이로써 그리스도와 성령의 신성을 없애 버렸다. 칼빈은 이렇게 답한다. 요한은 세상 창조 전에 말씀이 하나님이셨다고 증언한다. 말씀은 영원 전부터 성부와 함께 영광을 가지셨다. 그러니 말씀은 상징적인 광채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 실제로 계신 위격이다. 성령도 창조 때 그림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본질적 능력으로 등장한다. (이 절 끝부분은 발췌에서 빠져 있다.)

  • 오류는 '본질을 나눔'과 '위격을 섞음' 두 갈래
  • 세 원리를 붙잡으면 옛 이단은 막힌다
  • 세르베투스: 위격은 겉모습·관념일 뿐
  • 결국 성자·성령의 신성을 지워 버림
  • 영원 전 말씀과 창조의 성령이 반증이다
요한복음 1:1창조 전에 말씀이 하나님이셨음. 위격은 관념이 아님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7:5영원 전부터 성부와 함께 가진 영광. 실제 위격임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창세기 1:2혼돈을 붙드신 성령. 그림자가 아닌 하나님의 본질적 능력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23. (절 제목은 발췌에서 빠짐) 성자도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다

발췌는 이 절의 중간부터 남아 있다. 남은 부분에서 칼빈은 하늘과 땅을 짓지 않은 신들은 망한다는 예레미야의 말씀을 인용한다. 그리고 이사야서가 천지 창조를 근거로 거듭 증명하는 신성이 성자의 신성이라고 말한다. 창조주가 자기 본질을 남에게서 빌려 온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그러므로 "성자는 성부에게서 본질을 받았다"고 하면 성자의 자존(스스로 존재하심)을 부정하는 것이 된다. 반대자들(칼빈은 이름을 밝히지 않고 '이 사람들'이라 부른다)의 말대로 본질 전체가 성부께만 있다고 하자. 그러면 본질이 쪼개지거나, 성자는 이름뿐인 하나님이 된다. 또 그 논리대로라면 성령은 성부만의 영이 된다. 하지만 바울은 성령을 그리스도의 영이라고도 부른다. 성부와 성자의 차이를 본질에서 찾으면 성자의 참 신성은 사라진다. 본질을 '일부만' 나눠 가진다면 반쪽짜리 신을 만드는 셈이다. "성부가 본질을 주고도 혼자 유일한 하나님으로 남는다"고 하면 그리스도는 겉모양만 하나님이 된다. 하나님께 가장 고유한 특성은 '스스로 있음'이기 때문이다.

  • 창조주는 본질을 남에게 빌려 오지 않는다
  • 성자가 본질을 받았다 = 성자의 자존 부정
  • 본질이 성부께만 있으면 성자는 이름뿐인 신
  • 성령은 성부의 영이자 그리스도의 영
  • 본질을 나눠 가지면 '반신'이 된다
예레미야 10:11천지를 짓지 않은 신들은 망함. 창조주만 참 하나님이라는 기준 (발췌 앞부분이 빠져 맥락 일부만 남음)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에서 망하리라 하라
로마서 8:9성령이 그리스도의 영이자 성부의 영. 본질이 성부께만 있다는 논리를 반박함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출애굽기 3:14"스스로 있는 자". '스스로 있음'이 하나님께 가장 고유함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24. "하나님"이란 이름은 성부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님

반대자들은 성경에서 단서 없이 '하나님'이라고 하면 늘 성부만 가리킨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그들이 증거로 드는 구절을 보면 성자가 '하나님'과 나란히 나온다. 이런 구절에서 '하나님'은 비교 속에서 성부를 가리킬 뿐이다. 그들은 또 "성부만이 참 하나님이 아니면 성자가 자기 아버지가 된다"고 따진다. 칼빈은 순서상 근원이시고 지혜를 낳으신 성부가 특별히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은 이상하지 않다고 답한다. 이어서 칼빈은 연달아 묻는다. 첫째, 예수님이 "선한 이는 하나님 한 분뿐"이라 하셨는데, 영원한 말씀은 선하지 않은가? 선을 부정하면 불경이고, 인정하면 그들의 주장이 무너진다. 예수님은 오히려 그 말로 자신의 선이 신적인 선임을 가르치셨다. 둘째, 바울이 하나님만 썩지 않고 지혜롭고 참되다고 했는데,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단 말인가? 셋째, 율법은 하나님께만 예배하라고 한다. 그런데 모두가 그리스도께 무릎을 꿇는다. 그러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이다. "육체로만 높아졌다"는 반론도 안 된다. 육체로 오신 하나님이 아니면 그렇게 높아지는 것 자체가 하나님과 충돌한다. "성부 안에서만 하나님"이라는 반론에는 이렇게 답한다. 순서상 근원이 성부라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나 본질이 성부께만 있다고 하면 성부가 성자를 신으로 만들어 주는 셈이 된다. 끝으로 창세기 1:26의 "우리"와 요한복음 4:23-24로 두 반론을 한꺼번에 정리한다.

  • 성자와 나란히 나올 때만 '하나님'=성부
  • 영원한 말씀도 선하고 썩지 않고 참되다
  • 그리스도께 경배함 = 그리스도가 하나님
  • 육체로만 높아졌다는 주장은 근거가 없다
  •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 위격의 구별
마태복음 19:17"선한 이는 한 분". 그리스도의 선은 신적인 선임
예수께서 이르시되 어찌하여 선한 일을 내게 묻느냐 선한 이는 오직 한 분이시니라 네가 생명에 들어 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디모데전서 1:17하나님만 썩지 않으심. 그리스도도 해당됨
영원하신 왕 곧 썩지 아니하고 보이지 아니하고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이 영원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16:27하나님만 지혜로우심. 영원한 지혜이신 그리스도도 해당됨
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하도록 있을지어다 아멘
로마서 3:4하나님만 참되심. 진리이신 그리스도도 해당됨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기록된 바 주께서 주의 말씀에 의롭다 함을 얻으시고 판단 받으실 때에 이기려 하심이라 함과 같으니라
빌립보서 2:10모두가 그리스도께 무릎 꿇음. 예배받으시니 하나님임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출애굽기 20:3하나님 외에는 예배하지 말라. 위 논증의 전제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이사야 44:6"나 외에 다른 신이 없다". 반대자들이 성부만 가리킨다고 본 구절 (번역서엔 '사 44:5'로 되어 있으나 해당 문구는 44:6)
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빌립보서 2:6-7낮아지시기 전 하나님과 동등하셨음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시편 18:10그룹을 타시는 하나님. 그리스도와 동일하신 분
그룹을 타고 다니심이여 바람 날개를 타고 높이 솟아오르셨도다
시편 80:1그룹 사이에 계신 하나님. 같은 논지
요셉을 양 떼 같이 인도하시는 이스라엘의 목자여 귀를 기울이소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시편 99:1그룹 사이에 앉으신 왕. 같은 논지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시편 47:2온 땅의 큰 왕. 같은 논지
지존하신 여호와는 두려우시고 온 땅에 큰 왕이 되심이로다
이사야 25:9"이는 우리 하나님이시라". 오실 구속자 하나님 = 그리스도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의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할 것이며
창세기 1:26"우리의 형상대로". 창조되지 않은 분들 사이의 대화, 곧 위격의 구별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요한복음 4:24"하나님은 영". 성부만이 아니라 말씀도 포함됨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 4:23참 예배자는 아버지께 예배함. 교사로서 단계적으로 가르치신 것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5. 삼위 모두 신적 본질을 지니심

반대자들은 각 위격이 신적 본질을 따로 한 몫씩 나눠 가진다고 상상한다. 칼빈은 성경대로 다르게 가르친다. 본질은 하나이다. 따라서 성자와 성령의 본질은 '낳아진' 것이 아니다. 다만 성부가 순서상 첫째이시고 지혜를 낳으셨으므로, 성부를 신성 전체의 시작이요 근원이라 부르는 것은 옳다. 반대자들은 이렇게 말하면 본질 하나와 위격 셋, 곧 '넷'이 된다고(사위일체) 비난한다. 칼빈은 그것이 그들이 만든 허구라고 답한다. 정통은 위격을 본질에서 떼어 내지 않는다. 위격은 본질 안에 머문 채로 구별된다. "본질이 삼위일체를 구성하는 데 참여했느냐"는 질문도 헛되다. 본질은 삼위일체의 한 '부분'이 아니다. 그렇다고 위격이 본질 없이 또는 본질 바깥에 있지도 않다. 그래서 칼빈은 이렇게 고백한다. 성자는 하나님이므로 스스로 계신다. 위격으로 보면 성자이므로 성부로부터 계신다. 이 정리 덕분에 성자가 성부와 동등한 하나님이라는 것과 성부가 순서상 근원이라는 것이 함께 성립한다.

  • 본질은 하나다. 성자·성령의 본질은 낳아지지 않았다
  • 성부는 순서상 신성의 근원이다
  • 위격은 본질 안에서 구별될 뿐 떨어져 있지 않다
  • '사위일체' 비난은 반대자들이 만든 허구다
  • 성자: 본질로는 스스로, 위격으로는 성부로부터
그의 본질은 시작이 없다. 그러나 그의 위격의 시작은 하나님 자신이신 것이다.칼빈, 『기독교강요』

26. 성자가 성부께 복종한다는 것도 핑곗거리가 되지 않음

반대자들은 그리스도가 정말 하나님이면 '아들'이라 부르는 것은 잘못이라고 말한다. 칼빈은 앞에서 한 답을 되풀이한다. 위격끼리 비교할 때는 '하나님'을 성부를 가리키는 말로 본다. 성부가 신성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부가 본질을 나눠 준다는 뜻이 아니라 순서상 그렇다는 뜻이다.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를 아는 것이 영생"(요한복음 17:3)은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선 중보자(둘 사이를 이어 주는 분)로서 하신 말씀이다. 그래도 그분의 위엄은 줄어들지 않는다. 자기를 비우셨어도 영광은 사라지지 않고 세상에서 가려졌을 뿐이다. 히브리서도 그분이 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셨다고 하면서, 동시에 땅의 기초를 놓으신 영원한 하나님이라고 선언한다. "아버지는 나보다 크다"는 말씀도 자신이 한 단계 낮은 신이라는 고백이 아니다. 육신 안에서 드러난 영광과 하늘의 온전한 영광을 비교하신 것이고, 그 영광에 신자들을 함께 모으려는 뜻이다. 바울이 말한 '나라를 아버지께 바침'도 같은 맥락이다. 요한이 그리스도를 '참 하나님'이라 부른 것은 그를 '2등급 신'으로 보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 비교할 때 '하나님'=성부, 근거는 순서
  • 요한복음 17:3은 중보자로서 하신 말씀
  • 비우셨어도 영광은 숨겨졌을 뿐 그대로
  • "아버지가 더 크다" ≠ 열등한 신
  •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 2등급 신이 아님
요한복음 17:3'유일하신 참 하나님'. 중보자의 자리에서 하신 말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빌립보서 2:7자기를 비우심. 그래도 영광은 숨겨졌을 뿐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히브리서 2:7잠시 천사보다 낮아지심
그를 잠시 동안 천사보다 못하게 하시며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시며3)
히브리서 2:9같은 내용. 낮아지심은 일시적임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1:10땅의 기초를 두신 주. 낮아지신 분이 곧 영원한 창조주
또 주여 태초에 주께서 땅의 기초를 두셨으며 하늘도 주의 손으로 지으신 바라
요한복음 16:7내가 떠나는 것이 유익함. 영광으로 들어가 신자를 모으심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한복음 14:28"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다". 본질이 아니라 영광의 드러남을 비교함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고린도전서 15:24나라를 아버지께 바침. 중보 사역의 완성
그 후에는 마지막이니 그가 모든 통치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
고린도전서 15:28하나님이 만유 안에서 만유가 되심. 같은 맥락
만물을 그에게 복종하게 하실 때에는 아들 자신도 그 때에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복종하게 되리니 이는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1:1말씀이 하나님이심. '참 하나님' 선언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일서 5:20그리스도는 '참 하나님'. 2등급 신이 아님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27. 이레나이우스의 진술들을 이용한 그릇된 논리

반대자들은 2세기 교부 이레나이우스가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유일하고 영원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고 한 말을 증거로 든다. 칼빈은 이것이 무지 아니면 부정직이라고 말한다. 이레나이우스가 싸운 상대는 따로 있었다.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모세와 선지자에게 말씀하신 구약의 하나님과 같은 분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광신자들이었다(영지주의 계열로 알려짐). 그러니 그의 요점은 "구약의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은 없다"는 것이지, "성자는 하나님이 아니다"가 아니다. 칼빈은 이레나이우스의 다른 대목들을 근거로 든다. 이레나이우스는 성경이 단서 없이 '하나님'이라 부르는 분이 참 하나님이고 그리스도도 그렇게 불리신다고 한다. 선지자와 사도들이 성부와 성자를 함께 하나님이라 부른다고도 한다. 성자가 천지를 지으시고 모세에게 율법을 주시고 족장들에게 나타나셨다고도 한다. "하나님이 남방에서 오신다"는 하박국의 예언도 그리스도에 대한 것이라고 본다. 칼빈은 족장들에게 나타나신 분이 그리스도라고 해서 성부를 빼는 것이 아니라고 덧붙인다.

  • 이레나이우스의 적은 '구약 하나님'을 부정한 자들
  • 그의 요점: 성경의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은 없다
  • 그는 성자도 단서 없이 '하나님'이라 불렀다
  • 성자가 창조하고 율법 주고 족장에게 나타나심
  • 문장은 원래 싸움의 맥락에서 읽어야 한다
하박국 3:3"하나님이 남방에서 오시며". 이레나이우스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고 본 예언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 산에서부터 오시는도다 (셀라) 그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고 그의 찬송이 세계에 가득하도다

28. 테르툴리아누스의 진술들을 사칭한 그릇된 핑계

반대자들은 테르툴리아누스도 자기 편이라고 주장한다. 칼빈은 그의 표현이 가끔 거칠기는 해도 정통 교리 전체를 분명히 전한다고 답한다. 테르툴리아누스의 요지는 이렇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지만 '경륜'(하나님이 일을 펼치시는 질서와 배치)에 따라 말씀이 계신다. 본질로는 하나이시고 그 하나가 경륜의 신비 안에서 셋으로 펼쳐진다. 셋의 차이는 지위가 아니라 순서의 문제이고, 본질이 아니라 형식의 문제이며, 권능이 아니라 순서의 문제이다. 그는 성자를 성부 다음 두 번째로 두지만, 위격의 구별 말고는 성자가 성부와 다르지 않다고 본다. 성자를 '다른 하나님'으로 보는 것도 부정한다. 그는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뭉뚱그린 프락세아스(삼위의 구별을 없앤 사람)와 싸우느라 구별을 강하게 말했다. 말씀과 성령을 '전체의 일부'라고 부른 것도 본질이 아니라 위격의 배치를 두고 한 말이므로 받아들일 수 있다. 칼빈은 그의 문장 하나를 떼어 오지 말고 글 전체의 흐름을 보라고 한다.

  • 표현은 거칠어도 교리는 정통이다
  • 하나님은 본질로 하나, 경륜으로 셋
  • 차이는 지위·본질·권능이 아니라 순서
  • 프락세아스와 싸우느라 구별을 강조함
  • 한 문장이 아니라 글 전체의 흐름을 보라

29. 교부들이 한결같이 삼위일체를 확증함

고대 교부들의 글을 비교해 보면 이레나이우스와 그 뒤 교부들의 가르침은 다르지 않다. 가장 이른 교부 중 하나인 유스티누스도 모든 점에서 일치한다. 힐라리우스가 "영원성은 성부께 있다"고 한 것도 성자의 본질을 빼앗는 말이 아니다. 반대자들이 앞뒤를 잘라 인용했을 뿐이다. 이그나티우스의 이름으로 돌던 문서에는 사순절 규정 같은 후대 제도를 사도들이 만든 것처럼 쓴 대목이 있다. 칼빈은 이런 문서는 신뢰할 수 없다고 본다. 교부들이 일치했다는 결정적 증거도 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에서 아리우스는 인정받는 옛 저자를 한 명도 자기 편으로 내세우지 못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옛 저자들을 존중하면서 다른 점은 숨기지 않고 밝혔다. 그런 그도 이 교리가 처음부터 다툼 없이 받아들여졌다고 본다. 그가 "단일성은 성부 안에 있다"고 한 것도 성부가 아무에게서도 나오지 않은 신성의 시작이라는 뜻으로 스스로 풀어 놓았다. 칼빈은 마지막으로 이렇게 말한다. 불리한 내용을 일부러 뺀 적은 없다. 다만 교회를 세우는 데 유익하지 않은 질문들은 다루지 않았다. "성부는 지금도 계속 낳으시는가?" 같은 질문이 그 예이다. 삼위가 영원 전부터 계시니 이런 질문은 어리석다.

  • 유스티누스부터 아우구스티누스까지 일치
  • 잘라 인용한 교부 문장은 증거가 못 된다
  • 이그나티우스 이름의 문서는 신뢰할 수 없다
  • 니케아에서 아리우스는 옛 지지자가 없었다
  • 덕을 세우지 않는 질문은 다루지 않는다

2.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아리우스파성자는 '신적'이지만 하나님의 본질을 가진 분은 아니다세례의 한 이름에 성자가 들어 있으니 성자도 참 하나님이다. 본질 없는 신성은 말이 안 된다에베소서 4:5, 마태복음 28:19, 요한복음 1:1
에베소서 4:5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마케도니우스파성령은 사람에게 부어지는 은사일 뿐이다성령은 은사를 주시는 분이고, 은사가 여럿이어도 한 성령이시다이사야 11:2, 고린도전서 12:11
이사야 11:2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고린도전서 12:11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
사벨리우스·프락세아스 계열성부와 성자를 구별하면 하나님이 둘이 된다(구별을 섞어 없앰)성경은 보내는 분과 보냄받은 분, 증언하는 분과 증언받는 분을 분명히 구별한다요한복음 5:32, 요한복음 1:18, 요한복음 14:16
요한복음 5:32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이가 따로 있으니 나를 위하여 증언하시는 그 증언이 참인 줄 아노라
요한복음 1:18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아버지 품 속에 있는 독생하신 하나님이 나타내셨느니라
요한복음 14: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세르베투스위격은 실재가 아니라 겉모습·관념이다. 성자·성령은 하나님의 일부가 나뉜 것이다말씀은 창조 전부터 하나님이셨고 성부와 영광을 함께 가지셨다. 성령은 창조의 능력이시다요한복음 1:1, 요한복음 17:5, 창세기 1:2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7: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창세기 1: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당대 반대자들('이 사람들')본질은 성부께만 있고 성부가 성자에게 신성을 준다그러면 본질이 쪼개지거나 성자는 이름뿐인 신이 된다. 성자도 본질로는 스스로 계신다출애굽기 3:14, 로마서 8:9
출애굽기 3:14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
로마서 8: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같은 반대자들단서 없는 '하나님'은 언제나 성부만 가리킨다비교할 때만 순서상 성부를 가리킨다. 바울이 기도한 '주'에는 그리스도가 포함된다고린도후서 12:8-9, 요한복음 4:24
고린도후서 12:8-9 8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9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같은 반대자들그리스도는 육체로만 높아졌다육체로 오신 하나님이 아니면 그런 높아짐은 하나님과 충돌한다. 낮아지시기 전 이미 동등하셨다빌립보서 2:6-7, 빌립보서 2:10
빌립보서 2:6-7 6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빌립보서 2: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같은 반대자들"아버지가 나보다 크다"는 말씀은 성자가 열등하다는 증거이다본질의 비교가 아니라 육신 안의 영광과 하늘 영광의 비교이다요한복음 14:28, 요한복음 1:1, 요한일서 5:20
요한복음 14:28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로 온다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나니 나를 사랑하였더라면 내가 아버지께로 감을 기뻐하였으리라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일서 5:20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
같은 반대자들정통의 설명은 본질 하나와 위격 셋, 곧 '사위일체'이다위격은 본질 밖에 있지 않고 본질 안에서 구별될 뿐이다(이 절에 직접 인용 없음)
같은 반대자들창세기 1:26의 '우리'로 위격을 끌어내는 것은 억지이다창조되지 않은 분들끼리의 대화이므로, 아니라면 하나님이 다른 조물주들에게 말씀하신 셈이 된다창세기 1: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교부 인용파이레나이우스·테르툴리아누스·힐라리우스·이그나티우스가 우리 편이다문맥을 무시하고 잘라 쓴 인용이다. 이그나티우스 이름의 문서는 신뢰할 수 없다하박국 3:3(이레나이우스가 그리스도께 적용)
사변을 좋아하는 사람들"성부는 계속 낳고 계신가?" 같은 문제를 끝까지 파야 한다삼위는 영원 전부터 계신다. 덕을 세우지 않는 질문은 내려놓는다(이 절에 직접 인용 없음)

3. 용어

본질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는 실체로, 셋으로 나뉘지 않는 '하나'이다.
위격(위·본체·휘포스타시스)
하나의 본질 안에서 구별되는 성부·성자·성령 '한 분 한 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구별과 분리
구별은 서로 다르다는 뜻이고, 분리는 떨어져 나간다는 뜻이다. 칼빈은 구별만 인정한다.
순서
시간의 앞뒤가 아니라 성부(근원)→성자→성령으로 이어지는 관계의 질서이다.
자존
무엇에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는 뜻이다. 칼빈은 성자도 본질로는 자존하신다고 본다.
경륜
하나님이 일을 펼치시는 질서와 배치를 말한다. 테르툴리아누스가 삼위의 구별을 설명할 때 쓴 말이다.
중보자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서서 둘을 이어 주시는 그리스도의 역할이다.
큐리오스
'주(主)'를 뜻하는 헬라어로, 사도들이 구약의 '여호와'를 옮길 때 썼다.
사위일체
'본질 하나 + 위격 셋 = 넷'이라는 반대자들의 비난으로, 칼빈은 허구라고 답한다.
교부
초대 교회(대략 2~5세기)에 교리를 세운 지도자와 저술가들이다.

4. 청년의 삶으로

💬 질문: 삼위일체가 이해가 안 되는데, 그러면 내 믿음이 가짜인가요?

칼빈의 답: 다 깨닫지 못해도 된다. 말씀을 기준으로 삼고 말씀이 허락한 만큼만 생각하면 된다(21절).

💬 질문: 기도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만 해야 하나요, 예수님께 해도 되나요?

칼빈의 답: 바울은 '주'께 기도했고 그 주에는 그리스도가 포함된다. 그리스도는 예배받으시는 하나님이다(20·24절).

💬 질문: 가족이나 친구가 "예수는 하나님보다 낮은 존재"라는 단체의 전도를 받았어요.

칼빈의 답: 그런 주장은 이미 옛 교회가 다룬 것이다. 요한복음 1:1, 17:5, 빌립보서 2:6 같은 성경으로 차분히 답하고, 교묘한 논쟁보다 온유하게 대하라(21~26절).

💬 질문: 커뮤니티에서 성경 구절이나 유명인의 말을 잘라 와 공격하는 글을 자주 봐요.

칼빈의 답: 한 문장이 아니라 그 사람이 누구와 왜 싸웠는지, 글 전체 흐름을 보라(27~29절).

💬 질문: 내가 받은 세례는 무슨 의미가 있나요?

칼빈의 답: 성부·성자·성령 한 이름으로 받은 세례는 한 분 하나님께 매인 한 믿음의 표이다(16절).

5. 이 편의 결론

이 편이 남기는 것
  • 하나님의 본질은 하나이고 나뉘지 않는다. 그 본질은 성부·성자·성령 모두에게 온전히 속한다.
  • 세 위격은 고유한 특성과 순서로 구별되지만 분리되지는 않는다.
  • 성부는 순서상 근원이시고, 성자는 본질로는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다.
  •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아버지가 더 크다"는 말씀은 중보자로서의 자리를 말하는 것이지 본질이 열등하다는 뜻이 아니다.
  • 이 신비는 성경이 허락한 만큼만 말하고, 교회에 유익하지 않은 사변은 내려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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