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상 나눔
큐티조아· 2026년 9월 15일 (화) 모두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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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하기
두 질문에 답하기답 1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
하나님의 백성들 공동체에 죄가 조금이라도 스며들지 않도록 철저한 준비책을 마련해 주신다. 억울한 사람들이 피흘리지 않도록 증인제도를 만드셨고, 도피성도 만드셨고, 오늘은 죽인 자가 누군지 알 수 없는 피살된 시체에 대한 죄책을 처리하는 방법도 세밀하게 마련해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아무리 작은 죄라도 싫어하시는구나, 그래서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조금이라도 죄가 없게 거룩한 모습으로 살기를 원하시는구나를 알 수 있고, 또한 죄에 대한 책임을 반드시 져야 하는데, 그것이 누군가의 생명과 피로써 해야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다. 구약 시대의 사람들은 희미하게 알 수 있었지만, 은혜의 시대를 사는 우리는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하게 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으로 우리들의 모든 죄를 대신 책임지시기 위해서 그의 피를 흘리시고 죽으셨다는 것이다.
답 2본문 사람 자리에 선 나
나
우리집에는 교회를 떠난 세 자녀가 있다. 그 중에서도 부모말을 잘 듣고 교회를 그나마 출석을 했던 큰아들이 최근에 교회를 떠나 방황을 하고 있어서 신경이 많이 쓰인다. 교회, 목장을 잘 참석하면 용돈을 이만큼 주겠다고 언약을 하고 생활하다가, 갑작스런 아들의 심경의 변화 - 실연, 불투명한 미래 - 를 겪으며 교회 공동체를 떠나고 휴학을 해버렸다. 그래도 묵묵히 지켜보며 용돈을 유지했었는데, 네 달 전부터 용돈을 끊어 버렸다. 아들은 분노하며 부모를 원망하며 소통없이 지내다가 며칠 전 아주 오랜만에 집에서 독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일방적으로 통보하며 용돈을 끊는 것에 대해서 부모에 대한 원망을 토해냈다. 힘들고 어려운 시간이었는데, 부모로서 위로를 못해줄 망정 용돈을 끊음으로써 자신을 더 힘들게 했다는 이야기였다. 나는 일방적인 언약을 먼저 깬 아들에게 대한 분노로 인해서 당시 아들이 느끼는 감정을 체휼하지 못했다. 아들이 저렇게 살다가 돌이킬 수 없는 나락으로 빠져 폐인이 되지는 않을까 하는 두려움을 느껴서 아들이 내가 생각하는 옳은 길로 가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 자리에서는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흐지부지 소중한 만남의 장이 끝나 버렸다.
계속 이 문제에 대해서 말씀으로 해석하려고 하고, 지체들에게 나누면서 계속 고민을 했다. 어느날 MZ 청년들을 묵상하는 가운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와 완전히 다른 세대인 MZ들을 내 가치관으로 바라봐서는 안 되는 거다. 우리들교회 청년들은 가족이 아니기 때문에 그나마 좋은 면으로 만날 수 있지만, 자녀들은 좋은 점과 나쁜 점 모두를 보게 되므로 상대적으로 나의 자녀들이 더 심각하게 보였던 게 아닐까? 자신의 감정과 마음 상태가 가장 중요한 MZ 세대인 아들에게 나의 옳고 그름의 기준만을 강요하며 그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구나. 아들이 하나님의 자녀, 택자라면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지시고 인도하실 것인데, 내가 아들의 구원까지도 책임지려고 선을 넘었었구나. 대치동에서 학생으로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경쟁과 비교의식으로 비참한 삶인지를 나는 몰랐었다. 거기다가 어렸을 때는 공부로 자녀들을 억압하고 조종했었고, 지금은 돈으로 자녀들의 삶을 조정하고 억압하고 있었구나... 수단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자녀들을 조종하고 있는 나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깨닫게 되었다.
그러면 방황하여 교회를 떠난 아들을 나는 어떤 자세로 바라봐야 하는 것일까? 문득 탕자의 아버지가 생각이 났다. 탕자가 언제든 돌아올 때를 대비해서 집문을 열어놓고 기다리고 있었고, 탕자가 돌아왔을 때는 맨발로 튀쳐나가 안아주고 잔치를 벌였던 아버지. 자녀가 돌아올 때는 나는 알 수 없으나 그 때를 진득하게 기다리며 언제든 돌아갈 둥지같은 모습으로 기다리고 있는 아버지가 되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명기 말씀에서도 출애굽을 기억하기 위해서 마음을 잘 지키라는 말씀이 있었다. "오직 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신 4:9) 우리의 마음이 중요한데, 아들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겠다고 결단하게 되었다.
가정에 문제가 생겼을 때, 비단 가정이 아니고 사회에서도 책임자/가해자를 찾아서 책임을 물으려고 한다. 본능적으로 내가 책임자가 아니라고 핑계를 대고 합리화를 하게 된다. 우리들의 모든 죄책을 예수님께서 자신의 생명으로 해결하였듯이, 자녀들의 구원을 위해서는 책임자가 누군지 모르는 모든 문제와 심지어 자녀가 명확히 잘못한 것에 대해서도 가장이고 제사장인 내가 책임을 지고 죄값을 치뤄야 하겠다. 구원의 문제는 하나님께서 그 정하신 때에 이루실 것이고,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사명 - 작은 그리스도로서 가정의 제사장으로 가족의 구원을 위해 회개하고 기도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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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용하기
오늘 한 걸음과 간구아들에게 용돈과 큰아들의 지위와 권리를 정상화하겠다.
가정과 공동체의 죄를 회개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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