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리탄
묵상 나눔
큐티조아· 2026년 9월 23일 (수) 모두에게

의무를 다 행할 것이요

본문 미기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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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

본문 요약
계대혼인법 - 형이 아들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와 결혼해 아들을 낳아주고, 그 아이가 죽은 형의 이름과 땅을 이어받게 하신 법(신 25:5-6)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지파별로, 가문별로 땅을 나누어 주셨다. 그 땅은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너도 하나님의 백성이다" 라는 언약의 증표였다. 그래서 아들없이 사람이 죽으면 그 가문의 이름이 이스라엘에서 사라지고, 남겨진 아내(과부)는 기댈 곳이 없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계대혼인법을 만드신 것이다. 그런데 손해를 보는 사람이 생긴다. 형이 아들없이 죽으면 형의 땅은 동생의 소유가 된다. 그런데 동생이 형수에게서 아들을 낳아주면 그 아이는 법적으로 형의 아들이 되고 따라서 그 아들이 형의 땅을 소유하게 된다. 그래서 동생은 전적으로 형의 가문과 재산을 위해서 희생하는 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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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질문에 답하기
답 1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계대혼인법은 단지 죽은 자의 이름과 남은 과부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려는 목적만 있지는 않다. 더 중요한 자신을 내어주는 하나님의 사랑을 통해 구원의 섭리를 가르친다. 이 계대혼인법에 대한 구체적인 이야기는 룻기에 자세히 나와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죽은 자로서 하나님 앞에서 이름도 기업도 없는 사람이었다. 누군가 나를 위해 손해를 감수해야만 했는데, 예수님께서 나의 형제가 되어서 생명으로 그 값을 치르셨다. 그 결과 우리는 새 이름과 영원한 기업을 받았다. 우리의 이름이 하나님 나라에서 끊어지지 않게 되었다.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계대혼인법이 왜곡이 된다. 먼저 법을 알면서도 자신이 손해보기 싫어서 순종을 하지 않는 경우가 생겼다. 또한 "자손이 없으면 하나님께 버림받는 것이다"라는 인식이 굳어져서 자손없이 죽는 것을 큰 수치와 불명예로 여겼다. 훗날 예수님께서 이 땅으로 친히 오셔서 너희들이 오해하였다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한 여인이 "당신을 밴 태가 복이 있다"고 외치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며 복의 기준을 출산에서 말씀으로 옮기신다. 계대혼인법의 목적(이름이 끊어지지 않게)을 혈통없이 예수님께서 직접 이루시겠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한 가정과 가문을 위한 법이지만, 결국은 하나님 나라를 만드는 법이다. 그래서 한 가정이 올바르게 서기 위해서 온 공동체가 함께 돕는다.
답 2본문 사람 자리에 선 나
사건
나는 본성이 다른 사람들에게 관심이 없다. 혼자서 누구의 방해도, 간섭도 없이 혼자 조용히 지내는 걸 좋아한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목장에서 다른 지체들의 힘든 고난의 사건을 들을 때면,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힘든 상황이겠구나 이해는 되지만, 그 마음이 체휼되지는 않는다. 그래서 이야기를 들으며 눈물을 훔치는 다른 지체들이 부럽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그렇다. 심지어 가족들의 어려움에도 크게 마음의 동요가 없으며, 나에게 피해가 오는 경우 불편감을 느낀다. 요즘에 막내딸이 학원을 안 가고 땡땡이치는 일이 빈번하여 학원에 가서 교재를 찾아와야 하는 일 자주 발생한다. 아내는 나에게 퇴근길에 찾아서 오라고 하는데, 짜증이 확 밀려온다. 자녀의 성적이고 구원이고 안중에 없고 그냥 귀찮은 일이 발생하여 다 미워진다.
나
사람의 기질이라는 게 바뀌는 게 아닌갑다. 대단한 사건이 아니더라도 이런 일을 통해서도 내게 사랑이라는 마음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사랑이 없기에 그냥 조건적인 관계로 살아가게 되는 것 같다. 심지어 가족과의 관계에서도... 내게 해주는 만큼 상대방을 대접해준다. 그것도 내게 편한 방식으로 상대방에게 해준다. 예수님께서 명하신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은 내게 있어서 근본적으로 불가능한 미션이다. 얼마나 사랑을 하는가로 구원이 결정된다면 나는 이미 지옥불에 떨어졌을거다.
십자가
성경에 흐르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사랑이다. 그 마음을 가시적으로 확증하신 사건이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사건이다. 사랑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는 내게 희미하게나마 그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려주셨다. 인간적인 에로스 사랑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이 아니다. 이것은 대상이 가치가 있어서 사랑하는 것으로 나를 채우려고 위로 올라가는 사랑이라고 한다.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얻으려고 하는 사랑, 이것이 에로스이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보여주신 사랑은 구약에서는 헤세드, 신약에서는 아가페 사랑이다. 이것은 언약으로 끝까지 지키시는 사랑이라고 한다. 뭔가 이유가 확실치 않은데, 아니 사랑받을 자격이 하나도 없는데 하나님께서는 무조건적으로 그리고 의지적으로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으로 약속하셨고, 그것을 지키기 위해 당신의 생명까지도 바치셨다. 나로서는 이해하기도 어렵고, 따를 수도 없는 그 사랑을 보여주셨다. 사랑이라는 것이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하는 것인데, 얼마나 희생하냐면 자신의 가장 중요한 생명까지도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이 사랑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의 그 사랑 덕분에 나는 생명을 얻게 되었다. 그리고 여전히 육적인 본성이 다리를 잡아서 갈등 충만한 인생이지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 위해서 애쓰는 인생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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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한 걸음과 간구
값을 매길 수 없어서 값없이 주신 사랑에 빚진 내가 다른 사람도 아닌 가족들의 요청을 귀찮아하다니 절대 그럴 수 없다. 오늘 퇴근하는 길에 학원을 들러서 사랑스런 막내딸의 교재를 받아오리라. 앞으로도 쭉 받아오리라~

간구 늘 육적인 본성에 압도당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살 때가 많지만, 늘 성령님께서 나의 마음 속에서 예수님을 조명해 주셔서 정신차리게 해주신다. 오늘도 내일도 영원히 그 사랑을 잊지 않고 살기를 바라고, 성령님께 항상 간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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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개 · 정죄 없이, 따뜻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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