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학습 노트·제1권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
제1권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

1권 4편 참 하나님과 우상 금지

제1권 10~12장(1.10.1–1.12.3), 존 칼빈 『기독교강요』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상, 114~144쪽

❓ 눈에 보이는 게 있어야 하나님이 함께 계신 것 같은데, 하나님을 그림이나 형상으로 붙잡아 두면 왜 안 될까?
🧭흐름 한눈에

칼빈은 먼저 성경이 보여 주는 하나님이 자연에서 드러나는 하나님과 같은 분임을 확인합니다. 그분은 자비롭고 공의로우며, 사람이 두려워하면서도 믿고 기댈 수 있는 분입니다(10장). 성경은 이 참 하나님을 보여 주면서 사람이 만든 모든 신을 밀어냅니다. 그 결과로 따라 나오는 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모양으로 만들면 반드시 그분의 영광이 훼손된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이 원리를 성경과 교부들의 글로 입증합니다. 이어서 '형상은 글 모르는 사람의 책'이라는 주장, 우상은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기원 문제, 787년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까지 차례로 따져 봅니다(11장). 마지막으로 '예배(라트리아)와 공경(둘리아)은 다르다'는 구분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속한 존귀는 티끌만큼도 다른 존재와 나눌 수 없다는 결론으로 갑니다(12장).

📜절별 정리

제10장 · 성경은 유일하고 참되신 하나님을 보여 주어 모든 미신을 바로잡는다

📜1.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

칼빈은 앞에서 두 가지를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세상 만물에 드러나 있고, 하나님의 말씀에는 그보다 더 분명하고 친근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입니다. 이제 그는 성경이 보여 주는 하나님이 자연이 보여 주는 하나님과 같은 분인지 확인하려 합니다. 다만 자세히 논하지는 않습니다. 경건한 독자가 성경에서 하나님에 대해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목록'만 제시하겠다고 합니다. 아브라함 자손과 맺은 특별한 언약과 중보자 그리스도는 일부러 아직 다루지 않습니다. 원수였던 사람들을 값없이 자녀로 삼으시는 일은 하나님이 '구속주'이심을 보여 주는 다른 차원의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는 세상을 지으신 창조주가 그 세상을 어떻게 다스리시는지까지만 다룹니다. 칼빈은 신약 구절을 조금 인용하더라도 이 범위를 넘어 짐작하지 말라고 미리 당부합니다. 성경 곳곳에서 우리는 아버지 같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만납니다. 동시에 오래 참으셨는데도 악을 고집하는 사람들을 공의로 벌하시는 엄한 모습도 만납니다.

  1. 성경의 하나님 = 자연이 보여 주는 하나님인가 확인
  2. 여기서는 '창조주' 지식까지만, 그리스도는 뒤에서
  3. 원수를 자녀 삼으심 = 구속주 지식(다음 단계)
  4. 성경 곳곳에 아버지 같은 선하심이 있다
  5. 악을 고집하는 자에 대한 엄한 심판도 있다
창세기 17:4
아브라함 자손을 구별한 특별 언약. 여기서는 아직 다루지 않는다고 표시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2. 성경이 묘사하는 하나님의 속성은 피조물에서 보이는 것과 같다

칼빈은 출애굽기 34장을 하나님에 대해 사람이 알 수 있는 것을 압축한 본문으로 봅니다. 먼저 '여호와'라는 이름이 두 번 반복됩니다. 칼빈은 여기서 하나님이 영원하시고,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계신 분(자존성)이라는 사실을 읽습니다. 이어지는 자비·은혜·인자 같은 성품은 하나님의 본질 자체보다 '우리를 향한 모습'을 알려 줍니다. 그래서 이 지식은 머릿속 추측이 아니라 살아 있는 체험에서 나옵니다. 여기 나열된 인자, 선함, 자비, 공의, 심판, 진리는 우리가 하늘과 땅에서 이미 본 것과 똑같습니다. 능력과 권세는 '엘로힘'이라는 이름에 담겨 있습니다. 시편 145편도 하나님의 능력을 빠짐없이 나열하지만, 자연에서 볼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예레미야 9장 24절은 세 가지를 꼽습니다. 우리 구원이 달린 사랑, 악인에게 날마다 시행되고 끝내 영원한 멸망으로 이어지는 정의, 신자를 지키고 돌보는 공의입니다. 칼빈은 진리·능력·거룩·선하심도 함께 붙들라고 합니다. 진리가 없으면 공의와 사랑을 확신할 수 없고, 능력이 없으면 하나님이 다스리신다고 믿을 수 없으며, 선하심이 없으면 사랑이 나올 곳이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지식과 자연의 지식은 목적도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하고, 그다음 신뢰하게 합니다. 그래서 순결한 마음과 거짓 없는 순종으로 예배하고 그분의 선하심에 온전히 기대게 합니다.

  1. '여호와' 두 번 = 영원하심과 스스로 계심
  2. 나열된 성품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모습
  3. 성경의 속성 = 하늘과 땅에서 본 속성
  4. 사랑·정의·공의는 진리·능력·선하심과 함께 간다
  5. 목적: 먼저 두려움, 그다음 신뢰
출애굽기 34:6-7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압축한 대표 본문. 영원성과 성품을 보여 줌
6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시편 145:5
시편 145편 전체가 하나님의 능력을 빠짐없이 나열하는 예. 자연과 일치함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예레미야 9:24
꼭 알아야 할 세 가지: 사랑·정의·공의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고린도전서 1:31
예레미야 9:24의 '주 안에서 자랑하라'를 신약이 이어받음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과 같게 하려 함이라
시편 25:8-10
여호와의 길이 사랑과 심판과 정의에 있으니, 그 안에 거룩하심이 드러남
8여호와는 선하시고 정직하시니 그러므로 그의 도로 죄인들을 교훈하시리로다 9온유한 자를 정의로 지도하심이여 온유한 자에게 그의 도를 가르치시리로다 10여호와의 모든 길은 그의 언약과 증거를 지키는 자에게 인자와 진리로다
📜3. 성경은 이교도의 모든 신을 배격한다

칼빈은 여기서 일반 원칙을 정리합니다. 성경은 우리를 참 하나님께 데려가려고 이교의 모든 신을 분명하게 제외합니다. 거의 모든 시대에 종교가 타락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라는 이름은 어디서나 알려졌습니다. 여러 신을 섬기던 사람들도 마음속 자연스러운 느낌대로 말할 때는 그냥 단수로 '하나님'이라고 불렀습니다.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하나님의 단독 통치』에서 하나님이 한 분이라는 생각이 모든 사람 마음에 새겨져 있음을 보였고, 테르툴리아누스도 일상 언어로 같은 사실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교도들은 예외 없이 자기 허망함 때문에 스스로 만든 신에게 끌려갔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본성적으로 느낀 것은 그들이 핑계 대지 못하게 만드는 것 말고는 아무 가치가 없습니다. 가장 지혜롭다는 철학자들도 막연한 신들에게 복을 빌며 마음이 이리저리 흔들렸습니다. 그들이 그린 제우스나 아테나는 대중의 생각보다 덜 어리석었을 뿐 사탄의 속임수에서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하박국은 우상을 정죄한 뒤 '그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합니다. 말씀으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 말고는 아무것도 인정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1. 성경은 사람이 만든 모든 신을 분명히 제외한다
  2. 사람 마음엔 '한 분 하나님' 감각이 있다
  3. 그 감각은 핑계를 막을 뿐 구원하지 못한다
  4. 철학자의 세련된 신관도 진리를 부패시킨다
  5. 말씀으로 계시하신 하나님만 찾으라
하박국 2:20
우상을 정죄한 뒤 '그의 성전에서', 곧 자신을 계시하신 곳에서 하나님을 찾으라는 명령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땅은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시니라

제11장 · 하나님께 보이는 형상을 붙이는 것은 불경이며, 우상을 세우는 것은 참 하나님을 배반하는 일이다

11장 1–4절 · 형상을 배격하는 성경의 논증

📜1. 성경은 하나님을 형상과 결부시키는 것을 금지한다

성경은 우리의 둔한 지성에 맞춰 보통 사람의 말로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참 하나님과 거짓 신을 구별할 때 하나님을 구체적인 우상들과 맞세우는 방식을 씁니다. 그렇다고 철학자들의 세련된 가르침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하나님을 찾을 때 빠지는 어리석음을 더 분명히 드러내려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을 이렇게 분명하게 정의하면, 사람이 자기 생각으로 지어낸 신 관념은 모두 사라집니다. 하나님에 대해 참되게 증언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무·돌·금·은 같은 죽은 물질로 보이는 신을 만들려는 욕심이 온 세상을 사로잡고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은 원리 하나를 붙들라고 합니다. 하나님을 어떤 형상과 연결하는 순간 그분의 영광은 반드시 훼손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율법에서 영광이 오직 자기에게만 있다고 하신 뒤, 곧바로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페르시아인은 태양을, 이교도들은 별을, 이집트인은 거의 모든 동물을 신으로 삼았습니다. 그리스인은 사람 모양으로 신을 섬겨 좀 더 지혜로워 보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형상들 사이에 '덜 나쁜 것'을 따로 두지 않고 모두 배격하셨습니다.

  1. 성경은 하나님을 우상과 맞세워 구별한다
  2. 하나님을 증언할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
  3. 형상과 연결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된다
  4. 태양·동물·사람 모양, 어느 형상도 예외 없다
출애굽기 20:4
하늘·땅·물속 어떤 것의 형상도 만들지 말라. 이 편 전체의 출발점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하나님에 대한 유일하고도 참된 증거자는 바로 하나님 자신이시기 때문이다.”
📜2. 하나님을 형상과 결부시키는 것은 그분의 위엄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금지의 이유는 바로 뒤따르는 말씀에서 드러납니다. 모세는 하나님이 호렙산 불길 속에서 말씀하실 때 이스라엘이 '어떤 형상도 보지 못했다'는 점을 근거로 듭니다. 보이는 형상으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곧 그분을 배반하는 일입니다. 이사야는 이 점을 가장 강하게 말합니다. 형체 없는 분을 물질처럼,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는 모양으로, 영이신 분을 생명 없는 물체로, 측량할 수 없는 분을 나무 조각으로 만드는 것은 어리석은 허구로 하나님을 더럽히는 일입니다. 바울도 아덴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사람의 솜씨로 새긴 금·은·돌처럼 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로마 철학자 세네카조차 신을 천한 물질과 짐승 모양으로 만드는 일을 한탄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말을 전합니다. 형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유대인은 미신에 빠지기 쉬워서 형상이 금지되었을 뿐'이라고 주장합니다. 칼빈은 이것을 값싼 속임수라고 합니다. 이 금지는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에 근거하므로 한 민족에게만 해당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바울은 유대인이 아니라 아덴 사람들에게 이 말을 했습니다.

  1.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형상'을 본 적이 없다
  2. 보이지 않는 분을 보이게 하면 왜곡이다
  3. 바울은 이방인에게도 같은 원리를 말했다
  4. '유대인 한정 규정'이라는 주장은 틀렸다
신명기 4:15-18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형상을 보지 못했으니 어떤 우상도 만들지 말라
15여호와께서 호렙 산 불길 중에서 너희에게 말씀하시던 날에 너희가 어떤 형상도 보지 못하였은즉 너희는 깊이 삼가라 16그리하여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해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여자의 형상이든지, 17땅 위에 있는 어떤 짐승의 형상이든지, 하늘을 나는 날개 가진 어떤 새의 형상이든지, 18땅 위에 기는 어떤 곤충의 형상이든지,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어떤 어족의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
이사야 40:18-20
하나님을 무엇에 비기겠느냐. 장인이 만든 우상을 조롱함
18그런즉 너희가 하나님을 누구와 같다 하겠으며 무슨 형상을 그에게 비기겠느냐 19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이사야 41:7
장인들이 서로 격려하며 우상을 만드는 헛수고
목공은 금장색을 격려하며 망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격려하며 이르되 땜질이 잘 된다 하니 그가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을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는도다
이사야 41:29
우상은 헛되고 허망함
보라 그들은 다 헛되며 그들의 행사는 허무하며 그들이 부어 만든 우상들은 바람이요 공허한 것뿐이니라
이사야 45:9
질그릇이 토기장이와 다툴 수 없음
질그릇 조각 중 한 조각 같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이와 더불어 다툴진대 화 있을진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너는 무엇을 만드느냐 또는 네가 만든 것이 그는 손이 없다 말할 수 있겠느냐
이사야 46:5-7
금을 녹여 만든 신을 메고 다니지만 구원하지 못함
5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누구와 짝하며 누구와 비교하여 서로 같다 하겠느냐 6사람들이 주머니에서 금을 쏟아 내며 은을 저울에 달아 도금장이에게 주고 그것으로 신을 만들게 하고 그것에게 엎드려 경배하며 7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 있고 거기에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하지 못하며 고난에서 구하여 내지도 못하느니라
사도행전 17:29
바울이 이방인(아덴 사람)에게 형상 금지를 말함. '유대인 한정론' 반박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3. 하나님 임재의 표징들도 형상을 정당화하지 못한다

하나님이 구체적인 표징으로 임재를 보이신 적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과 '대면했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그 표징들은 하나님의 가르침 계획의 일부였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본질은 사람이 결코 헤아릴 수 없다는 것을 알려 주었습니다. 구름·연기·불은 하늘 영광의 상징이었지만, 굴레처럼 사람의 마음을 막아 더 파고들지 못하게 했습니다. 모세도 얼굴을 보여 달라고 구했다가 사람은 견딜 수 없다는 대답만 들었습니다.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나셨지만 곧 사라지셨습니다. 성령은 보이지 않는 분이시니 보이는 상징을 찾지 말라는 가르침입니다. 하나님이 사람 모습으로 나타나신 것은 장차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계시하실 것을 미리 보여 주신 것이었습니다. 속죄소 위의 그룹들은 날개로 덮고 휘장 뒤에 감추는 역할을 했습니다. 오히려 사람의 눈과 감각이 하나님께 닿지 못하게 막은 것입니다. 그러니 그룹을 핑계로 성인들의 형상을 변호하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이사야가 본 스랍들도 얼굴을 가렸습니다. 게다가 그룹은 율법이라는 '초등교사' 아래 있던 어린아이 시대에 속한 것이라 지금 시대의 본보기가 될 수 없습니다. 로마 풍자시인 유베날리스는 유대인이 구름과 하늘을 섬긴다고 비웃었습니다. 그 말은 불경했지만, 유대인에게 보이는 하나님의 형상이 있었다고 우기는 교황주의자들보다는 오히려 정확했습니다. 칼빈은 유대인도 우상을 열심히 좇았다는 사실에서 남 탓을 하지 말고, 사람 본성이 얼마나 우상에 끌리는지 배우라고 합니다.

  1. 임재 표징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음'을 가르쳤다
  2. 구름·불은 더 파고들지 못하게 막는 굴레였다
  3. 비둘기는 금방 사라졌다, 상징을 붙잡지 말라
  4. 그룹은 하나님을 '가리는' 형상이었다
  5. 그룹은 지나간 어린아이 시대에 속한다
출애굽기 33:11
모세는 하나님과 친밀했으나
사람이 자기의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모세는 진으로 돌아오나 눈의 아들 젊은 수종자 여호수아는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니라
출애굽기 33:20
얼굴은 볼 수 없다는 대답. 하나님의 본질은 사람이 감당할 수 없음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신명기 4:11
구름·흑암·불은 영광의 상징이자 접근을 막는 장치
너희가 가까이 나아와서 산 아래에 서니 그 산에 불이 붙어 불길이 충천하고 어둠과 구름과 흑암이 덮였는데
마태복음 3:16
성령의 비둘기 모양은 한순간의 표징이었음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출애굽기 25:17-21
속죄소와 그룹. 날개로 덮어 하나님을 감각에서 가림
17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이사야 6:2
스랍들도 얼굴을 가림. 하나님의 광채는 천사도 똑바로 볼 수 없음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갈라디아서 3:24-25
그룹은 '초등교사' 아래 옛 시대에 속함
24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 25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초등교사 아래에 있지 아니하도다
갈라디아서 4:3
어린아이 같던 시대는 이미 지나감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4. 성경은 어떤 형식으로든 하나님을 형상화하는 것을 금한다

시편 기자는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진흙이나 돌이 아니라 은과 금을 말한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아무리 값비싼 재료라도 신이 될 수 없음을 보이려는 것입니다. 사람이 마음으로 하나님에 대해 지어내는 것은 모두 허구입니다. 순간순간 숨을 쉬다 사라지는 유한한 인간이 자기가 다듬은 나뭇조각을 신으로 인정받게 하려는 모습은 더욱 어리석습니다. 로마 시인 호라티우스는 무화과나무 토막이 걸상이 될 뻔하다가 신이 되었다며 조롱했습니다. 그러나 칼빈은 신앙에 관심 없는 시인의 농담보다 선지자의 말씀을 들으라고 합니다. 같은 나무로 불을 피워 빵을 굽고, 남은 것으로 신을 만들어 절한다는 이사야의 말씀입니다. 성경은 우상을 늘 '사람 손으로 만든 것, 하나님의 권위가 없는 것'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니 사람이 고안한 예배 방식은 모두 가증하다는 원리를 세워야 합니다. 시편은 우상을 만들고 의지하는 사람도 우상처럼 된다고 경고합니다. 또 '새긴 형상'뿐 아니라 '모양'을 그리는 것도 똑같이 금지됩니다. 그러므로 조각만 피하면 그림은 괜찮다며 그림에 빠진 그리스 그리스도인들(동방 정교회)의 생각도 틀렸습니다.

  1. 금·은이라도 신이 될 수 없다
  2. 우상은 사람 손과 생각에서 나온다
  3. 사람이 고안한 예배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
  4. 우상을 의지하면 우상을 닮는다
  5. 조각뿐 아니라 그림으로 하나님을 그리는 것도 금지
시편 135:15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 손으로 만든 것
열국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이라
시편 115:4
같은 내용의 병행 구절
그들의 우상들은 은과 금이요 사람이 손으로 만든 것이라
이사야 44:12-17
같은 나무로 불 피우고 신도 만드는 어리석음
12철공은 철로 연장을 만들고 숯불로 일하며 망치를 가지고 그것을 만들며 그의 힘센 팔로 그 일을 하나 배가 고프면 기운이 없고 물을 마시지 아니하면 피로하니라 13목공은 줄을 늘여 재고 붓으로 긋고 대패로 밀고 곡선자로 그어 사람의 아름다움을 따라 사람의 모양을 만들어 집에 두게 하며 14그는 자기를 위하여 백향목을 베며 디르사 나무와 상수리나무를 취하며 숲의 나무들 가운데에서 자기를 위하여 한 나무를 정하며 나무를 심고 비를 맞고 자라게도 하느니라 15이 나무는 사람이 땔감을 삼는 것이거늘 그가 그것을 가지고 자기 몸을 덥게도 하고 불을 피워 떡을 굽기도 하고 신상을 만들어 경배하며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리기도 하는구나 16그 중의 절반은 불에 사르고 그 절반으로는 고기를 구워 먹고 배불리며 또 몸을 덥게 하여 이르기를 아하 따뜻하다 내가 불을 보았구나 하면서 17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그것에게 기도하여 이르기를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이사야 40:21
땅의 기초 때부터 깨닫지 못한 자들이라는 책망
너희가 알지 못하였느냐 너희가 듣지 못하였느냐 태초부터 너희에게 전하지 아니하였느냐 땅의 기초가 창조될 때부터 너희가 깨닫지 못하였느냐
이사야 2:8
자기 손으로 만든 것에 경배함
그 땅에는 우상도 가득하므로 그들이 자기 손으로 짓고 자기 손가락으로 만든 것을 경배하여
이사야 31:7
손으로 만든 은·금 우상을 버리게 될 날
너희가 자기 손으로 만들어 범죄한 은 우상, 금 우상을 그 날에는 각 사람이 던져 버릴 것이며
이사야 37:19
열국의 신은 사람 손으로 만든 나무와 돌일 뿐
그들의 신들을 불에 던졌사오나 그들은 신이 아니라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일 뿐이요 나무와 돌이라 그러므로 멸망을 당하였나이다
호세아 14:3
다시는 손으로 만든 것을 '우리 신'이라 하지 않겠다
우리가 앗수르의 구원을 의지하지 아니하며 말을 타지 아니하며 다시는 우리의 손으로 만든 것을 향하여 너희는 우리의 신이라 하지 아니하오리니 이는 고아가 주로 말미암아 긍휼을 얻음이니이다 할지니라
미가 5:13
새긴 우상을 멸하고 손으로 만든 것에 절하지 않게 하심
내가 네가 새긴 우상과 주상을 너희 가운데에서 멸절하리니 네가 네 손으로 만든 것을 다시는 섬기지 아니하리라
시편 115:8
우상을 만들고 의지하는 자는 우상과 같아짐
우상들을 만드는 자들과 그것을 의지하는 자들이 다 그와 같으리로다

11장 5–7절 · 그레고리우스 교황의 오류에 대한 성경과 교부들의 반론

📜5. 성경은 어떤 형상도 배격한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600년 무렵)는 “형상은 글 모르는 사람에게 책과 같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성령께서 전혀 다르게 말씀하신다고 반박합니다. 예레미야는 우상의 가르침이 나무일 뿐이라고 했고, 하박국은 부어 만든 우상을 거짓 스승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니 우상에게서 배우는 하나님 지식은 모두 헛되고 거짓됩니다. 반론이 있습니다. 선지자들이 책망한 것은 형상을 미신적으로 '잘못 쓴' 사람들뿐이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그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우상을 참 하나님과 절대 함께할 수 없는 정반대의 것으로 세웁니다. 따라서 형상이 책을 대신한다는 생각 자체가 정죄됩니다. 형상으로 얻는 하나님 지식이 가짜가 아니었다면 선지자들이 그렇게 전면적으로 정죄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칼빈은 자신의 가르침이 선지자들의 말을 그대로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1. '형상은 무지한 자의 책'은 성경과 반대된다
  2. 우상에게 배우는 하나님 지식은 거짓이다
  3. 선지자는 우상을 하나님과 정반대로 세운다
  4. 칼빈은 선지자의 말을 반복할 뿐이라고 함
예레미야 10:8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 '형상은 책'이라는 주장을 정면 반박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이라
하박국 2:18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 우상에게서 배우는 것은 거짓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6. 형상에 대한 교부들의 가르침

칼빈은 초대 교회 교부들도 같은 입장이었다고 증언합니다. 락탄티우스와 유세비우스는 만들어진 형상들이 본래 죽은 사람을 묘사한 것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형상을 예배하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께 봉헌하는 것도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보다 앞선 엘비라 공의회(4세기 초 무렵 스페인에서 열린 것으로 알려짐) 36조와 같습니다. 그 조항은 교회 안에 그림을 두지 말고, 예배하는 대상을 벽에 그리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특히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 학자 바로의 말에 동의하며 인용했습니다. 신의 형상을 처음 들여온 사람들은 신에 대한 경외를 없애고 오류를 더했다는 말입니다. 칼빈은 이교도가 어둠 속에서 더듬어 이런 결론에 이르렀다는 사실이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짚은 점은 두 가지입니다. 오류가 형상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지만 형상이 더해지면서 오류가 늘었다는 것, 그리고 형상의 우스꽝스러움 때문에 하나님이 쉽게 멸시당해 경외심이 줄거나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분명합니다. 바르게 배우려는 사람은 형상이 아닌 다른 데서 하나님을 배워야 합니다.

  1. 교부들도 형상 예배와 봉헌을 반대했다
  2. 엘비라 공의회: 교회 벽에 예배 대상 그림 금지
  3. 형상은 경외를 줄이고 오류를 늘린다(바로)
  4. 형상이 아닌 다른 길로 하나님을 배우라
(없음)
이 절은 교부와 공의회 문헌으로 논증함
📜7. 교황주의자의 형상 옹호론은 부당하다

칼빈은 '형상은 무지한 자의 책'이라는 말을 쓰지 말라고 합니다. 성경의 수많은 증언이 그 말을 반박하기 때문입니다. 설령 인정해 준다 해도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실제로는 형상을 하나님 자리에 세워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인들의 그림과 조각은 사치스럽고 외설스러웠습니다. 칼빈은 교회가 만든 동정녀 형상보다 창녀의 옷차림이 더 정숙하다고까지 비판합니다. 하지만 형상을 단정하게 만든다 해도 거룩한 곳에서 가르치는 올바른 방법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말씀 선포와 성례를 통해 모두를 위한 공통의 가르침을 세우라고 명하셨습니다. 교황주의자들이 '오직 형상으로만 배울 수 있는 무지한 사람들'이라고 부르는 이들은 누구입니까? 주님이 제자로 인정하시고 하늘나라의 비밀을 가르치려 하신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무지해진 까닭은 받아야 할 유일한 가르침을 빼앗겼기 때문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이 가르칠 능력이 없는 '벙어리'여서 가르치는 일을 우상에게 넘긴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바르게 전하면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가 '눈앞에 밝히 보인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저주를 대신 지시고, 몸을 드려 죄를 속하시고, 피로 씻으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다는 사실을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나무와 돌로 만든 십자가 수천 개보다 낫습니다.

  1. 설령 '책'이라 해도 변명이 안 된다
  2. 하나님이 정하신 가르침은 말씀과 성례다
  3. 신자가 무지해진 건 가르침을 빼앗겨서다
  4. 설교가 바르면 그리스도가 눈앞에 보인다
  5. 십자가 형상보다 십자가 복음이 가르친다
갈라디아서 3:1
복음 전파로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눈앞에 밝히 보임'. 말씀이 진짜 '보이는' 가르침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 저주를 대신 지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히브리서 10:10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려 죄를 속하심
이 뜻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요한계시록 1:5
그리스도의 피로 죄에서 씻으심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로마서 5:10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됨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11장 8–16절 · 형상의 기원, 그리고 그로 인한 예배의 부패

📜8. 우상의 기원은 형체 있는 신을 찾는 부패한 욕심이다

『솔로몬의 지혜서』(외경)는 우상이 죽은 사람을 기리다가 생겼다고 말합니다. 이 설명은 널리 받아들여졌습니다. 칼빈은 그 관습이 오래되었고 우상숭배에 불을 지폈다는 점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것을 기원으로 보지는 않습니다. 죽은 자의 형상을 기리는 관습보다 앞선 모세의 기록에 이미 우상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라헬이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친 일이 흔한 일처럼 기록되어 있습니다. 홍수 뒤 몇 해 지나지 않아, 노아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이미 사람들은 신을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 이전에 데라와 나홀도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셈의 자손이 이렇게 빨리 타락했다면 함의 자손은 어땠겠습니까? 사람 마음은 교만과 대담함으로 가득해 자기 수준에 맞춰 신을 상상합니다. 그다음에는 속으로 상상한 신을 겉으로 만들어 내려 합니다. 이스라엘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이적을 많이 겪고도 눈에 보이는 상징이 없자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고 했습니다. 사람의 육신은 자기를 닮은 어떤 허상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붙잡기 전까지는 늘 불안합니다.

  1. '죽은 자 기념'은 우상의 기원이 아니다
  2. 홍수 직후에도 사람은 바로 우상을 만들었다
  3. 순서: 마음이 상상하고, 손이 만든다
  4. 보이는 상징이 없으면 불안해하는 게 육신이다
창세기 31:19
라헬이 드라빔을 훔침. '죽은 자 기념'보다 앞서 우상이 흔했음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여호수아 24:2
아브라함 이전 데라·나홀도 다른 신을 섬김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출애굽기 32:1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보이는 신을 원하는 욕심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백성이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 『솔로몬의 지혜서』 14:15-16은 외경입니다. 칼빈은 성경 근거로 쓰지 않고 '널리 퍼진 견해'로 소개한 뒤 반박합니다.

“인간의 본성 자체가 말하자면 영구한 우상의 제조 공장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9. 형상을 쓰면 우상숭배로 이어진다

헛된 형상이 생기면 곧바로 숭배가 따라옵니다. 형상 안에서 하나님을 본다고 생각하니 그 안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형상을 신이라고 여기지는 않으면서도 거기에 신적인 힘이 있다고 상상합니다. 그래서 신이든 피조물이든 형상을 만들어 놓고 숭배하는 마음으로 엎드리는 순간 이미 미신에 사로잡힌 것입니다. 하나님이 형상뿐 아니라 숭배를 부추길 만한 돌 조형물까지 금하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제2계명이 '예배'를 다루는 이유도 같습니다. 우상 자체에 절하든 우상 '속의' 하나님께 절하든 다르지 않습니다. 형상에 신적 존귀를 돌리면 어떤 핑계를 대도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는 형상을 신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변명은 통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도 자기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론이 금송아지를 가리켜 그 신이라고 하자 동의했습니다. 이교도도 신이 나무와 다르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한 신에게 여러 형상을 만들었지만 형상 수만큼 신이 늘어난다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도 사람들은 '물건이 아니라 그 안에 보이지 않게 계신 신을 섬긴다', '형상을 통해 표징을 바라볼 뿐이다'라고 변명했습니다. 결국 모든 우상숭배자의 동기는 같습니다. 영적인 이해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확실하고 친근한 무언가를 원한 것입니다.

  1. 형상이 생기면 숭배가 따라온다
  2. 우상에 절하든 우상 속 하나님께 절하든 같다
  3. '신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금송아지 때도 통했다
  4. 동기: 영적 이해로 만족 못하는 마음
출애굽기 20:25
숭배를 부추길 만한 돌 조형물도 금하신 예(번역본 표기 그대로)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레위기 26:13
이스라엘은 자기를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신 분이 하나님임을 알았음
나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해 내어 그들에게 종된 것을 면하게 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이니라 내가 너희의 멍에의 빗장을 부수고 너희를 바로 서서 걷게 하였느니라
출애굽기 32:4
아론이 금송아지를 '이끌어 낸 신'이라 하자 백성이 따름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애굽기 32:8
같은 고백.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분 아래 우상숭배가 일어남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10. 교회에서 행해지는 형상 예배

칼빈은 '그런 일은 과거에나 있었고 지금은 없다'는 주장을 뻔뻔한 거짓말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왜 사람들이 형상 앞에서 몸을 굽히고, 마치 하나님의 귀 가까이 가듯 형상 앞에 나아가 기도합니까? 아우구스티누스는 형상을 바라보며 기도하는 사람치고 형상이 듣는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고 했습니다. 같은 하나님의 형상이라면서 어떤 것은 그냥 지나치고 어떤 것에는 엄숙하게 절합니다. 집에도 비슷한 형상이 있는데 굳이 순례를 떠납니다. 형상을 지키려고 칼을 들고 싸우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은 빼앗겨도 견디면서 우상을 빼앗기는 것은 참지 못합니다. 그들은 '우리는 형상을 우리 신이라 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러나 옛 유대인도 이교도도 그렇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선지자들은 그들이 나무와 돌과 간음한다고 거듭 책망했습니다.

  1. 형상 앞에서 기도하는 것은 지금도 있다
  2. 형상마다 대우가 다르고 순례까지 한다
  3. '신이라 부르지 않는다'는 옛 우상숭배자도 했다
  4. 선지자는 이를 나무·돌과의 '간음'이라 했다
예레미야 2:27
나무와 돌을 '내 아버지'라 부르는 자들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에스겔 6:4
우상과 제단을 심판하심(6장 4절 이하)
너희 제단들이 황폐하고 분향제단들이 깨뜨려질 것이며 너희가 죽임을 당하여 너희 우상 앞에 엎드러지게 할 것이라
이사야 40:19-20
장인이 만든 우상
19우상은 장인이 부어 만들었고 장색이 금으로 입혔고 또 은 사슬을 만든 것이니라 20궁핍한 자는 거제를 드릴 때에 썩지 아니하는 나무를 택하고 지혜로운 장인을 구하여 우상을 만들어 흔들리지 아니하도록 세우느니라
하박국 2:18-19
말 못하는 나무와 돌에게 '깨라' 하는 자에게 화가 있음
18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19나무에게 깨라 하며 말하지 못하는 돌에게 일어나라 하는 자에게 화 있을진저 그것이 교훈을 베풀겠느냐 보라 이는 금과 은으로 입힌 것인즉 그 속에는 생기가 도무지 없느니라
신명기 32:37
그들이 의지하던 신들이 어디 있느냐
또한 그가 말씀하시기를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이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11. 교황주의자들의 어리석은 변명

칼빈은 그들이 교묘한 구분으로 빠져나가려 한다는 것을 압니다(16절과 12장 2절에서 다시 다룸). 그들은 형상에 드리는 것은 '둘리아(봉사·공경)'이지 '라트리아(예배)'가 아니므로 죄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칼빈의 첫 반박은 말 자체입니다. 그리스어 '라트류에인'은 그리스 사람들 사이에서 그냥 '예배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니 그들의 말은 '형상을 예배하지만 예배하지는 않는다'는 모순이 됩니다. 칼빈은 말꼬투리를 잡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들이 순진한 사람들의 눈을 가리려다 스스로 무지를 드러냈다는 것입니다. 간음한 사람이나 살인한 사람이 자기 죄를 다른 이름으로 부른다고 죄가 없어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름만 바꿔서는 옛 우상숭배자와 다르다는 것을 증명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실제로 다르다는 것을 전혀 입증하지 못했습니다.

  1. '둘리아 vs 라트리아'는 이름 바꾸기다
  2. 라트류에인은 원래 '예배하다'라는 뜻이다
  3. 죄의 이름을 바꿔도 죄는 그대로다
  4. 옛 우상숭배와 다르다는 증명이 없다
(없음)
이 절은 단어 뜻과 논리로 반박함
📜12. 형상이 허용되는 한계

칼빈은 어떤 형상도 안 된다고 할 만큼 미신에 사로잡히지 않았다고 분명히 말합니다. 조각과 그림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입니다. 그러니 순수하고 정당하게 써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과 우리 유익을 위해 주신 재능을 잘못 써서 우리를 망치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만 하나님을 보이는 모양으로 표현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하나님이 친히 금하셨고, 그렇게 하면 반드시 그분의 영광이 더럽혀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그리는 것도 옳지 않은데 형상을 하나님으로 여기거나 그 안에 하나님이 계시다고 절하는 것은 더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눈으로 볼 수 있는 것만 그리고 새겨야 합니다. 표현할 수 있는 것은 두 종류입니다. 하나는 역사와 사건이고, 다른 하나는 사건과 상관없는 인물 모습이나 형태입니다. 앞의 것은 교육에 어느 정도 도움이 되지만, 뒤의 것은 즐거움 말고는 별 도움이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에 장식된 형상은 거의 다 뒤의 것입니다. 그러니 신중한 판단이 아니라 무분별한 욕심의 결과입니다. 해가 없다 해도 가르침에는 가치가 없습니다.

  1. 그림·조각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다
  2. 하나님을 보이는 모양으로 그리는 것은 금지
  3. 눈에 보이는 것만 그리고 새길 수 있다
  4. 역사화는 교육에 약간 도움, 인물상은 즐거움뿐
  5. 교회 장식 형상은 대부분 가르침에 무가치
출애굽기 20:4
하나님을 형상으로 표현하는 것을 하나님이 친히 금하심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13. 형상은 순전한 신앙을 타락시킨다

이제 칼빈은 역사 장면이든 인물이든 교회 건물 안에 형상을 두는 것이 적절한지 묻습니다. 고대 교회의 권위를 조금이라도 인정한다면 기억할 사실이 있습니다. 참된 신앙이 번성하던 처음 오백여 년 동안 교회에는 형상이 없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형상은 교회 사역의 순수성이 쇠퇴하면서 들어왔습니다. 교부들이 몰라서 형상을 들이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쓸모가 거의 없고 매우 위험하다고 판단해 일부러 배격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형상을 높은 자리에 두면 생명 없는 것이 살아 있는 것처럼 보여 약한 마음을 흔든다고 했습니다. 또 형상은 입·귀·눈·발이 있어 영혼을 비뚤게 할 힘은 있지만, 말하지도 보지도 듣지도 걷지도 못해 영혼을 바로잡을 힘은 없다고 했습니다. 요한이 우상숭배뿐 아니라 '우상 자체'를 멀리하라고 한 이유도 이것입니다. 실제로 교회에 형상이 세워지자마자 우상숭배의 깃발이 오른 셈이 되었습니다. 교회당에는 하나님이 말씀으로 거룩하게 구별하신 살아 있는 상징, 곧 세례와 성찬만 있으면 됩니다. 이 예식이 사람이 지어낸 다른 형상이 필요 없을 만큼 우리 눈을 사로잡고 마음을 움직여야 합니다.

  1. 처음 오백여 년 교회엔 형상이 없었다
  2. 교부들은 위험하다고 보고 일부러 배격했다
  3. 형상은 마음을 비뚤게 할 뿐 바로잡지 못한다
  4. 교회의 '보이는 표'는 세례와 성찬이면 된다
요한일서 5:21
우상숭배뿐 아니라 우상 자체를 멀리하라는 경고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14. 형상에 관한 니케아 공의회(787년)의 어리석은 결정

칼빈은 787년 니케아 공의회를 다룹니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소집한 첫 니케아 공의회(325년)가 아닙니다. 이레네 황후의 명령과 후원으로 열린 공의회입니다. 이 공의회는 교회에 형상을 두어야 할 뿐 아니라 그것을 경배해야 한다고 결정했습니다. 칼빈은 공의회의 권위에 개의치 않습니다. 오히려 형상에 집착한 사람들이 얼마나 정신을 잃었는지 보여 주려 합니다. 오늘날 형상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이 공의회를 근거로 듭니다. 그러나 당시 샤를마뉴의 이름으로 나온 반박 문서가 있습니다. 문체로 보아 당시 작성된 것이고, 감독들의 발언과 근거가 담겨 있습니다. 동방 대표 요한은 하나님이 사람을 자기 형상대로 지으셨으니 우리도 형상을 가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가서의 '네 얼굴을 보게 하라'가 형상을 명령한다고도 했습니다. 어떤 이는 '등불을 등경 위에 둔다'는 말씀으로 형상을 제단 위에 두자고 했습니다. 또 시편 4편의 '주의 얼굴을 비추소서'를 형상을 보는 유익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다른 이들은 족장들이 이교도의 제물을 썼듯 성인의 형상이 이교 우상을 대신한다고 하며 시편 26편을 끌어왔습니다. 요한일서 1장 1절의 '눈으로 본 바'를 형상을 보아야 하나님을 안다는 뜻으로 풀었습니다. 테오도루스 감독은 시편의 '성도들'을 형상으로 해석했습니다. 칼빈은 이런 주장은 언급하는 것조차 수치스럽다고 합니다.

  1. 787년 공의회 ≠ 325년 첫 니케아 공의회
  2. 결정: 교회에 형상을 두고 경배하라
  3. 샤를마뉴 이름의 반박 문서가 당시 남아 있음
  4. 근거로 든 성경 해석이 모두 억지였다

성경의 근거(공의회가 형상의 근거로 끌어다 쓴 구절 — 칼빈은 모두 억지 해석으로 봄):

장절이 구절의 역할
창세기 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를 형상 소유 명령으로 오용
아가 2:14
바위 틈 낭떠러지 은밀한 곳에 있는 나의 비둘기야 내가 네 얼굴을 보게 하라 네 소리를 듣게 하라 네 소리는 부드럽고 네 얼굴은 아름답구나
'네 얼굴을 보게 하라'를 형상 명령으로 오용
마태복음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등경 위에 둔다'를 형상을 제단 위에 두라는 뜻으로 오용
시편 4:6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주의 얼굴을 비추소서'를 형상 보는 유익으로 오용
시편 26:8
여호와여 내가 주께서 계신 집과 주의 영광이 머무는 곳을 사랑하오니
'주의 집을 사랑한다'를 성인 형상 근거로 오용
요한일서 1: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눈으로 본 바'를 형상으로 하나님을 안다는 뜻으로 오용
시편 68:35
하나님이여 위엄을 성소에서 나타내시나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그의 백성에게 힘과 능력을 주시나니 하나님을 찬송할지어다
'성도들 가운데'를 형상으로 오용
시편 16:3
땅에 있는 성도들은 존귀한 자들이니 나의 모든 즐거움이 그들에게 있도다
'땅에 있는 성도들'을 형상으로 오용
📜15. 성경 본문을 어리석게 왜곡함

공의회는 '경배'를 논하면서 몇몇 본문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야곱이 바로를 축복한 일, 야곱의 지팡이, 야곱이 세운 돌기둥입니다. 그런데 돌기둥의 경우 그들은 성경의 뜻을 비틀었을 뿐 아니라 성경 어디에도 없는 내용을 붙잡았습니다. 이어서 '그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라', '그 성산에서 예배하라',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한다'를 확실한 증거라고 내세웠습니다. 칼빈은 형상 옹호자를 조롱하려고 지어낸다 해도 이보다 유치하게 만들 수는 없을 것이라고 합니다. 미라(Myra)의 감독 테오도시우스는 자기 부제가 꾼 꿈을 하늘의 말씀처럼 여겨 형상 경배의 근거로 삼았습니다. 그러니 형상 옹호자들이 니케아 공의회를 내세우더라도 걱정할 것 없습니다. 그 교부들이 성경을 이렇게 다룬 것 자체가 공의회의 신뢰를 무너뜨리기 때문입니다.

  1. 경배 근거로 야곱 이야기를 끌어왔다
  2. 돌기둥 해석은 성경에 없는 내용이다
  3. 꿈을 하늘의 말씀처럼 근거로 삼기도 했다
  4. 성경을 이렇게 다룬 공의회는 신뢰를 잃는다

성경의 근거(공의회가 오용한 구절):

장절이 구절의 역할
창세기 47:10
야곱이 바로에게 축복하고 그 앞에서 나오니라
야곱이 바로를 축복함. 경배 근거로 오용
창세기 47:31
야곱이 또 이르되 내게 맹세하라 하매 그가 맹세하니 이스라엘이 침상 머리에서 하나님께 경배하니라
야곱의 지팡이. 경배 근거로 오용
히브리서 11:21
믿음으로 야곱은 죽을 때에 요셉의 각 아들에게 축복하고 그 지팡이 머리에 의지하여 경배하였으며
같은 장면의 신약 구절. 경배 근거로 오용
창세기 28:18
야곱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야곱의 돌기둥. 성경에 없는 의미를 덧붙임
시편 99:5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그는 거룩하시도다
'발등상 앞에서 경배하라'를 형상 경배로 오용
시편 99:9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
'성산에서 예배하라'를 형상 경배로 오용
시편 45:12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네 얼굴 보기를 원한다'를 형상 근거로 오용
📜16. 형상 경배를 결의한 공의회의 참람함

칼빈은 공의회에서 나온 충격적인 발언을 공개합니다. 교황주의자들이 형상 예배의 근거로 내세우는 '오래된 전통'이라는 핑계를 벗겨 내려는 것입니다. 아모리움의 감독 테오도시우스는 형상 경배를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파문했습니다. 어떤 이는 그리스와 동방 제국의 모든 불행이 형상을 경배하지 않은 탓이라고 했습니다. 칼빈은 묻습니다. 그렇다면 형상이 아예 없던 시대의 선지자·사도·순교자들은 어떤 벌을 받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황제의 조각상에도 향을 피우는데 성인 형상은 더 높여야 하지 않느냐고도 했습니다. 키프로스의 콘스탄티우스 감독은 삼위 하나님께 드리는 예로 형상을 경배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는 사람은 마르키온파나 마니교도 같은 이단으로 여기겠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개인 의견이 아니라 모두가 동의한 것이었습니다. 동방 대표 요한은 형상 경배를 부정하느니 도시에 매음굴을 허용하는 편이 낫다고까지 했습니다. 공의회는 형상 반대자가 사마리아인보다 더 나쁘다고 만장일치로 결의했고, '그리스도의 형상에 제물을 드리는 자들이여 기뻐하라'는 문구로 마무리했습니다. 칼빈은 묻습니다. 그 '라트리아와 둘리아의 구분'은 어디로 갔느냐고요. 공의회 스스로 형상을 살아 계신 하나님과 똑같이 대했습니다.

  1. 형상 경배를 반대하면 파문했다
  2. 나라의 불행을 형상 경배 거부 탓으로 돌렸다
  3. 삼위 하나님께 드리는 예로 형상을 경배하겠다고 함
  4. 공의회 스스로 예배·공경 구분을 무너뜨렸다
(없음)
이 절은 공의회 기록을 그대로 드러내 반박함

제12장 · 하나님은 우상과 전혀 다르시므로 오직 그분께만 온전한 존귀를 드려야 한다

📜1. 유일하신 하나님께만 존귀를 돌려야 한다

칼빈은 처음에 했던 말을 다시 꺼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차가운 이론이 아니라 하나님을 존귀하게 여기는 마음을 함께 낳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은 한 분'이라고 말할 때는 이름만 하나라는 뜻이 아닙니다. 신성에 속한 것을 다른 어떤 것에도 돌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참된 신앙과 미신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유세베이아(경건)'를 '합당한 예배'라는 뜻으로 썼습니다.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을 잘못 섬기지 않으려면 분명한 기준이 필요하다고 느낀 것입니다. 키케로는 '종교(religio)'가 '다시 읽다(relegere)'에서 왔다고 했습니다. 칼빈은 그 어원은 옳다고 보지만, 참된 예배자는 진리를 거듭 읽고 생각한다는 그의 설명은 억지라고 봅니다. 칼빈은 '종교'가 '제멋대로 함(방종)'의 반대말이라고 봅니다. 경건은 든든한 기반 위에서 정해진 한계를 지키고, 미신은 정해진 질서에 만족하지 못하고 헛된 것을 쌓아 갑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질투하는 하나님이며 다른 신과 섞이면 엄히 갚으신다고 선언하십니다. 또 율법으로 자신이 입법자임을 보이시고, 자기 뜻대로 예배하는 규범을 세워 사람이 악한 의식에 빠지지 않게 막으십니다. 미신은 겉으로는 최고의 하나님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분을 맨 위에 두되, 그 주위에 낮은 신들을 세워 하나님의 일을 나눠 맡깁니다. 그래서 몇 세기 전부터 죽은 성인들이 하나님의 협력자로 올라가 기도와 찬송을 받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위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짓눌려 우리는 그분의 권능에 대해 빈약한 생각만 품게 되었습니다.

  1. '한 분 하나님' = 신성을 아무와도 나누지 않음
  2. 종교는 '방종'의 반대, 정해진 한계를 지킴
  3. 하나님은 질투하시며 예배 규범을 정하신다
  4. 미신은 하나님을 맨 위에 두고 일을 나눠 맡긴다
  5. 성인 숭배로 하나님의 위엄이 짓눌렸다
출애굽기 20:5
질투하는 하나님. 다른 신과 섞이는 것을 엄히 갚으심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2. 예배와 봉사(공경)의 구분은 허구다

칼빈이 보기에 라트리아(예배)와 둘리아(공경)의 구분은 목적이 분명합니다. 하나님께 드릴 존귀를 천사와 죽은 사람에게 옮겨도 죄가 없어 보이게 하려고 만든 것입니다. 실제로 교황주의자들이 성인에게 드리는 존귀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과 차이가 없습니다. 다른 점은 비판을 받을 때 '라트리아는 하나님께만 드린다'고 변명한다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단어가 아니라 실제 행위입니다. 그들의 구분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예배(cultus, 그리스어 라트레이아)는 하나님께, 섬김(servitium, 그리스어 둘레이아)은 다른 존재에게 드린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이 구분이 흐려지기도 합니다. 그래도 칼빈은 일단 이 구분을 받아들여 봅니다. 둘레이아는 '종으로서 섬기는 것'이고 라트레이아는 '예배'입니다. 그런데 누군가의 종이 되는 것은 존경을 표하는 것보다 더 큰 일입니다. 존경은 기꺼이 표해도 종이 되기는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결국 성인에게 더 큰 것을, 하나님께 더 작은 것을 드리는 셈입니다. 옛 저자들도 이 구분을 썼다는 반론이 있습니다. 칼빈은 지금 모두가 그 구분이 부당하고 무가치하다고 본다면 옛사람이 썼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답합니다.

  1. 구분의 목적: 성인 숭배를 정당화하기 위함
  2. 문제는 단어가 아니라 실제 행위다
  3. 둘레이아 = 종 됨, 오히려 더 큰 헌신
  4. 결국 성인에게 더 큰 것을 드리는 셈
  5. 옛 저자가 썼다고 옳은 것은 아니다
(없음)
이 절은 단어 뜻과 논리로 반박함
📜3. 형상(피조물)에게 경배하는 것은 하나님을 욕되게 한다

이제 칼빈은 말이 아니라 실제를 봅니다.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기 전 신이 아닌 것들에게 '종노릇(둘레이아)'했다고 말합니다. 라트레이아라는 말을 안 썼다고 그 미신을 봐준 것이 아닙니다. 둘레이아라는 말로도 똑같이 정죄한 것입니다. 사탄은 예수님께 엎드려 절하라고만(프로스퀴네시스)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오직 그를 섬기라(라트류에인)'로 물리치셨습니다. 단어 구분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천사 앞에 엎드렸다가 책망을 받았습니다. 요한이 하나님의 존귀를 천사에게 넘기려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종교적인 경배 행위가 피조물을 향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가려집니다. 칼빈은 사람끼리 예의로 하는 절(사회적 경의)과 종교적 경배를 구별합니다. 앞의 것은 괜찮지만, 경배 행위와 결합하면 하나님의 존귀가 더럽혀집니다. 고넬료도 베드로를 하나님 대신 예배하려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그를 말렸습니다. 사람은 하나님께 하는 경배와 피조물에게 하는 경배를 완벽하게 구별해 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스가랴는 그날에 여호와와 그 이름이 홀로 하나일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율법으로 예배의 표준을 정하셔서 아무도 제멋대로 예배를 고안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결론은 이것입니다. 경배를 하나님 외의 어떤 존재에게 돌리는 순간 신성모독이 일어납니다. 미신은 처음에 해와 별과 우상에게 신적 존귀를 돌렸습니다. 그다음 야심이 생겨 하나님께 빼앗은 것으로 죽을 인생들을 꾸몄습니다. 그 결과 최고의 신을 섬긴다는 원리는 유지하면서도 수호신과 하급 신, 죽은 영혼들에게 마구 제사하게 되었습니다.

  1. '종노릇(둘레이아)'도 성경은 정죄한다
  2. 예수님은 절(경배) 요구를 '섬김'으로 물리치셨다
  3. 사람끼리의 예의와 종교적 경배는 다르다
  4. 사람은 경배의 대상을 나눠 조절할 수 없다
  5. 하나님 외의 존재에 경배하면 신성모독이다
갈라디아서 4:8
신이 아닌 것에 '종노릇(둘레이아)'. 둘레이아도 정죄 대상임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마태복음 4:10
사탄의 '절하라'에 '오직 그를 섬기라'로 답하심. 단어 구분은 무의미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요한계시록 19:10
천사 앞에 엎드린 요한이 책망받음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언을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언은 예언의 영이라 하더라
요한계시록 22:8-9
같은 일이 반복됨. 종교적 경배는 하나님께만
8이것들을 보고 들은 자는 나 요한이니 내가 듣고 볼 때에 이 일을 내게 보이던 천사의 발 앞에 경배하려고 엎드렸더니 9그가 내게 말하기를 나는 너와 네 형제 선지자들과 또 이 두루마리의 말을 지키는 자들과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 하더라
사도행전 10:25
고넬료가 베드로에게 엎드림. 베드로가 말림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스가랴 14:9
그날에 여호와와 그 이름이 홀로 하나. 하나님은 우상과 아무것도 나누지 않으심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형상 옹호론자형상 금지는 미신에 약한 유대인에게만 준 규정이다금지는 하나님의 영원한 본성에 근거한다. 바울은 이방인에게도 같은 말을 했다사도행전 17:29
이와 같이 하나님의 소생이 되었은즉 하나님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형상 옹호론자성경에도 구름·불·비둘기 같은 표징과 그룹 형상이 있다표징은 하나님의 '보이지 않음'을 가르쳤다. 그룹은 오히려 하나님을 가렸고, 옛 어린아이 시대에 속한다출애굽기 33:20, 출애굽기 25:17-21, 갈라디아서 4:3
출애굽기 33:20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출애굽기 25:17-21 17순금으로 속죄소를 만들되 길이는 두 규빗 반, 너비는 한 규빗 반이 되게 하고 18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두 끝에 쳐서 만들되 19한 그룹은 이 끝에, 또 한 그룹은 저 끝에 곧 속죄소 두 끝에 속죄소와 한 덩이로 연결할지며 20그룹들은 그 날개를 높이 펴서 그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그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하고 21속죄소를 궤 위에 얹고 내가 네게 줄 증거판을 궤 속에 넣으라
갈라디아서 4:3 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의 초등학문 아래에 있어서 종 노릇 하였더니
그리스(동방) 그리스도인조각만 아니면 그림으로 하나님을 그려도 된다'새긴 형상'뿐 아니라 '모양'도 금지된다. 어떤 형태든 하나님을 그리면 왜곡된다출애굽기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그레고리우스 1세·교황주의자형상은 글 모르는 사람에게 책이다우상의 가르침은 거짓이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례로 가르치라고 하셨다. 사람들이 무지해진 것은 가르침을 빼앗겨서다예레미야 10:8, 하박국 2:18, 갈라디아서 3:1
예레미야 10:8 그들은 다 무지하고 어리석은 것이니 우상의 가르침은 나무뿐이라
하박국 2: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갈라디아서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 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형상 옹호론자선지자들이 책망한 것은 형상을 미신적으로 오용한 사람들뿐이다그 점은 인정한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우상을 하나님과 정반대로 세웠으므로 형상으로 배운다는 생각 자체가 정죄된다하박국 2:18
새긴 우상은 그 새겨 만든 자에게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스승이라 만든 자가 이 말하지 못하는 우상을 의지하니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솔로몬의 지혜서』(외경)의 견해우상은 죽은 사람을 기리다 생겼다그 관습이 우상숭배를 부추긴 것은 맞지만 기원은 아니다. 그보다 앞서 우상이 흔했다. 기원은 사람 마음이다창세기 31:19, 여호수아 24:2
창세기 31: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여호수아 24:2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우상숭배자(옛날과 지금)우리는 형상을 신이라 부르지 않는다. 형상 '속의' 하나님이나 그 표징을 섬긴다금송아지 때도 그랬다. 형상에 신적 존귀를 돌리면 어떤 핑계를 대도 우상숭배다출애굽기 32:4, 출애굽기 32:8, 예레미야 2:27
출애굽기 32:4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 고리를 받아 부어서 조각칼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출애굽기 32: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령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 하였도다
예레미야 2:27 그들이 나무를 향하여 너는 나의 아버지라 하며 돌을 향하여 너는 나를 낳았다 하고 그들의 등을 내게로 돌리고 그들의 얼굴은 내게로 향하지 아니하다가 그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이르기를 일어나 우리를 구원하소서 하리라
교황주의자형상과 성인에게는 둘리아(공경)만 드리고 라트리아(예배)는 하나님께만 드린다이름만 바꾼 것이다. 둘레이아(종 됨)가 오히려 더 크고, 성경은 둘레이아도 정죄한다. 문제는 행위다갈라디아서 4:8, 마태복음 4:10
갈라디아서 4:8 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 노릇 하였더니
마태복음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787년 니케아 공의회교회에 형상을 두고 경배하라. 성경도 그렇게 말한다근거로 든 해석이 모두 억지다. 꿈까지 근거로 삼았다. 공의회 스스로 형상을 하나님처럼 대했다출애굽기 20:4 (오용 사례: 창세기 1:27, 요한일서 1:1)
형상 옹호론자형상 공경은 오래된 전통이다처음 오백여 년 교회에는 형상이 없었다. 교부와 엘비라 공의회도 반대했다요한일서 5:21
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미신(성인 숭배)최고의 하나님은 그대로 두고, 성인을 그분의 협력자로 공경할 뿐이다그렇게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여러 갈래로 찢긴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을 누구와도 나누지 않으신다출애굽기 20:5, 스가랴 14:9
출애굽기 20: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스가랴 14:9 여호와께서 천하의 왕이 되시리니 그 날에는 여호와께서 홀로 한 분이실 것이요 그의 이름이 홀로 하나이실 것이라
흔한 오해칼빈은 그림과 조각 같은 예술 자체를 반대했다아니다. 예술은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다. 금지 대상은 하나님을 그리는 것과 형상을 경배하는 것이다출애굽기 20: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어떤 형상도 만들지 말며
📖용어
자존성(自存性)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기대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신다는 성질입니다.
엘로힘구약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칼빈은 여기에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형상(새긴 형상)과 모양나무·돌·금속으로 깎거나 부어 만든 상과, 그림처럼 모습을 본뜬 것입니다. 제2계명은 둘 다 금합니다.
우상숭배하나님이 아닌 것, 또는 하나님을 본뜬 물건에 하나님께만 드릴 존귀를 돌리는 일입니다.
속죄소와 그룹속죄소는 언약궤의 덮개이고, 그룹은 그 위에서 날개로 덮고 있던 천사 모양의 조형물입니다.
라트리아와 둘리아로마 교회가 나눈 두 가지 공경입니다. 라트리아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 둘리아는 성인·형상에게 드리는 공경입니다.
프로스퀴네시스엎드려 절하는 경배 행위를 가리키는 그리스어입니다.
교황주의자칼빈이 교황의 권위를 따르는 당시 로마 교회 편 사람들을 부르던 말입니다. 논쟁 상대를 가리키는 16세기 용어입니다.
공의회교회 지도자들이 모여 교리와 제도를 결정한 회의입니다. 이 편에는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와 엘비라 공의회가 나옵니다.
성례하나님이 말씀으로 정하신 '보이는 말씀'입니다. 개신교에서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를 말합니다.
💬청년의 삶으로
  • 진로나 연애를 앞두고 '확실한 표징'이 보여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고 믿게 될 때 → 이스라엘이 이적을 겪고도 보이는 신을 원했던 것처럼, 보이는 증거를 요구하는 마음 자체가 우상의 뿌리라고 칼빈은 진단합니다(11장 8절).
  • 돈·커리어·외모를 의지하는 것도 우상일까? → 칼빈의 본문은 신상과 그림을 다룹니다. 다만 그는 우상이 '마음이 잉태하고 손이 낳는 것'이라고 하므로, 하나님 대신 기대는 것을 만들어 내는 마음을 살피는 적용은 가능합니다(11장 8절, 적용임을 밝힐 것).
  • 교회 인테리어, 굿즈, 분위기 있는 예배 연출이 신앙에 도움이 될까? → 칼빈은 하나님이 정하신 가르침이 말씀과 성례이고, 사람이 꾸민 볼거리가 그 자리를 차지하면 안 된다고 답합니다(11장 7절, 13절).
  • 존경하는 목사나 유명 크리스천을 어디까지 높여도 될까? → 사람끼리의 예의와 존경은 괜찮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 드릴 신뢰와 경배가 사람에게 옮겨 가면 베드로처럼 막아야 한다고 칼빈은 말합니다(12장 3절).
  • 디자이너·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는데, 크리스천이 시각 예술을 해도 될까? → 칼빈은 그림과 조각을 하나님이 주신 재능이라 부르며, 하나님을 그리는 것만 피하고 순수하게 쓰라고 합니다(11장 12절).
✅이 편의 결론
  • 성경이 보여 주는 하나님은 자연이 보여 주는 하나님과 같은 분입니다. 우리가 그분을 두려워하면서 신뢰하게 하십니다.
  • 하나님을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면 어떤 재료나 모양이든 그분의 영광이 훼손됩니다. '책'이나 '표징'이라는 핑계도 통하지 않습니다.
  • 우상은 형체 있는 신을 원하는 사람 마음에서 나오고, 형상이 생기면 곧 경배가 따라옵니다.
  • '예배와 공경은 다르다'는 구분은 이름만 바꾼 것입니다. 종교적 경배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려야 합니다.
  • 하나님이 정하신 '보이는 가르침'은 말씀 선포와 세례·성찬입니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존 칼빈 『기독교강요』(생명의말씀사)의 논증 구조를 우리 말로 정리한 것입니다(원문 미전재).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기준입니다. youtube.com/@빛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