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학습 노트·제4권 교회·성례·국가
제4권 교회·성례·국가

4권 7편 성례란 무엇인가

제4권 제14장 1-26절 (존 칼빈 『기독교강요』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하)

🎬 이 편의 영상은 공개되는 날 이 자리에 들어갑니다 · youtube.com/@빛다방

❓ 세례랑 성찬, 결국 교회 행사 아니야? 하나님은 왜 굳이 물이나 빵 같은 걸 쓰셔?
🧭흐름 한눈에

칼빈은 성례를 정의하는 데서 출발한다. 성례는 하나님이 우리의 약한 믿음을 붙들어 주시려고 당신의 약속에 찍어 주시는 '눈에 보이는 도장'이다. 동시에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표이기도 하다. 성례는 언제나 먼저 주어진 말씀(약속)에 붙어 있고, 그 말씀이 알아듣게 선포될 때만 의미가 있다. 이어서 칼빈은 두 방향의 오해를 차례로 반박한다. 하나는 성례를 쓸모없게 여기는 쪽이고, 다른 하나는 성례 자체에 마술 같은 힘이 있다고 믿는 쪽이다. 그 사이에서 칼빈이 세우는 원리는 이것이다. 능력은 성령께 있고, 실체는 그리스도이시며, 그것을 받는 손은 믿음이다. 마지막으로 칼빈은 구약의 성례(할례·정결 예식·제사)도 같은 그리스도를 가리켰다고 보여 준다. 차이는 '오실 분을 미리 보여 주느냐, 오신 분을 보여 주느냐'와 '얼마나 분명하냐'에 있다. 칼빈은 성례가 공로가 아니라 빈손으로 받는 자리라는 말로 이 편을 마친다.

📜절별 정리

성례의 정의와 역할. 1-6

📜1. 성례의 정의

칼빈은 성례도 복음 설교처럼 우리 믿음을 돕는 도구라고 말한다. 그래서 성례를 왜 주셨는지, 지금 어떻게 써야 하는지를 바로 아는 일이 중요하다. 그가 내리는 정의는 두 방향이다. 먼저 하나님 쪽에서 성례는 '표지'다. 표지란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가리키는, 눈에 보이는 신호를 말한다. 하나님은 이 표지로 우리를 향한 선한 약속을 우리 양심에 '도장 찍어' 주시고, 그렇게 약한 믿음을 붙들어 주신다. 다음으로 우리 쪽에서 성례는 하나님과 천사와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경건을 증언하는 표다. 여기서 경건이란 하나님을 경외하고 사랑하는 마음과 그에 맞는 삶을 뜻한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4~5세기 북아프리카의 교부)가 성례를 “신성한 것의 보이는 표지”, “보이지 않는 은혜의 보이는 모양”이라 한 것과 자기 정의의 뜻이 같다고 밝힌다. 다만 그 표현이 너무 짧아 배움이 적은 사람들이 오해할 수 있으므로 더 자세히 풀었다고 말한다.

  1. 성례는 설교처럼 믿음을 돕는 도구
  2. 하나님 쪽: 약속을 양심에 인치는 보이는 표
  3. 우리 쪽: 경건을 공개적으로 증언하는 표
  4. 아우구스티누스와 뜻은 같고 더 분명하게
  5. 출발점은 '우리 믿음이 약하다'는 사실
(직접 인용 없음)
이 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정의와 비교하며 논증한다
📜2. "사크라멘툼"의 의미

'성례'의 라틴어 원어는 '사크라멘툼'이다. 칼빈은 이 말이 왜 성례를 가리키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옛 라틴어 성경 번역자는 헬라어 '뮈스테리온'(비밀·신비)을 옮길 때, 특히 하나님의 일을 말하는 대목에서는 늘 '사크라멘툼'이라고 번역했다. 에베소서, 골로새서, 디모데전서에서 '비밀'로 나오는 단어가 그 예다. 번역자는 '아르카눔'(그냥 숨겨진 것)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일을 가리키기에 격이 낮다고 보아 쓰지 않았다. 그래서 사크라멘툼은 높고 거룩한 신령한 일을 가리키는 말이 되었고, 고대 교회 저작에서도 자주 그렇게 쓰였다. 칼빈은 하나님의 일에 쓰이는 여러 표지를 일일이 따지는 것은 지루한 일이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도 덧붙인다. 요컨대 '성례'라는 말 밑바닥에는 '하나님이 드러내신 신비'라는 뜻이 깔려 있다. 이 단어의 다른 해석은 13절에서 다시 다룬다.

  1. 성례(사크라멘툼)는 '뮈스테리온'의 번역어
  2. 뮈스테리온은 '하나님이 드러내신 비밀'
  3. '그냥 비밀'이라는 말은 일부러 피함
  4. 성례라는 말은 거룩한 신비를 가리킨다
에베소서 1:9
하나님 뜻의 '비밀'을 알리심. 뮈스테리온을 사크라멘툼으로 옮긴 사례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에베소서 3:2-3
계시로 알게 하신 비밀. 같은 번역 사례
2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골로새서 1:26-27
감추어졌다가 드러난 비밀, 곧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같은 번역 사례
26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감추어졌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27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얼마나 풍성한지를 알게 하려 하심이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디모데전서 3:16
'경건의 비밀'. 같은 번역 사례
크도다 경건의 비밀이여, 그렇지 않다 하는 이 없도다
📜3. 성례의 역할

정의에서 곧바로 따라 나오는 결론이 있다. 성례 앞에는 반드시 약속이 먼저 있다. 성례는 그 약속에 붙은 '부록'처럼 약속을 확인하고 인친다. 그런데 칼빈은 엄밀히 말하면 성례가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것이 아니라고 짚는다. 성례는 그 말씀을 믿는 '우리'를 세워 준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 자체로 확고해서 다른 무엇의 보증도 필요 없다. 하지만 우리 믿음은 가냘파서 사방에서 받쳐 주지 않으면 흔들리다 넘어진다. 그래서 하나님은 땅을 기어다니며 육체에 매여 사는 우리 수준까지 스스로 낮추신다. 그리고 땅에 속한 것들을 통해 우리를 당신께로 끌어당기신다. 크리소스톰(4세기 말~5세기 초 동방 교회의 설교자로 알려짐)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몸 없는 존재였다면 하나님은 몸 없는 방식으로 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영혼이 몸 안에 있으니 보이는 것으로 신령한 것을 주신다. 단, 물이나 떡이 본래 그런 성질을 지닌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그것들에 그런 의미를 부여하신 것이다.

  1. 성례 앞에는 반드시 약속이 있다
  2. 성례는 약속에 붙은 부록, 곧 인
  3. 말씀이 아니라 우리 믿음을 세운다
  4. 하나님이 우리 수준으로 낮추셨다
  5. 물건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이 준 의미
(직접 인용 없음)
이 절은 크리소스톰 인용과 하나님의 낮추심이라는 원리로 논증한다
📜4. 말씀이 외형적인 표징을 해명하여야 함

반대자들(로마 교회)도 성례는 말씀과 표징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칼빈은 이 말에 동의하면서 '말씀'의 뜻을 바로잡는다. 성례의 말씀은 뜻도 모르고 믿음도 없이 읊는 소리가 아니다. 물건을 거룩하게 만드는 주문도 아니다. 선포되어 표징의 뜻을 깨닫게 하는 것이 말씀이다. 그런데 교황주의 아래에서는 사제가 성별 문구만 중얼거리면 충분하다고 여겼다. '교황주의'는 교황권 아래의 로마 교회 관행을 칼빈이 비판적으로 부르는 말이다. '성별'은 평범한 물건을 거룩한 용도로 따로 구별하는 일이다. 그들은 백성이 모르는 라틴어로 예식을 진행했고, 나중에는 거의 들리지 않게 속삭여야 성별이 제대로 된다는 미신까지 생겼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를 인용해 반박한다. 말씀을 물질에 더하면 성례가 되지만, 물의 힘은 말씀을 발음해서가 아니라 믿어서 나온다는 것이다. 그러니 성례가 믿음을 낳으려면 말씀 선포가 필요하다. 하나님이 족장들에게 표징을 주실 때도 늘 가르침이 함께했다. 목사가 또렷이 선포하는 약속이 신자의 손을 잡고, 표징이 가리키는 곳으로 이끌어야 한다.

  1. 말씀은 주문이 아니라 뜻을 밝히는 선포
  2. 못 알아듣는 성례는 신비를 더럽힌다
  3. 효력은 발음이 아니라 믿음에서 나온다
  4. 표징에는 처음부터 가르침이 따랐다
  5. 목사는 약속을 또렷하게 선포해야 한다
로마서 10:8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 성례를 거룩하게 하는 것은 믿음의 말씀이다(아우구스티누스 인용 속)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사도행전 15:9
믿음으로 마음을 깨끗하게 하심. 씻는 힘은 물이 아니라 믿음에서 온다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3:21
세례는 몸의 때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선한 양심의 간구. 겉보다 속이 핵심이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5. 약속의 인(印)인 성례

반대자들은 이런 딜레마를 내민다. 우리가 하나님 말씀을 이미 알면 성례로 새로 배울 것이 없다. 모르면 성례도 말씀에 달려 있으니 아무것도 가르치지 못한다. 칼빈의 답은 공문서의 도장이다. 아무것도 적히지 않은 종이에 찍힌 도장은 소용이 없다. 하지만 글이 적힌 문서에 찍히면 그 내용을 보증한다. 이 비유는 칼빈이 지어낸 것이 아니다. 바울이 할례를 '인'이라고 불렀다(로마서 4:11).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이미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 할례는 그 믿음의 언약을 인친 것이지 의를 만들어 준 것이 아니다. 성례에는 말씀과 다른 특징도 있다. 약속을 그림처럼 눈앞에 보여 준다는 점이다. 또 다른 반론은 이렇다. 군주의 도장은 덧없는 세상일을 보증할 뿐인데, 물질로 영원한 약속을 인친다는 것은 어울리지 않는다. 칼빈은 신자가 눈에 보이는 것에서 멈추지 않는다고 답한다. 신자는 그것을 계단 삼아 그 안에 감추어진 영적 신비로 올라간다.

  1. 도장은 글이 적힌 문서에 찍혀야 효력
  2. '인' 비유의 출처는 바울(로마서 4:11)
  3. 할례는 이미 받은 의를 인친 것
  4. 성례는 약속을 그림처럼 보여 준다
  5. 보이는 것을 계단 삼아 위로 올라가라
로마서 4:11
할례를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 부름. 인 비유의 성경적 출처이며, 성례가 의를 만들지 않고 확증한다는 근거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언약의 표징인 성례

하나님은 당신의 약속을 '언약'이라 부르시고, 성례를 그 언약의 '표'라 부르신다. 언약이란 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시는 엄숙한 약정이다. 그래서 칼빈은 사람 사이의 언약에 빗대어 설명한다. 고대 사람들은 맹약할 때 돼지를 잡는 관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고, 전쟁에서는 오른손을 맞잡았다. 이런 행동은 흔한 일이라 그 자체로는 별 뜻이 없다. 그러나 먼저 말로 약속이 오가면 그 행동이 언약을 법적으로 비준한다. 성례도 하나님 말씀의 신실함을 더 확실히 믿게 해 주는 행위다. 우리가 육체에 속해 있으니 하나님은 육체적인 것을 통해 보여 주신다. 초등 교사가 아이 손을 잡고 이끌듯 하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례를 '보이는 말씀'이라 불렀다. 약속을 그림처럼 눈앞에 그려 주기 때문이다. 칼빈은 비유 둘을 더한다. 성례는 '믿음의 기둥'이다. 믿음은 말씀이라는 기초 위에 서 있지만, 성례라는 기둥이 더해지면 더 단단히 선다. 또 성례는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비추는 '거울'이다.

  1. 약속은 언약, 성례는 언약의 표
  2. 행동은 앞선 말이 있어야 의미를 얻는다
  3. 교사가 아이 손 잡듯 이끄신다
  4. 성례는 '보이는 말씀'(아우구스티누스)
  5. 기초는 말씀, 성례는 기둥이자 거울
창세기 6:18, 창세기 9:9, 창세기 17:2
하나님이 약속을 '언약'이라 부르심. 성례를 언약의 표로 이해하는 근거
창세기 6:18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창세기 9:9 내가 내 언약을 너희와 너희 후손과
창세기 17: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성례의 본질과 기능에 대한 갖가지 반론들을 반박함. 7-19

📜7. 악인들도 성례를 받는다는 사실에 근거한 어리석은 반론

첫째 반론은 이렇다. 성례는 악한 사람들도 받으니 은혜의 증거가 될 수 없다. 칼빈은 같은 논리를 그대로 밀고 가 본다. 그러면 복음도, 그리스도도 은혜의 증거가 아니게 된다. 많은 사람이 복음과 그리스도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군주의 도장을 비웃는 사람이 있다고 해서 도장의 가치가 없어지지도 않는다. 하나님은 말씀과 성례로 은혜의 보증을 주신다. 다만 확실한 믿음으로 받는 사람만 그것을 깨닫는다. 그래서 바울은 신자들에게 말할 때는 성례에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담겨 있다고 가르친다. 반대로 성례를 잘못 쓰는 경우에는 차갑고 빈 겉모양일 뿐이라고 말한다. 둘째 반론은 건전한 믿음은 이미 확고하니 더 자랄 수 없다는 것이다. 칼빈은 이 땅에서 완전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답한다. 사도들도 믿음을 더해 달라고 기도했다. 시작 단계의 믿음도 참되고 건전하며 자랄 수 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순간, 자기 믿음이 불완전하다고 인정하는 셈이다.

  1. 거부하는 사람이 있어도 은혜는 은혜
  2. 믿음으로 받는 사람만 은혜를 깨닫는다
  3. 바르게 받으면 그리스도와의 교제
  4. 이 땅에 완전한 믿음은 없다
  5. 작은 믿음도 참 믿음이고 자란다
갈라디아서 3:27
세례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음. 바르게 받은 성례에는 그리스도와의 교제가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2:13
한 성령으로 세례받아 한 몸이 됨. 같은 근거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누가복음 17:5
사도들이 믿음을 더해 달라고 기도함. 믿음은 자라야 한다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마가복음 9:24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연약해도 참된 믿음이 있다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8. 성령의 역사하심에 근거한 어리석은 반론

반대자들은 빌립이 내시에게 “온 마음으로 믿으면 세례를 받을 수 있다”고 한 말을 든다. 마음이 믿음으로 가득하면 세례로 확증할 여지가 없다는 것이다. 칼빈은 되묻는다. 당신 마음에도 믿음이 부족한 곳이 많지 않은가? 날마다 믿음이 자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가? 우리 믿음은 평생에 걸쳐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자라야 한다. 그러니 '온 마음으로'는 완전무결하다는 뜻이 아니다. 진심으로, 주리고 목마른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시편이 '전심으로'라는 말을 그렇게 쓰고, 거짓된 사람은 '두 마음'이라고 꾸짖는다. 또 다른 반론은 이렇다. 성례가 믿음을 키운다면, 믿음을 시작하고 유지하고 완성하시는 성령은 헛되이 오신 것이 된다. 칼빈은 믿음이 온전히 성령의 일임을 인정한다. 그러나 반대자들은 복을 하나만 말하고, 칼빈은 셋을 본다. 첫째, 하나님은 말씀으로 가르치신다. 둘째, 성례로 확증하신다. 셋째, 성령의 빛으로 마음을 여셔서 말씀과 성례가 들어오게 하신다. 성령이 없으면 말씀과 성례는 귀와 눈을 스칠 뿐이다.

  1. '온 마음'은 완전함이 아니라 진심
  2. 믿음은 평생 자라야 한다
  3. 말씀·성례·성령, 세 가지 복
  4. 성령 없이는 귀와 눈만 스칠 뿐
사도행전 8:37
반대자가 내세운 근거(“온 마음으로 믿으면”). 칼빈은 '진심으로'라는 뜻으로 푼다
(없음)
에베소서 4:1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믿음은 계속 자라야 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시편 119:10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전심'은 진심이라는 용례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시편 111:1, 시편 138:1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 같은 용례
시편 111:1 할렐루야, 내가 정직한 자들의 모임과 회중 가운데에서 전심으로 여호와께 감사하리로다
시편 138:1 내가 전심으로 주께 감사하며 신들 앞에서 주께 찬송하리이다
시편 12:2
'두 마음'. 거짓된 사람을 가리키는 반대말
그들이 이웃에게 각기 거짓을 말함이여 아첨하는 입술과 두 마음으로 말하는도다
📜9. 성령과 성례

칼빈은 성례가 믿음을 확증하고 키운다고 말해 왔다. 그러나 그것이 성례 안에 어떤 숨은 힘이 늘 들어 있어서 저절로 믿음을 키운다는 뜻은 아니라고 못 박는다. 하나님이 그 목적을 위해 성례를 정하셨다는 뜻일 뿐이다. 성례가 제 역할을 하는 때는 따로 있다. 성령이 마음속 스승으로 오셔서 마음을 꿰뚫고 영혼의 문을 여실 때다. 성령이 일하지 않으시면 성례는 맹인의 눈에 비친 햇빛, 귀머거리의 귀에 울리는 소리와 같다. 그래서 칼빈은 이렇게 나눈다. 능력은 오직 성령께 있고, 맡은 일(사역)은 성례에 있다. 눈과 시력의 비유도 든다. 시력이 없으면 아무리 밝은 빛도 소용없듯, 성령 없는 성례는 무익하다. 반대로 성령께 배운 마음이라면 성례가 믿음을 키우는 것을 막을 수 없다. 다만 차이가 하나 있다. 눈과 귀는 본래 시력과 청력을 지니고 있지만, 마음의 영적 시력은 그리스도의 특별한 은혜로 주어진다.

  1. 성례 안에 숨은 마법적 힘은 없다
  2. 능력은 성령께, 맡은 일은 성례에
  3. 성령 없으면 맹인에게 비친 햇빛
  4. 영적 시력은 본성이 아니라 은혜
(직접 인용 없음)
이 절은 눈·귀·시력 비유로 논증한다
“성례의 능력은 오로지 성령께 있고, 다만 그 사역만 성례에게 있으므로”
📜10. 인간사의 사례를 통하여 성례와 성령의 관계를 설명함

반대자들은 믿음을 키우는 일을 성례의 물질에 돌리면 그 일을 홀로 하시는 성령께 누가 된다고 말한다. 칼빈은 성령의 공로를 조금도 빼앗지 않는다고 답한다. 믿음이 확증된다는 것은 이런 뜻이다. 성령의 내적 조명으로 마음이 준비되어, 성례가 내미는 증거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칼빈은 설득의 비유를 든다. 누군가를 말로 설득하려 해도, 상대에게 세 가지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논리도 소용없다. 판단력, 배우려는 마음, 그리고 말하는 사람에 대한 신뢰다. 셋이 있으면 상대는 바로 움직인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하시는 일이 바로 이것이다. 성령은 말씀과 성례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게 하신다.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여 순종하게 하신다. 바깥에서 들려온 말씀과 성례를 귀에서 영혼까지 옮겨 주신다. 정리하면, 말씀과 성례는 아버지의 선한 뜻을 눈앞에 보여 주고, 성령은 그 확증을 마음에 새기신다.

  1. 성례를 인정해도 성령의 영광은 그대로
  2. 설득엔 판단력·배울 마음·신뢰가 필요
  3. 그 준비를 성령이 마음에 만드신다
  4. 말씀·성례는 보여 주고, 성령은 새긴다
야고보서 1:17 (참조)
'빛들의 아버지'. 해로 눈을 비추시듯 성례로 마음을 비추신다
야고보서 1:17 온갖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11. "씨"를 통하여 성례와 성령의 관계를 설명함

예수님은 비유에서 말씀을 '씨'라고 부르셨다. 씨는 메마른 땅에 떨어지면 죽고, 잘 가꾼 땅에 떨어지면 열매를 맺는다. 하나님의 말씀도 목이 곧은 사람에게는 모래밭의 씨처럼 말라 버린다. 그러나 성령이 가꾸신 마음에서는 큰 열매를 맺는다. 씨에서 곡식이 나고 자라 거둔다고 말하듯, 믿음도 말씀에서 시작해 자라고 완성된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이 두 면을 모두 말한다. 한편으로 그는 자기 사역이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진다고 자랑한다. 마치 설교와 성령이 떼려야 뗄 수 없게 묶여 있는 것처럼 말한다. 다른 한편으로는 사역자를 농부에 비유한다. 심고 물 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고,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친히 세우신 도구를 쓰실 때 성령의 능력이 나타난다. 다만 사람이 할 수 있는 일과 하나님만 하시는 일을 구분해서 기억해야 한다.

  1. 말씀은 씨, 마음은 밭
  2. 성령이 가꾼 마음에서 열매가 난다
  3. 도구는 쓰이지만 자라게 하심은 하나님
  4. 사람의 몫과 하나님의 몫을 구분하라
마태복음 13:3-23, 누가복음 8:5-15
씨 뿌리는 비유. 말씀의 결실은 마음 밭에 달려 있다
마태복음 13:3-23 3예수께서 비유로 여러 가지를 그들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버렸고 5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아니하므로 곧 싹이 나오나 6해가 돋은 후에 타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 위에 떨어지매 가시가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
누가복음 8:5-15 5씨를 뿌리는 자가 그 씨를 뿌리러 나가서 뿌릴새 더러는 길 가에 떨어지매 밟히며 공중의 새들이 먹어버렸고 6더러는 바위 위에 떨어지매 싹이 났다가 습기가 없으므로 말랐고 7더러는 가시떨기 속에 떨어지매 가시가 함께 자라서 기운을 막았고 8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나서 백 배의 결실을 하였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외치시되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9제자들이 이 비유의 뜻을 물으니 10이르시되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그들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
고린도전서 2:4
성령의 능력으로 전함. 사역과 성령의 결합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하여
고린도후서 3:6 (참조)
영의 일꾼. 같은 맥락
고린도후서 3: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고린도전서 3:6-9
사역자는 심고 물 주는 농부
6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나니 7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8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가지이나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으리라 9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린도전서 3:7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 이 절의 결론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12. 성례는 오로지 하나님의 도구에 불과함

하나님은 사람들이 약속 대신 표징 자체를 의지하지 못하도록 때로 표징을 거두기도 하신다. 아담이 타락한 뒤 하나님은 생명나무 열매를 먹지 못하게 막으셨다. 열매가 잃어버린 불멸을 되돌려 줄 수 있어서가 아니다. 약속의 상징에 불과한 것에 헛되이 매달리지 않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예전에 '약속의 언약에 대해 외인'이었다고 하면서 그들을 '무할례자'라고 부른다. 이것은 환유법이다. 환유법이란 어떤 대상을 그와 밀접한 다른 것으로 부르는 말법이다. 표를 받지 못했다는 말로 약속에서 제외되었다는 뜻을 전한 것이다. 또 다른 반론은 물질에 능력을 주면 하나님의 영광이 줄어든다는 것이다. 칼빈은 물질에 능력을 주지 않는다고 답한다. 하나님은 떡으로 몸을 먹이시고, 해로 세상을 비추시고, 불로 따뜻하게 하신다. 그래도 떡·해·불은 하나님의 도구일 뿐이다. 성례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성례를 은혜의 원인으로 떠받들지 말아야 한다. 우리의 믿음과 고백은 만유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로 올라가야 한다.

  1. 표징을 의지하면 하나님이 거두기도 하신다
  2. 생명나무 열매에 불멸의 힘은 없었다
  3. 떡·해·불처럼 성례도 도구일 뿐
  4. 신뢰와 영광은 하나님께로만
창세기 3:22
생명나무를 막으심. 상징에 헛되이 매달리지 않게 하신 사례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에베소서 2:12
약속의 언약에 외인이었다. 약속에서 제외된 상태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에베소서 2:11
'무할례자'. 환유법: 표를 받지 못함은 약속에서 제외됨을 뜻한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는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를 받은 무리라 칭하는 자들로부터 할례를 받지 않은 무리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13. "사크라멘툼"이라는 단어의 용례

어떤 사람들은 사크라멘툼이 라틴 고전 작가들에게서 '병사가 입대할 때 지휘관에게 하는 충성 서약'을 뜻했다는 점을 내세운다. 그렇다면 성례는 우리가 그리스도를 지휘관으로 모신다고 선언하는 표라는 것이다. 그들은 로마인의 토가와 그리스인의 팔리움(각 민족의 겉옷), 원로원 계급과 기사 계급의 표식을 비유로 든다. 그것들이 소속을 구별하듯 성례도 우리를 불신자와 구별해 준다는 것이다. 칼빈은 2절의 논증을 근거로 답한다. 고대 교회는 라틴 고전의 용례를 따르지 않았고, 이 단어에 '거룩한 표징'이라는 새 뜻을 붙여 썼다. 굳이 서약의 뜻으로 보겠다면 방향이 바뀌어야 한다. '믿음'이라는 말이 원래는 약속을 지키는 신실함을 뜻하다가 진리에 대한 확신을 뜻하게 되었듯, 이 말도 '지휘관이 병사를 받아들이는 행위'로 바뀌어 쓰였다고 볼 수 있다. 성례로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 된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이다. 칼빈은 서약과 구별의 비유 자체는 받아들인다. 문제는 부차적인 것(사람 앞에서의 고백)을 주된 것, 심지어 유일한 것으로 만드는 데 있다. 주된 목적은 하나님을 향한 우리 믿음을 돕는 것이고, 이것이 빠지면 성례의 생명이 사라진다.

  1. 반대자: 성례는 병사의 충성 서약
  2. 칼빈: 고대 교회는 '거룩한 표징'으로 씀
  3. 서약이라면 하나님이 우리를 받으시는 것
  4. 고백은 부차적, 믿음을 도움이 주된 것
  5. 주된 목적이 빠지면 성례의 생명도 사라진다
고린도후서 6:16, 에스겔 37:27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성례의 중심은 우리의 서약보다 하나님의 약속이다
고린도후서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에스겔 37:27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14. 마술적인 성례관의 오류

앞의 반대자들이 성례를 약하게 만든다면, 반대편에는 성경에 근거 없는 신비한 능력을 성례에 돌리는 사람들이 있다. 스콜라 궤변가들은 우리가 치명적인 죄로 장벽을 쌓지만 않으면 교회의 성례가 의와 은혜를 준다고 한목소리로 가르쳤다. '스콜라'는 중세 대학에서 철학적 논리로 신학을 체계화한 학자들을 가리킨다. 칼빈은 이 가르침을 극악하다고 본다. 첫째, 믿음 없이 의를 약속하여 영혼을 멸망으로 내몬다. 둘째, 의의 원인을 성례에 둔다. 그러면 가뜩이나 땅의 것에 끌리는 마음이 물질에 묶여 하나님에게서 멀어진다. 성례에서는 약속 말고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그 약속은 신자에게는 은혜를, 불신자에게는 진노를 선포한다. 그러므로 구원의 확신은 성례 참여 여부에 달려 있지 않다. 칭의, 곧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일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다. 칭의는 성례의 인에 못지않게 복음 선포로도 전달되며, 성례의 인이 없어도 완전히 누릴 수 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렇게 말했다. 보이는 표징 없이도 보이지 않는 성화(삶이 거룩하게 변해 가는 것)가 있을 수 있고, 성화 없이 표징만 있을 수도 있다.

  1. 반대편 오류: 성례에 마법 같은 힘
  2. 믿음 없이 의를 준다는 가르침은 치명적
  3. 약속 말고는 성례에 기대할 것이 없다
  4. 구원의 확신은 성례 참여에 달리지 않는다
  5. 표징만 받는 것과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
(직접 인용 없음)
이 절은 칭의 교리와 아우구스티누스 인용으로 논증한다
“약속 이외에는 성례에서 아무것도 기대해서는 안 된다.”
📜15. 물질과 표징의 구별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가르침

아우구스티누스가 거듭 말하듯, 성례의 표징과 그 표징이 가리키는 실체는 구별해야 한다. 번역본은 이 실체를 '물질'이라고도 옮긴 것으로 보인다. 둘은 함께 주어지지만, 떼려야 뗄 수 없게 붙어 있지는 않다. 그러니 한쪽에 속한 것을 다른 쪽으로 옮겨서는 안 된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여럿 인용한다. 성례는 택한 자(하나님이 구원하시려고 고르신 사람)에게만 그것이 나타내는 효력을 낸다. 세례라는 표는 모두에게 공통이지만, 거듭나게 하는 은혜는 모두에게 공통이 아니다. 주님의 잔은 유다에게 독이었다. 악한 것을 마셔서가 아니라, 악한 사람이 선한 것을 받았기 때문이다. 성찬이 가리키는 실체 자체는 모두에게 생명을 주려는 것이다. 이로 씹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으로 먹는 사람이 죽지 않는다. 결론은 이렇다. 받는 사람이 합당하지 않으면 표징과 실체가 갈라지고, 빈 물건만 남는다. 표징과 함께 실체를 받으려면 그 안에 담긴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야 한다. 성례를 통해 그리스도와의 교제를 누릴 때 비로소 성례에서 유익을 얻는다.

  1. 표징과 실체는 함께 오지만 구별된다
  2. 표는 모두가 받아도 은혜는 다르다
  3. 유다에게 주의 잔은 독이었다
  4. 이로 씹지 말고 마음으로 먹어라
  5. 유익은 그리스도와의 교제에 있다
디도서 3:5
'중생의 씻음'. 세례의 표는 모두가 받아도 중생의 은혜는 모두의 것이 아니다(아우구스티누스 인용 속)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16. 성례와 관련하여 경계해야 할 두 가지 악

그리스도가 모든 성례의 실체이시다. 성례의 모든 견고함은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리스도를 떠나면 성례는 아무것도 약속하지 않는다. 그래서 칼빈은 성례를 의와 구원의 원인으로 만든 페테르 롬바르드의 오류를 더욱 용납하기 어렵다고 말한다. 롬바르드는 12세기 스콜라 신학자로, 『명제집』의 저자로 알려져 있다. 사람이 머리로 만든 원인들을 버리고 그리스도라는 한 원인만 붙들어야 한다. 성례의 효과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자라고, 그분을 더 충만히 누리는 것이다. 이 효과는 참된 믿음으로 받을 때 일어난다. 그러면 악인이 감사하지 않아서 하나님의 제도가 무효가 되는가? 칼빈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성례의 진리는 받는 사람의 상태나 선택에 달려 있지 않다. 주는 것과 받는 것은 별개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것은 그대로 선다. 악인에게 유익이 없을 뿐이다. 칼빈은 피해야 할 두 악을 정리한다. 첫째 악은 표징을 헛것으로 여겨 그 의미를 무너뜨리는 것이다. 둘째 악은 마음을 표징 너머로 올리지 않아,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주시는 은혜를 표징 덕분으로 돌리는 것이다.

  1. 성례의 실체는 그리스도
  2. 성례는 구원의 원인이 아니다
  3. 받는 사람 때문에 성례가 무효 되진 않는다
  4. 첫째 악: 표징을 헛것으로 여김
  5. 둘째 악: 은혜를 표징 덕으로 돌림
(직접 인용 없음)
이 절은 아우구스티누스 인용과 롬바르드 비판으로 논증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성례의 요체 혹은 실체(substance)이시다.”
📜17. 성례의 참된 기능

칼빈은 확정된 원리를 세운다. 성례는 말씀과 같은 일을 한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늘의 보화를 우리에게 내밀고 세워 준다. 그러나 믿음으로 받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입구가 닫힌 그릇에 포도주를 부으면 바깥만 흥건히 젖고 속은 비어 있는 것과 같다. 고대 교부들이 성례를 높이려고 다소 지나치게 한 표현 때문에, 성례 자체가 성령의 은혜를 나눠 준다고 오해해서도 안 된다. 성례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자이자 계약의 보증물이다. 스스로 은혜를 만들어 내지 않고,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선언하고 보증한다. 성령은 성례를 받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 없이 주어지지 않고, 하나님이 당신의 백성에게 주신다. 칼빈은 하나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성례 안에 임재하심을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성령의 내적 은혜와 외적 의식은 구분해서 다뤄야 한다고 본다. 하나님은 표징으로 약속하신 것을 진실로 이루시고, 표징도 헛되지 않다. 또 목사가 겉으로 행하는 것을 하나님이 속에서 이루신다. 그러니 하나님만 하시는 일을 사람에게 돌려서는 안 된다.

  1. 성례는 말씀처럼 그리스도를 내민다
  2. 닫힌 그릇: 믿음 없이는 겉만 젖는다
  3. 성례는 은혜의 사자이지 근원이 아니다
  4. 하나님은 표징으로 약속한 것을 이루신다
  5. 목사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구분하라
(직접 인용 없음)
이 절은 그릇·사자·보증물 비유와 아우구스티누스 인용(모세와 하나님)으로 논증한다
📜18. 넓은 의미에서의 성례

넓은 뜻에서 '성례'는 하나님이 당신의 약속을 더 확신하게 하려고 주신 모든 표징을 포함한다. 칼빈은 이를 두 종류로 나눈다. 자연물 속에 주신 것과 이적으로 주신 것이다. 자연물의 예로는 생명나무와 무지개가 있다. 생명나무는 아담과 하와에게 불멸의 보증이었고, 무지개는 다시는 홍수로 땅을 멸하지 않겠다는 증거였다. 나무가 불멸을 주거나 무지개가 홍수를 막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이 말씀으로 그것들에 표를 새기셨기 때문에 언약의 증거이자 인이 된 것이다. 무지개는 오늘도 그 언약의 증거다. 누가 무지개는 햇빛이 구름에 반사된 것일 뿐이라며 비웃는다면, 칼빈은 그 설명을 인정하자고 한다. 대신 자연의 주인이 자연을 써서 영광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모르는 어리석음을 비웃자고 말한다. 같은 은이라도 동전으로 각인되면 새로운 가치를 얻는 것과 같다. 이적의 예로는 아브라함이 본 연기 나는 화로와 횃불, 기드온의 양털, 히스기야 때 해 그림자가 열 도 물러간 일이 있다. 이것들도 연약한 믿음을 받쳐 주려고 주신 성례였다.

  1. 넓게는 하나님이 주신 모든 약속의 표
  2. 자연물(생명나무·무지개)과 이적
  3. 말씀이 새겨질 때 물건이 성례가 된다
  4. 자연 원리를 인정해도 표의 의미는 남는다
  5. 은과 동전: 각인이 가치를 바꾼다
창세기 2:9, 창세기 3:22
생명나무. 자연물에 주신 불멸의 보증
창세기 2:9 여호와 하나님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 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세기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창세기 9:13-16
무지개.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않으신다는 언약의 표
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와 세상 사이의 언약의 증거니라 14내가 구름으로 땅을 덮을 때에 무지개가 구름 속에 나타나면 15내가 나와 너희와 및 육체를 가진 모든 생물 사이의 내 언약을 기억하리니 다시는 물이 모든 육체를 멸하는 홍수가 되지 아니할지라 16무지개가 구름 사이에 있으리니 내가 보고 나 하나님과 모든 육체를 가진 땅의 모든 생물 사이의 영원한 언약을 기억하리라
창세기 15:17
연기 나는 화로와 타는 횃불. 이적으로 주신 표
해가 져서 어두울 때에 연기 나는 화로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사사기 6:37-40
기드온의 양털과 이슬. 승리 약속의 표
37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주변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38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찍이 일어나서 양털을 가져다가 그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39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쭈되 주여 내게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내게 이번만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원하건대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40그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그 주변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열왕기하 20:9-11, 이사야 38:8
해 그림자가 열 도 물러감. 히스기야에게 주신 안전 약속의 표
열왕기하 20:9-11 9이사야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실 일에 대하여 여호와께로부터 왕에게 한 징표가 임하리이다 해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갈 것이니이까 혹 십도를 물러갈 것이니이까 하니 10히스기야가 대답하되 그림자가 십도를 나아가기는 쉬우니 그리할 것이 아니라 십도가 뒤로 물러갈 것이니이다 하니라 11선지자 이사야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아하스의 해시계 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십도 뒤로 물러가게 하셨더라
이사야 38:8 보라 아하스의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 그림자를 뒤로 십 도를 물러가게 하리라 하셨다 하라 하시더니 이에 해시계에 나아갔던 해의 그림자가 십 도를 물러가니라
📜19. 교회의 일상적인 성례

칼빈의 진짜 관심은 하나님이 교회에서 늘 행하도록 주신 성례다. 이 성례로 하나님은 예배자들을 한 믿음과 한 고백 안에서 기르신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보이는 표징을 함께 쓰지 않으면 참 종교든 거짓 종교든 사람들을 하나로 묶을 수 없다고 말했다. 하나님은 이 필요를 아시고 처음부터 구체적인 경건 행위를 정해 주셨다. 그런데 사탄이 그것을 미신적 예배로 비틀었고, 그래서 이방 신비 종교의 입문 의식 같은 것들이 생겼다. 그것들은 오류지만, 사람이 외적 표징 없이는 종교를 가질 수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다만 하나님 말씀에 근거하지 않으므로 논외다. 교회의 성례는 나무나 무지개 같은 단순한 표징이 아니라 '의식'이다. 크리소스톰은 이것을 '언약'이라 불렀다. 하나님은 죄책과 형벌을 지우시고 아들 안에서 화목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우리는 경건하고 흠 없는 삶을 추구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래서 성례는 두 가지 목적을 지닌 의식이다. 첫째, 마음속 믿음을 일깨우고 확증한다. 둘째,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증언하게 한다.

  1. 이제 주제는 교회의 일상 성례
  2. 공동의 표징이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다
  3. 이방 의식은 왜곡이지만 필요의 증거
  4. 성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약정
  5. 목적: ① 믿음 확증 ② 공개적 고백
(직접 인용 없음)
이 절은 아우구스티누스·크리소스톰 인용으로 논증한다

구약의 성례들과 신약의 성례들. 20-26

📜20. 구약의 성례들: 그리스도를 지향함

하나님은 시대에 맞게 여러 방식으로 자신을 계시하셨고, 성례도 그에 따라 다양하게 주셨다. 아브라함에게는 할례를 주셨고, 모세 율법으로는 정결 예식과 제사 등을 더하셨다. 이 성례들은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행해지다가 폐지되었다. 그 대신 지금 교회가 쓰는 두 성례, 세례와 성찬이 제정되었다. 칼빈은 교회 전체가 쓰는 성례를 기준으로 말한다. 목사 임직 때의 안수를 성례라 부르는 것은 반대하지 않지만, 일상 성례에는 넣지 않는다. 다른 이른바 성례들은 뒤에서 다룬다. 칼빈은 옛 성례도 지금 성례와 목적이 같았다고 강조한다.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손잡아 이끄는 것, 아니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형상이 되는 것이었다. 성례는 약속의 인인데,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 모세에게 산에서 장막의 본을 보이신 것도 그래서다. 차이는 하나다. 구약 성례는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주었고, 신약 성례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증언한다.

  1. 성례는 시대마다 다른 모양으로 주어졌다
  2. 구약: 할례·결례·제사 / 신약: 세례·성찬
  3. 안수는 성례라 불러도 되나 일상 성례 아님
  4. 모든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
  5. 차이: 오실 그리스도와 오신 그리스도
창세기 17:10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레위기 11-15장
모세 율법의 정결 예식
레위기 1-10장
희생 제사 등 의식
마태복음 28:19
세례 제정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태복음 26:26-28
성찬 제정
26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아서 먹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27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너희가 다 이것을 마시라 28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고린도후서 1:20
하나님의 약속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됨. 모든 성례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이유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출애굽기 25:9, 출애굽기 25:40, 출애굽기 26:30
산에서 보이신 장막의 본. 옛 의식도 그리스도를 보여 주려는 것
출애굽기 25:9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그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출애굽기 25:40 너는 삼가 이 산에서 네게 보인 양식대로 할지니라
출애굽기 26:30 너는 산에서 보인 양식대로 성막을 세울지니라
📜21. 할례, 결례, 희생 제사의 의미

할례는 사람의 씨에서 난 것, 곧 인간 본성 전체가 부패해서 잘라 내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는 상징이었다. 동시에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복된 자손'을 보증하고 떠올리게 했다. 그 자손을 통해 온 땅의 족속이 복을 받는다는 약속이다. 바울에 따르면 그 자손은 그리스도다. 유대인들은 아담 안에서 잃은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되찾으리라 믿었다. 할례는 아브라함에게 믿음의 의를 인친 것이었고, 그 후손에게도 같은 뜻이었다. 할례와 세례의 자세한 비교는 뒤로 미룬다. 결례(정결 예식)는 율법이 정한 씻는 의식이다. 결례는 그들의 더러움을 드러내는 동시에, 모든 더러움을 씻어 낼 또 다른 씻음을 약속했다. 그 씻음이 그리스도의 피다. 희생 제사는 그들이 불의하다는 것과,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값이 치러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쳤다. 또 대제사장, 곧 중보자가 피를 흘려 죄 사함에 충분한 제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도 가르쳤다. 중보자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화해를 이루는 분이다. 그분이 그리스도이시다. 그리스도는 스스로 제물이 되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사람의 불순종을 지우셨다.

  1. 할례: 본성의 부패와 복된 자손의 약속
  2. 복된 자손은 그리스도
  3. 결례: 더러움을 드러내고 참 씻음을 약속
  4. 제사: 값을 치를 중보자를 가르침
  5. 셋 다 결국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창세기 22:18
아브라함의 씨로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음. 할례가 보증한 약속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갈라디아서 3:16
그 씨는 그리스도. 할례가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한 사람을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로마서 4:11
할례는 믿음의 의를 인친 것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9:10, 히브리서 9:14
육체의 예법인 씻음과, 양심을 깨끗하게 하는 그리스도의 피
히브리서 9:10 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 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일 뿐이며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요한일서 1:7, 요한계시록 1:5
그리스도의 피로 씻음. 결례가 가리킨 실체
요한일서 1:7 그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요한계시록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히브리서 4:14, 히브리서 5:5, 히브리서 9:11
그리스도는 대제사장. 제사가 가리킨 중보자
히브리서 4:14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히브리서 5:5 또한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 대제사장 되심도 스스로 영광을 취하심이 아니요 오직 말씀하신 이가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니 내가 오늘 너를 낳았다 하셨고
히브리서 9:11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빌립보서 2:8
죽기까지 순종하심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으로 불순종을 뒤집으심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22. 신약 시대의 성례들이 그리스도를 더욱 충만히 드러냄

그리스도가 실제로 오셔서 충만히 계시되셨으므로, 신약의 성례도 그분을 더 분명히 보여 준다. 세례는 우리가 씻겨졌음을, 성찬은 우리가 구속되었음을 증언한다. 구속이란 값을 치르고 되찾으셨다는 뜻이다. 물은 씻음을, 피는 만족(죗값을 충분히 치름)을 나타내는데, 이 둘이 그리스도에게서 나온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물과 피로 임하신 이'라고 부르고, 성령과 물과 피가 함께 증언한다고 말한다. 그 가운데 최고의 증인이신 성령이 우리로 그 증언을 확신하게 하신다. 이 신비는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흘러나올 때 놀랍게 드러났다. 그래서 아우구스티누스는 십자가를 성례의 원천이라 불렀다. 시대를 비교하면 지금 성령의 은혜가 더 풍성하다. 바울이 율법의 것은 그림자요 몸은 그리스도라고 한 말도 이런 뜻이다. 그렇다고 바울이 족장들이 받은 은혜의 증거를 무효로 만들려는 것은 아니다. 비교를 통해 우리가 받은 것을 크게 보여 주고, 율법 의식의 폐지를 이상하게 여기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 세례는 씻김, 성찬은 구속의 증거
  2. 물과 피, 그리고 성령의 증언
  3. 십자가는 성례의 원천(아우구스티누스)
  4. 지금 성령의 은혜가 더 풍성하다
  5. '그림자'는 구약 무시가 아니라 비교
요한일서 5:6
물과 피로 임하신 그리스도. 씻음과 구속
이는 물과 피로 임하신 이시니 곧 예수 그리스도시라 물로만 아니요 물과 피로 임하셨고 증언하는 이는 성령이시니 성령은 진리니라
요한일서 5:7-8
성령과 물과 피의 증언. 성령이 확신을 주신다
7증언하는 이가 셋이니 8성령과 물과 피라 또한 이 셋은 합하여 하나이니라
요한복음 19:34
옆구리에서 흐른 물과 피. 성례의 원천인 십자가
그 중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한복음 7:38-39
생수의 강, 곧 성령. 신약 시대 성령의 풍성함
38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 하시니 39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골로새서 2:17
그림자와 몸. 구약과 신약의 비교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23.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의 유사점과 차이점

스콜라 신학자들은 옛 율법의 성례는 하나님의 은혜를 슬쩍 비추기만 하고, 새 법의 성례는 은혜를 실제로 준다고 가르쳤다. 칼빈은 이것을 철저히 거부한다. 바울은 조상들도 우리와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고 그것이 그리스도였다고 말한다. 유대인들에게 그리스도와의 참된 교제를 보여 준 것을 빈 표징이라 부를 수는 없다. 바울의 논지 자체도 이를 뒷받침한다.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한 메마른 지식이나 이름뿐인 신앙, 외적 표징을 믿고 하나님의 심판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러려고 옛 유대인이 받은 심판을 예로 든다. 이 경고가 성립하려면 은혜를 받는 면에서 그들과 우리가 동등해야 한다. 또 바울이 할례를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라 불렀으니, 세례에 그보다 더 큰 의미를 줄 수 없다. 그러므로 유대인도 성례로 같은 것, 곧 그리스도와 그분의 영적 풍성함을 받았다. 반대자들은 히브리서에서 율법 의식으로는 죄가 없어지지 않는다는 말만 붙잡고 그 대조의 맥락을 놓쳤다. 히브리서의 의도는 그리스도가 오시면 의식법이 의미를 다한다는 것이다. 의식법의 효능 전체가 그리스도께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1. 스콜라: 구약은 그림자, 신약만 실제 은혜
  2. 조상들도 같은 신령한 음식, 그리스도
  3. 할례도 '믿음의 의를 인친 것'이었다
  4. 히브리서는 그리스도 없는 의식을 비판
  5. 의식법의 효능은 전부 그리스도께 달렸다
고린도전서 10:3-4
조상들도 같은 신령한 음식과 음료, 곧 그리스도를 받음. 구약 성례도 실제 은혜와 연결됨
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로마서 4:11
할례는 믿음의 의를 인친 것. 세례에 그 이상을 부여할 수 없다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10:1
율법은 그림자. 반대자들이 맥락을 놓친 구절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24. 할례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

반대자들은 바울이 '율법 조문의 할례'라고 한 말 등을 들어 할례가 하나님과 상관없고 헛되다고 주장한다. 이런 구절들이 할례를 세례보다 훨씬 낮게 보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칼빈은 세례에 대해서도 성경이 똑같이 말한다고 답한다. 마음이 정결하지 않고 끝까지 인내하지 않으면, 외적인 씻음을 받아도 하나님은 상관하지 않으신다. 베드로도 세례의 참됨은 겉의 씻음이 아니라 깨끗한 양심의 증거에 있다고 말한다. 반대자들은 또 바울이 그리스도의 할례와 비교하며 손으로 한 할례를 경멸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그 구절이 이미 폐지된 할례를 필수라고 우기는 거짓 교사들을 향한 말이라고 답한다. 바울은 신자들에게 그림자를 버리고 실체 위에 서라고 권한 것이다. 바울은 예상되는 반론에도 미리 답한다. 족장들도 옛사람을 벗었지만 육체의 할례가 무익하지 않았듯, 지금도 할례가 쓸모 있지 않느냐는 반론이다. 바울은 곧바로 골로새 교인들이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덧붙인다. 세례가 그리스도인에게 할례와 같은 자리이니, 할례를 강요하면 세례를 해치게 된다는 뜻이다.

  1. 할례 비판 구절은 세례에도 적용된다
  2. 겉 표징만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
  3. 바울의 상대는 할례를 강요한 거짓 교사
  4. 세례는 그리스도인에게 할례와 같다
  5. 할례를 강요하면 세례를 해친다
로마서 2:29
'율법 조문의 할례'. 반대자들이 내세운 구절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로마서 2:25-29, 갈라디아서 5:6, 갈라디아서 6:15, 고린도전서 7:19
할례가 소용없다는 구절들. 반대자들의 근거
로마서 2:25-29 25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되느니라 26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27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율법 조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겠느냐 28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29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갈라디아서 5:6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라디아서 6:15 할례나 무할례가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만이 중요하니라
고린도전서 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고린도전서 10:1-5
외적 표징을 받고도 멸망한 이스라엘. 세례에도 같은 원리가 적용된다
1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5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베드로전서 3:21
세례의 참됨은 선한 양심에 있음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골로새서 2:11-12
그리스도의 할례. 거짓 교사에 맞선 권면
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2:12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됨. 세례가 할례의 자리를 잇는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25. 구약의 의식들에 대한 신약의 가르침에 대한 해명

반대자들은 더 어려운 구절들을 든다. 골로새서는 유대인의 의식은 그림자이고 몸은 그리스도라고 말한다. 히브리서는 짐승의 피가 양심을 해결하지 못했고, 율법은 그림자일 뿐 참 형상이 아니며, 의식으로는 예배자가 온전해지지 못했다고 말한다. 칼빈은 먼저 바울이 의식을 그림자라 부른 이유를 설명한다. 실체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그 성취가 미결 상태였기 때문이다. 효능이 아니라 의미를 나타내는 방식이 그랬다는 말이다. 그리스도는 오시기 전에도 신자들 안에서 당신의 능력과 임재를 느끼게 하실 수 있었다. 둘째로 이 구절들은 논쟁의 문맥에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 없이 의식만으로 경건해진다고 주장하는 거짓 사도들과 싸우고 있었다. 그러니 의식의 바른 뜻이 아니라 미신적 악용을 논박한 것이다. 실체가 빠진 의식이 무의미한 것은 당연하다. 예수님도 만나를 배 채우는 음식으로만 여긴 사람들에게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말씀하셨다. 칼빈의 정리는 셋이다. 첫째, 그리스도께 이끌지 않는 의식은 아무리 화려해도 무가치하다. 둘째, 의식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았고 그분이 육신으로 오실 때 성취되었다. 셋째, 햇빛 속에서 그림자가 사라지듯 그리스도가 오시자 의식이 폐지된 것은 마땅하다.

  1. '그림자'는 '가짜'가 아니라 '아직 미결'
  2. 효능이 아니라 보여 주는 방식의 차이
  3. 바울은 의식의 악용을 논박한 것
  4. 그리스도께 이끌지 않는 의식은 무가치
  5. 해가 뜨면 그림자는 사라진다
골로새서 2:17
의식은 그림자, 몸은 그리스도. 반대자들이 가장 어렵다고 본 구절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히브리서 9:12 이하
짐승의 피와 그리스도의 피. 양심 문제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
히브리서 10:1, 히브리서 8:4-5
율법은 장래 좋은 일의 그림자
히브리서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히브리서 8:4-5 4예수께서 만일 땅에 계셨더라면 제사장이 되지 아니하셨을 것이니 이는 율법을 따라 예물을 드리는 제사장이 있음이라 5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할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7:19, 히브리서 9:9
율법은 아무것도 온전하게 못함
히브리서 7:19 (율법은 아무 것도 온전하게 못할지라) 이에 더 좋은 소망이 생기니 이것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느니라
히브리서 9:9 이 장막은 현재까지의 비유니 이에 따라 드리는 예물과 제사는 섬기는 자를 그 양심상 온전하게 할 수 없나니
요한복음 6:27
썩을 양식이 아니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실체 없이 겉만 보는 태도를 고치심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인치신 자니라
📜26. 구약과 신약의 성례의 비교에 대한 아우구스티누스의 진술

칼빈은 궤변가들이 교부들의 과장된 찬사에 속았을지도 모른다고 본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옛 율법의 성례는 구주를 약속했을 뿐, 우리 성례는 구원을 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말은 그의 다른 진술들과 같은 뜻으로 읽어야 한다. 모세 율법의 성례는 그리스도를 예고했고, 우리 성례는 선포한다. 파우스투스(마니교 지도자로 알려진 인물)를 반박하며 한 말도 같다. 그들의 것은 장차 될 일의 약속이고, 우리 것은 이미 된 일의 보증이다. 실체와 능력에 대해서는 아우구스티누스가 분명히 말한다. 표징은 달라도 실체와 영적 능력과 믿음은 같다. 단어마다 소리는 달라도 뜻이 같을 수 있는 것과 같다. 조상들에게는 반석이 그리스도였고, 그들도 우리와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다. 그렇다고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신약 성례는 더 분명하고 찬란하며 그리스도를 더 풍성하게 드러낸다. 이는 구약과 신약의 차이에 따른 것이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도가 오신 뒤의 성례가 수는 더 적고 의미는 더 위엄 있으며 능력은 더 탁월하다고 했다. 칼빈은 마지막으로 '오푸스 오페라툼', 곧 성례를 행하기만 하면 받는 이의 믿음과 상관없이 효력이 난다는 주장을 거짓이라고 단언한다. 성례는 모든 것을 잃은 가련한 신자가 자기 것을 내세우지 않고 하나님께 구하도록 주신 것이다. 우리는 성례를 그저 받을 뿐이고, 거기에 우리의 공로는 없다.

  1. 교부의 과장 표현을 문자 그대로 읽지 말라
  2. 구약은 예고, 신약은 선포와 보증
  3. 표징은 달라도 실체와 믿음은 같다
  4. 신약 성례는 수는 적고 더 분명하다
  5. 성례는 공로가 아니라 빈손으로 받는 자리
고린도전서 10:4
그 반석은 그리스도. 구약 성도도 같은 그리스도를 받았다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로마 교회(교황주의 관행)사제가 성별 문구를 라틴어로 읊으면 성례가 성립한다말씀은 주문이 아니다. 알아듣게 선포되어 표징의 뜻을 깨닫게 해야 한다. 효력은 믿음에서 나온다(4절)로마서 10:8, 사도행전 15:9, 베드로전서 3:21
로마서 10: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냐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사도행전 15:9 믿음으로 그들의 마음을 깨끗이 하사 그들이나 우리나 차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딜레마 논자(이름 없음)말씀을 알면 성례가 필요 없고, 모르면 성례도 못 가르친다도장은 문서에 찍혀 내용을 보증한다. 바울도 할례를 '인'이라 불렀다(5절)로마서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같은 반대자들물질적 도장으로 영원한 약속을 인칠 수 없다신자는 보이는 것을 계단 삼아 감춰진 영적 신비로 올라간다(5절)(해당 대목 직접 인용 없음)
성례 무용론(이름 없음)악인도 받으니 성례는 은혜의 증거가 아니다그 논리면 복음과 그리스도도 은혜가 아니게 된다. 믿음으로 받는 자만 깨닫는다(7절)갈라디아서 3:27, 고린도전서 12:13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령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완전한 믿음 주장건전한 믿음은 더 자랄 수 없고, 온 마음으로 믿으면 확증이 필요 없다이 땅에 완전한 믿음은 없다. '온 마음'은 진심이라는 뜻이다(7-8절)누가복음 17:5, 마가복음 9:24, 사도행전 8:37, 에베소서 4:13, 시편 119:10
누가복음 17:5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마가복음 9: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사도행전 8:37 (없음)
에베소서 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시편 119:10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성령 영광 염려성례가 믿음을 키우면 성령이 헛되고 하나님 영광이 물질로 옮겨 간다말씀·성례·성령은 세 가지 복이다. 하나님은 떡·해·불처럼 도구를 쓰실 뿐이다(8-12절)고린도전서 3:7, 창세기 3:22
고린도전서 3:7 그런즉 심는 이나 물 주는 이는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자라게 하시는 이는 하나님뿐이니라
창세기 3:22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의 손을 들어 생명 나무 열매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서약 중심 성례관(칼빈은 이름 밝히지 않음)사크라멘툼은 병사의 충성 서약이니 성례는 우리의 충성 표지다비유는 받아들이지만 그것은 부차적이다. 주된 것은 하나님이 우리 믿음을 도우시는 것이다(13절)고린도후서 6:16, 에스겔 37:27
고린도후서 6:16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들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에스겔 37:27 내 처소가 그들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스콜라 궤변가·페테르 롬바르드치명적 죄로 막지 않으면 성례가 의와 은혜를 준다. 성례는 의와 구원의 원인이다믿음 없이 의를 약속하는 치명적 오류다. 실체는 그리스도이고 확신은 성례 참여에 달리지 않는다(14-16절)(직접 인용 없음. 5절의 로마서 4:11 논리와 연결)
스콜라 신학구약 성례는 은혜를 비추기만 하고 신약 성례만 실제로 준다조상들도 같은 신령한 음식, 곧 그리스도를 받았다. 할례도 믿음의 의의 인이었다(23절)고린도전서 10:3-4, 로마서 4:11
고린도전서 10:3-4 3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로마서 4:11 그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그들도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같은 반대자들성경은 할례와 의식을 헛되다, 그림자라고 한다세례에도 같은 말이 있다. 바울은 의식의 미신적 악용을 논박했고, 그림자는 '미결'이라는 뜻이다(24-25절)로마서 2:29, 골로새서 2:11-12, 골로새서 2:17, 히브리서 10:1, 베드로전서 3:21
로마서 2:29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골로새서 2:11-12 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골로새서 2:17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이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히브리서 10:1 율법은 장차 올 좋은 일의 그림자일 뿐이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나 온전하게 할 수 없느니라
베드로전서 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이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하나님을 향한 선한 양심의 간구니라
사효론(오푸스 오페라툼)성례는 행하기만 하면 믿음과 상관없이 효력이 있다성례의 본질과 모순된다. 우리는 빈손으로 받을 뿐 공로가 없다(26절)(직접 인용 없음)
📖용어
성례(聖禮)하나님이 당신의 약속을 확증하시려고 교회에 주신 눈에 보이는 거룩한 의식으로, 칼빈은 교회의 일상 성례로 세례와 성찬을 든다.
사크라멘툼 / 뮈스테리온사크라멘툼은 '성례'의 라틴어 원어로, 헬라어 뮈스테리온(하나님이 드러내신 비밀)을 옮긴 말이다.
표징(표지, sign)보이지 않는 실체를 가리키는 눈에 보이는 신호로, 세례의 물이나 성찬의 떡과 잔이 이에 해당한다.
인(印, seal)문서 내용을 보증하는 도장으로, 칼빈은 성례를 하나님 약속에 찍힌 도장이라고 설명한다.
언약하나님이 사람과 맺으시는 엄숙한 약정이며, 성례는 그 언약의 '표'다.
성별(聖別)평범한 물건을 거룩한 용도로 따로 구별하는 일이다.
환유법어떤 대상을 그것과 밀접한 다른 것으로 부르는 말법으로, '무할례자'라는 말로 '약속 밖에 있는 사람'을 가리키는 식이다.
스콜라 신학중세 대학에서 철학적 논리로 신학을 체계화한 학풍으로, 칼빈은 그 학자들을 '궤변가'라고 비판한다.
오푸스 오페라툼(사효성)'행해진 행위 자체로'라는 뜻으로, 성례를 행하기만 하면 받는 사람의 믿음과 상관없이 효력이 난다는 주장이다.
칭의와 성화칭의는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일이고, 성화는 그 사람의 삶이 실제로 거룩하게 변해 가는 일이다.
💬청년의 삶으로
  • (교회) “세례도 받았고 성찬도 꼬박꼬박 하는데 왜 내 믿음은 그대로일까?” → 성례 안에 저절로 작동하는 힘은 없다. 성령이 마음을 여시고 우리가 믿음으로 받을 때 열매가 맺힌다(9·17절).
  • (연애·결혼) “진심이면 됐지, 반지나 예식이 꼭 필요해?” → 칼빈의 악수 비유처럼 말(약속)이 먼저이고, 표는 그 약속을 확증한다. 하나님도 약한 우리를 위해 약속에 표를 더해 주셨다(6절).
  • (직장·돈) “회사도 계약 조건을 수시로 바꾸는데, 하나님 약속은 믿어도 될까?” → 하나님의 진리는 그 자체로 확고하다. 성례는 흔들리는 우리를 위해 그 약속에 찍어 주신 도장이다(3·5절).
  • (가족) “모태신앙이라 세례도 성찬도 그냥 집안 행사 같아.” → 성례에 참여하는 데까지만 그리스도로 옷 입을 수도 있고, 삶까지 옷 입을 수도 있다. 보이는 떡과 잔에서 멈추지 말고 그것을 계단 삼아 그리스도께로 올라가라(5·14절).
  • (교회 생활) “성찬에 빠지지 않으면 신앙 점수가 쌓이는 거 아냐?” → 성례는 공로를 쌓는 자리가 아니라 빈손으로 받는 자리다(26절). 다만 성례를 하찮게 여기는 것도 칼빈이 경계한 악이다(16절).
✅이 편의 결론
  • 성례는 하나님이 약한 믿음을 위해 약속에 찍어 주신 눈에 보이는 도장이자,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신앙을 고백하는 표다.
  • 성례는 언제나 먼저 주어진 말씀에 붙어 있고, 그 말씀이 알아듣게 선포될 때만 의미가 있다.
  • 능력은 성령께, 실체는 그리스도께 있고, 받는 손은 믿음이다. 성례를 헛것으로 여기는 것도, 성례 자체를 떠받드는 것도 잘못이다.
  • 구약 성례도 같은 그리스도를 가리켰다. 신약 성례는 이미 오신 그리스도를 더 분명하고 풍성하게 보여 준다.
  • 성례에는 우리의 공로가 없다. 은혜를 빈손으로 받는 자리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존 칼빈 『기독교강요』(생명의말씀사)의 논증 구조를 우리 말로 정리한 것입니다(원문 미전재).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기준입니다. youtube.com/@빛다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