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강요 학습 노트·제2권 구속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제2권 구속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2권 13편 죽으심, 부활, 승천

제2권 16장 2–19절 (생명의말씀사 세계기독교고전 상, 616–643쪽. 재료는 2절 중간부터 시작하며 1절은 없음. 끝에 붙은 17장 1–2절 앞부분은 다음 편 재료라서 제외함)

🎬 이 편의 영상은 공개되는 날 이 자리에 들어갑니다 · youtube.com/@빛다방

❓ 예수님이 죽고 살아나고 하늘에 올라가신 일이 2천 년 뒤의 내 죄책감, 두려움, 일상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흐름 한눈에

칼빈은 먼저 그리스도 밖에 있는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다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그런데 이 진노 이야기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우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고, 그 사랑 때문에 그리스도를 보내 우리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2–4절). 그다음 사도신경 순서를 따라갑니다. 평생에 걸친 순종, 빌라도 앞의 정죄, 십자가의 저주, 죽음과 장사, 지옥 강하가 모두 '우리 자리에 대신 서신 일'이라고 풀어냅니다(5–12절). 이어 부활, 승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다시 오심이 그 대속을 완성하고 지금도 효력을 내게 한다고 말합니다(13–17절). 마지막으로 심판주가 바로 우리의 구속자라는 위로, 그리고 “구원의 모든 조각이 그리스도 안에 있으니 다른 데서 찾지 말라”는 결론으로 닫습니다(18–19절).

📜절별 정리

📜2.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라는 말의 뜻 *(재료는 이 절 중간부터 시작함. 제목은 정리자가 임시로 붙임)*

성경은 그리스도와 화목하기 전의 우리를 여러 말로 그립니다. 하나님의 원수였고, 율법의 저주 아래 있었고,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었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이 표현들이 '맞춤 표현'이라고 봅니다. 맞춤 표현은 하나님이 우리 이해력의 눈높이에 맞추어 하신 말씀을 뜻합니다. 진노와 저주와 영원한 죽음을 분명히 듣지 못하면, 우리는 자비가 없었을 때 얼마나 비참했을지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면 구원도 값싸게 여기게 됩니다. 칼빈은 같은 소식을 두 방식으로 전하는 예를 듭니다. “하나님이 너를 버리실 수도 있었지만 붙잡아 주셨다”는 말보다, “너는 진노의 자식이고 사탄과 죄의 종이며 멸망이 정해진 사람이었는데, 그리스도께서 형벌을 대신 지고 피로 씻고 진노를 가라앉히셨다”는 말이 훨씬 더 깊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입니다. 결론은 이렇습니다. 진노와 죽음 앞에서 먼저 두려워 본 사람이라야 생명을 간절히 붙잡고 감사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리스도 밖에서는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와 같다고 가르칩니다. 그래야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아버지의 사랑을 붙잡기 때문입니다.

  1. 성경은 화목 전의 우리를 '원수'라 부른다
  2. 우리 눈높이에 맞춘 표현이다
  3. 비참을 알아야 구원의 값을 안다
  4. 두려움이 생명에 대한 열심과 감사를 낳는다
  5. 아버지의 사랑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붙잡는다
로마서 5:10
화목 전에는 하나님과 원수였다는 증거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갈라디아서 3:10
율법 아래 사람은 저주 아래 있다는 증거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에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저주에서 풀려났다는 증거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골로새서 1:21-22
그리스도의 몸으로 화목하기 전에는 멀리 떠나 있었다는 증거
21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22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하게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3.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앞의 표현은 우리 눈높이에 맞춘 말이지만 거짓말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의 자체이시므로 불의를 사랑하실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패한 본성과 악한 삶 때문에 태어날 때부터 정죄받아 마땅한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자기 것'을 잃고 싶어 하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죄인이 되었어도 여전히 그분의 피조물이고, 그분은 우리를 살도록 지으셨습니다. 그래서 값없는 사랑으로 우리를 받아 주십니다. 다만 의와 불의는 끝내 섞일 수 없으므로, 우리가 죄인으로 남아 있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우리를 온전히 받아들이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이루신 속죄(죄값을 치러 죄를 없앰)로 우리의 악을 씻으십니다. 순서는 분명합니다. 사랑이 먼저 있고, 그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서 화목을 이룹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나를 기뻐하신다고 확신하고 싶다면 눈과 마음을 그리스도께만 두어야 합니다.

  1. 진노는 맞춤 표현이지만 사실이다
  2. 거룩한 하나님은 불의를 사랑하실 수 없다
  3. 죄인이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4. 사랑이 먼저, 화목은 그다음이다
  5. 확신을 원하면 그리스도만 바라보라
요한일서 4:19
하나님이 먼저 사랑하셨기에 화목이 뒤따른다는 근거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과연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후에 그가 우리를 자기와 화목시키시는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속죄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비롯됨

바울은 하나님이 창세 전에 우리를 받아 주신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두었다고 말합니다. 이 말은 두 종류의 성경 구절과 함께 맞물립니다. 하나는 독생자를 주신 데서 사랑이 드러났다는 구절이고, 다른 하나는 화목 전에는 우리가 원수였다는 구절입니다. 칼빈은 옛 교회의 증언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우구스티누스(4–5세기 북아프리카의 교부)를 인용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측량할 수 없고 변하지 않습니다. 아들의 피로 화목된 뒤에야 사랑하기 시작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이 생기기 전부터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죄 때문에 원수가 되었지만, 그분은 언제나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스스로 만든 악은 미워하시고, 우리 안에 남은 그분의 작품은 사랑하셨습니다. 그래서 미워하시면서도 사랑하셨다는 놀라운 말이 성립합니다.

  1. 창세 전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 뿌리를 둔다
  2. '사랑'과 '원수' 구절은 서로 맞물린다
  3. 십자가 뒤에 사랑이 시작된 것이 아니다
  4. 하나님은 우리의 악을 미워하시고 그분의 작품은 사랑하셨다
  5. 아우구스티누스도 같은 결론이다
에베소서 1:4-5
창세 전의 사랑이 그리스도 안에 근거한다는 증거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요한복음 3:16
아들을 주신 일이 사랑의 표현이라는 증거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5:10
화목 전에는 원수였다는 반대 방향의 증거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로마서 5:8
아우구스티누스 인용: 죄인일 때 이미 사랑을 확증하셨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리스도의 순종과 죽으심의 효과. 5-7

📜5.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음

그리스도는 어떻게 죄를 없애고 하나님과의 벽을 허무셨을까요? 칼빈의 첫 대답은 “평생의 순종 전체로”입니다. 아담의 불순종과 그리스도의 순종이 짝을 이루고, 그분은 율법 아래 태어나 율법 아래 있는 사람들을 속량하셨습니다. 종의 모습을 입으신 순간부터 해방의 값을 치르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구원을 특히 그리스도의 '죽음'에 연결합니다. 사도신경이 탄생에서 곧바로 고난과 죽음으로 넘어가는 것도 그래서 적절합니다. 다만 칼빈은 생애의 나머지 순종도 빠뜨리지 말라고 덧붙입니다. 죽음에서도 '자원하는 순종'이 핵심입니다. 억지로 바친 제물은 의를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목숨을 스스로 버리셨고, 잡으러 온 사람들에게 먼저 나아가셨고, 빌라도 앞에서 변명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렇다고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지셨기에 순종이 시험을 받았고, 두려움과 싸우면서도 자신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떨고 있는 양심은 이 희생 제물 앞에서만 쉼을 얻습니다.

(빌라도에게서 정죄 받으심) 하나님의 마지막 심판에서 받을 저주가 우리 위에 남아 있었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본디오 빌라도 앞에서 정죄받으셨다고 보도해서, 우리 형벌이 이 의인에게 옮겨졌음을 보여 줍니다. 아무 죽음이나 이 일을 해내지는 못합니다. 강도나 폭도에게 죽으셨다면 '대신 값을 치렀다'는 표시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분은 법정에서 고발당하고 심문받고 재판관의 입으로 사형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죄인의 자리에 서셨다는 것이 분명해집니다. 동시에 같은 재판관이 그분의 무죄를 여러 번 인정했습니다. 범죄자 사이에 계신 모습과 찬란한 무죄가 함께 드러나므로, 그분이 '남의 죄'를 지셨다는 사실이 밝혀집니다. 칼빈은 이 대치(代置, 남의 자리에 대신 섬)를 꼭 기억하라고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아들이 받으신 형벌이 아직 내 위에 있는 듯 평생 떨며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1. 탄생부터 죽음까지 순종 전체가 구속이다
  2. 성경은 특히 죽음에 구원을 연결한다
  3. 자원하지 않은 제물은 의를 이루지 못한다
  4. 두려움과 싸우며 아버지 뜻에 복종하셨다
  5. 법정 판결이 '죄인의 자리'를 증명한다
  6. 무죄 선언이 '남의 죄를 지심'을 증명한다
로마서 5:19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된다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 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갈라디아서 4:4-5
율법 아래 나셔서 율법 아래 있는 자를 속량하심
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에 나게 하신 것은 5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마태복음 3:15
세례 때에도 순종으로 의를 이루신다고 하심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 하시니 이에 요한이 허락하는지라
마태복음 20:28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목숨을 주러 오심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로마서 4:25
우리 범죄 때문에 내줌이 되심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요한복음 1:29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이르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로마서 3:24-25
그분의 피로 세운 화목제물
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25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로마서 5:9-10
피로 의롭게 되고 죽음으로 화목함
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받을 것이니 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고린도후서 5:21
죄 없는 분을 우리 대신 죄로 삼으심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빌립보서 2:7-8
종의 형체에서 십자가 죽음까지 순종 전체를 요약
7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8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요한복음 10:15
양을 위해 목숨을 버리심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요한복음 10:18
빼앗긴 것이 아니라 스스로 버리심, 곧 자원의 증거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이사야 53:7
잠잠한 어린양처럼 끌려가심 (사도행전 8:32에서 인용)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 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요한복음 18:4
잡으러 온 자들에게 먼저 나아가심
예수께서 그 당할 일을 다 아시고 나아가 이르시되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마태복음 27:12, 14
빌라도 앞에서 변명하지 않으심
마태복음 27:12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고발을 당하되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는지라
마태복음 27:14 한 마디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총독이 크게 놀라워하더라
히브리서 10:7, 9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순종의 고백 (시편 40:7-8 인용)
히브리서 10:7 이에 내가 말하기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두루마리 책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과 같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느니라
히브리서 10:9 그 후에 말씀하시기를 보시옵소서 내가 하나님의 뜻을 행하러 왔나이다 하셨으니 그 첫째 것을 폐하심은 둘째 것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사야 53:5
그분이 징계받아 우리가 평화를 얻음, '총독' 언급의 의미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마가복음 15:28
불법자와 함께 여겨지심 (이사야 53:12 성취, 개역개정은 난외주)
(없음)
마태복음 27:23
빌라도가 무죄를 증언함 (재료의 '21:23'은 OCR 오류로 봄)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그들이 더욱 소리 질러 이르되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하겠나이다 하는지라
시편 69:4
빼앗지 않은 것도 물어 주게 됨, 곧 무죄한 대속
까닭 없이 나를 미워하는 자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고 부당하게 나의 원수가 되어 나를 끊으려 하는 자가 강하였으니 내가 빼앗지 아니한 것도 물어 주게 되었나이다
요한복음 18:38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빌라도가 이르되 진리가 무엇이냐 하더라
이사야 53:12
우리 죄책이 아들의 머리로 옮겨짐
그러므로 내가 그에게 존귀한 자와 함께 몫을 받게 하며 강한 자와 함께 탈취한 것을 나누게 하리니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 그러나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6.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음의 형식 자체가 진리를 드러냅니다. 십자가는 사람들 생각에서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율법에서도 저주받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십자가에 달리셨다는 것은 그 저주를 스스로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율법도 이것을 미리 그림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죄를 위해 드리는 제물을 히브리어로 '아샴'이라 불렀는데, 이 말은 '죄' 자체를 뜻합니다. 제물이 죄의 저주를 지고 가는 존재라는 상징입니다. 그리스도는 그 상징들이 가리키던 실체로서, 우리의 얼룩과 형벌이 전가된(남의 것이 내 것으로 계산되어 옮겨짐) 제물로 자신을 드리셨습니다. 칼빈은 여기서 두 가지 오해를 막습니다. 첫째, 그리스도가 저주에 짓눌려 무너지신 것이 아니라 저주를 지시고 그 힘을 부수셨습니다. 둘째, 십자가는 수치의 상징에서 승리의 개선 마차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그분의 정죄에서 나의 사면을, 그분의 저주에서 나의 복을 봅니다. 또 피는 죄값의 보상일 뿐 아니라 우리의 부패를 씻는 대야이기도 합니다.

  1. 십자가는 율법이 저주한 죽음이다
  2. 제물 이름 '아샴'은 '죄'라는 뜻이다
  3. 우리 형벌이 그분께 전가되었다
  4. 저주에 무너지신 것이 아니라 저주를 부수셨다
  5. 피는 값을 치르고 동시에 씻어 낸다
신명기 21:23
나무에 달린 자는 저주받은 자라는 율법 규정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이사야 53:10
속죄 제물(아샴)로 자신을 드리심
여호와께서 그에게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은즉 그의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씨를 보게 되며 그의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께서 기뻐하시는 뜻을 성취하리로다
고린도후서 5:21
죄 없는 분이 우리 대신 죄가 되심, 그 대신 우리는 그분의 의를 입음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로마서 8:3
그리스도의 육신에 죄를 정하여 죄의 세력을 꺾으심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이사야 53:6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분께 지우심, 곧 전가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갈라디아서 3:13-14
저주받은 바 되어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심
13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14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2:24
나무에 달려 몸으로 우리 죄를 지심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골로새서 2:14-15
증서를 십자가에 못 박고 권세들을 이기심, 곧 십자가의 승리
14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히브리서 9:14
영원한 성령으로 흠 없는 자신을 드리심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에베소서 5:26
피가 씻는 역할도 한다는 보조 근거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디도서 3:5
씻음과 새롭게 하심의 보조 근거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요한계시록 1:5
피로 죄에서 해방하심의 보조 근거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믿음은 그리스도의 정죄 속에서 무죄의 사면을 깨달으며, 그의 저주 속에서 축복을 깨닫는 것이다.”
📜7. "죽으시고 장사되어"

여기서도 그리스도가 모든 면에서 우리 대신 값을 치르셨음이 드러납니다. 죽음이 우리를 종처럼 붙잡고 있었는데, 그분이 우리 대신 죽음의 권세에 자신을 내주셔서 우리를 건지셨습니다. 차이는 이것입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죽음에 삼켜지지만, 그분은 스스로 삼켜지는 길을 택하셨고, 오히려 죽음을 삼켜 버리셨습니다. 그 목적은 죽음의 세력을 쥔 마귀를 멸하고, 평생 죽음의 공포에 매여 사는 사람들을 풀어 주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열매입니다. 두 번째 열매는 우리가 그 죽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죽음이 우리의 '옛 사람'(죄로 기울어진 옛 자아)을 죽이고, 장사되심이 우리를 죄에 대해 묻어 버립니다. 바울은 이것을 따라 살라고 권합니다. 동시에 그리스도의 죽음을 헛되게 만들려는 것이 아니라면, 그 효력이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1. 죽음의 종이던 우리를 대신해 죽으셨다
  2. 삼켜지신 것이 아니라 죽음을 삼키셨다
  3. 첫 열매: 죽음과 그 공포에서 해방
  4. 둘째 열매: 옛 사람을 죽이는 힘
  5. 장사됨도 '죄에 대해 묻힘'을 뜻한다
히브리서 2:9
모든 사람을 위해 죽음을 맛보심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베드로전서 3:22
죽음을 삼키심 (칼빈이 쓴 라틴어 성경의 읽기. 우리말 성경 본문과는 다름)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히브리서 2:14-15
마귀를 멸하고 죽음의 공포에서 놓아 주심, 곧 첫 열매
14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15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로마서 6:5
그분의 죽음과 연합함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로마서 6:4
그분과 함께 장사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2:19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재료 표기대로)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에 대하여 살려 함이라
갈라디아서 6:14
세상이 나에게, 내가 세상에 대해 십자가에 못 박힘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골로새서 3:3
우리가 죽었고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짐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 교리에 대한 해명. 8-12

📜8. "지옥에 내려가사"

사도신경의 '지옥 강하'(그리스도가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고백)를 빠뜨려서는 안 됩니다. 칼빈은 이것이 구속에서 작지 않은 문제라고 봅니다. 그는 역사적 사실도 숨기지 않습니다. 옛 저술가들의 글을 보면 이 문구가 한동안 교회에서 잘 쓰이지 않았고, 나중에 들어와 점차 퍼진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해석은 달라도 교부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지옥 강하를 언급하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니 이 문구는 경건한 사람들의 공통된 믿음을 담고 있습니다. 누가 언제 넣었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신경이 성경에서 나온 것만 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조항을 지우면 그리스도의 죽음이 주는 유익을 많이 잃습니다. 한편 어떤 사람들은 성경에서 '지옥'이 '무덤'을 뜻할 때가 많으니 이 문구는 '장사되심'의 반복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칼빈은 그런 용례가 있다는 점은 인정하면서도 두 가지 이유로 반대합니다. 첫째, 분명한 말을 더 흐린 말로 되풀이하는 것은 부주의한 일이고, 같은 내용을 두 번 말할 때는 뒤의 말이 앞의 말을 풀어 주어야 합니다. 둘째, 믿음의 요점을 아주 짧게 정리한 신경에 쓸데없는 반복이 끼어들었을 리 없습니다.

  1. 지옥 강하는 구속에서 중요한 고백이다
  2. 문구는 나중에 들어왔다고 칼빈도 인정한다
  3. 그래도 교부들 모두가 이를 언급한다
  4. '지옥=무덤' 반복설에 반대한다
  5. 짧은 신경에 헛된 반복은 없다
(이 절은 구절 인용 없이 논리로 논증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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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그리스도께서 지하 세계에 내려가셨다는 논지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그리스도가 율법 아래에서 죽은 족장들(구약 성도들)의 영혼에게 내려가 구속을 선포하고 감옥에서 풀어 주셨다는 해석입니다. 이 해석은 시편과 스가랴의 구절을 증거로 듭니다. 칼빈은 둘 다 잘못 읽은 것이라고 봅니다. 시편 구절은 먼 나라에서 종살이하는 사람들의 해방을 말하고, 스가랴 구절은 바벨론 포로 생활을 물 없는 구덩이에 빗대어 교회의 구원을 말할 뿐입니다. 후대 사람들은 이것을 지하의 어떤 장소로 상상해 '림보'라고 불렀습니다. 칼빈은 유명한 저자들이 되풀이하고 지금도 진지하게 변호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말합니다. 죽은 이의 영혼을 감옥에 가둔다는 생각부터 유치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그는 이것만은 인정합니다. 그리스도가 성령의 능력으로 먼저 죽은 성도들을 비추셔서, 그들이 소망 가운데 맛보기만 했던 은혜가 이제 온 세상에 드러났음을 알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의 “옥에 있는 영들” 구절도 이렇게 읽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이 죽은 이들에게까지 미쳐, 경건한 영혼들은 기다리던 일의 성취를 기뻐했고 악인들은 자신이 구원에서 제외되었음을 더 분명히 알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1. 족장 해방설·림보설을 칼빈은 거부한다
  2. 근거 구절들은 포로 해방에 관한 말씀이다
  3. 영혼을 가두는 감옥이라는 발상은 유치하다
  4. 죽음의 능력이 먼저 죽은 이들에게도 미쳤다
  5. 베드로전서 3:19도 그 뜻으로 읽는다
시편 107:16
림보설의 근거로 쓰였지만, 실제로는 먼 나라 포로의 해방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스가랴 9:11
림보설의 근거로 쓰였지만, 실제로는 바벨론 포로를 마른 구덩이에 비유한 것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베드로전서 3:19
그리스도의 죽음의 능력이 죽은 이들에게도 미쳤다는 뜻으로 해석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10. "지옥에 내려가사"는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영적 고통을 나타내는 표현임

칼빈은 사도신경 밖에서, 곧 성경에서 더 확실한 설명을 찾자고 합니다. 그리스도가 몸의 죽음만 겪으셨다면 아무 효력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보응이 얼마나 혹독한지 직접 겪으셔야 했습니다. 진노를 가라앉히고 공의로운 심판을 만족시키려면, 지옥의 세력과 영원한 죽음의 쓰라림과 맞서야 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가 말한 대로 그분은 죄인들을 대신하는 보증인이 되어 그들이 받을 형벌을 모두 당하셨습니다. 단 하나의 예외는 그분이 죽음에 붙잡혀 계실 수 없었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지옥에 내려가셨다”는 말은 하나님이 악인에게 내리시는 죽음을 그분이 당하셨다는 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장사 이전에 일어난 일을 장사 뒤에 적었으니 순서가 뒤바뀌었다고 반대합니다. 칼빈은 이것을 하찮은 반론으로 봅니다. 사도신경은 먼저 사람 눈에 보인 고난을 적고, 이어서 하나님 앞에서 겪으신 보이지 않는 심판을 적었을 뿐입니다. 이 순서는 그분이 몸뿐 아니라 영혼으로도 정죄받은 사람의 고통을 겪어 더 큰 값을 치르셨음을 알려 줍니다.

  1. 몸의 죽음만으로는 효력이 없었다
  2.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죽음의 고통을 겪으셨다
  3. 예외는 죽음에 붙잡혀 계실 수 없었다는 것
  4. 순서 문제는 '보이는 고난 → 보이지 않는 고난'이다
  5. 몸과 영혼으로 함께 값을 치르셨다
이사야 53:5
죄인 대신 형벌을 다 받으셨다는 근거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사도행전 2:24
유일한 예외: 죽음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11. 성경 본문의 증거들

베드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이것이 단순한 죽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저주와 진노에서 오는 죽음의 고통에 붙잡히셨다는 뜻이라고 읽습니다. 장난처럼 두려움 없이 죽으셨다면 대단한 일이 아니었겠지만, 그분은 죽음을 몹시 두려워하면서도 피하지 않으셨습니다. 히브리서 5:7의 '두려워하심'도 같은 증거입니다. 칼빈은 이 단어를 '경건하심'으로 옮기는 번역은 말뜻과 사실에 모두 맞지 않는다고 봅니다(한글 개역개정은 '경건하심'으로 번역함). 그분은 죽음을 면하게 해 달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죄인으로서 죽음에 삼켜지지 않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아 불러도 대답이 없는 것보다 깊은 구렁은 없습니다. 십자가의 외침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그 고뇌에서 나온 그분 자신의 마음입니다. 이것을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대신 말한 것으로 보는 해석은 개연성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아들을 미워하거나 노하셨다는 뜻은 아닙니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어떻게 화를 내시겠습니까? 아들이 미움을 받았다면 다른 사람을 위해 진노를 가라앉히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요점은 그분이 하나님의 무거운 형벌을 고스란히 당하셨다는 것입니다. 힐라리우스(4세기 무렵의 교부)도 비슷하게 말했지만, 결정적 근거는 히브리서입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을 평생 짓누르는 죽음의 공포와 직접 싸워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왕이 이미 삼키신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1. '사망의 고통'은 진노에서 오는 고통이다
  2. 두려워하면서도 피하지 않으셨다
  3. “버리셨나이까”는 그분 자신의 고뇌다
  4. 하나님이 아들을 미워하신 것은 아니다
  5. 죽음의 공포와 싸워 이기셨기에 우리는 자유하다
사도행전 2:24
사망의 고통에서 풀려나심, 진노에서 오는 고통에 붙잡히셨다는 근거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히브리서 5:7
심한 통곡과 눈물, '두려워하심'으로 들으심을 얻음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마태복음 27:46
버림받음의 외침, 영혼의 고통에 대한 증거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시편 22:1
십자가 외침의 원래 시편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마태복음 3:17
사랑하는 아들이므로 미워하셨을 리 없다는 근거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사야 53:5
하나님의 손으로 징계받으심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히브리서 2:15
죽음의 공포에 매인 자들을 놓아주심, 승리의 열매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 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베드로전서 3:22
왕이 이미 삼키신 것을 두려워하지 않음 (칼빈이 쓴 라틴어 성경의 읽기)
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복종하느니라
📜12. 각종 오해와 오류에 대한 반박

칼빈의 해석을 공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스도가 자기 영혼의 구원을 두려워하셨다는 것은 말이 안 되고, 결국 하나님의 아들에게 '절망'을 돌리는 모욕이라는 비난이었습니다. 칼빈은 먼저 복음서의 보도를 듭니다. 그분은 심령이 괴로우셨고 슬퍼하셨으며 두려움에 떠셨습니다. “두려운 척만 하셨다”는 말은 비겁한 회피입니다. 암브로시우스(4세기 밀라노의 주교)가 말했듯이 십자가를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면 그분의 슬픔도 당당히 고백해야 합니다. 영혼이 형벌에 함께하지 않았다면 그리스도는 '몸의 구속자'에 그쳤을 것입니다. 비판자들은 그 자체로 악한 것을 그리스도께 돌리면 안 된다고도 말합니다. 칼빈의 답은 이렇습니다. 그분은 모든 일에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고, 연약함을 억지로가 아니라 사랑으로 스스로 지셨습니다. 비판자들의 잘못은 그리스도의 감정을 우리의 무절제한 감정으로 재는 데 있습니다. 그분의 슬픔과 두려움에는 넘치지 않는 절제가 있었습니다. 다음 반론은 “죽음은 두려워하셨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두려워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칼빈은 그렇다면 그분이 죽음을 비웃는 범죄자들보다 더 겁 많은 분이 된다고 반박합니다. 피땀과 세 번 반복된 겟세마네 기도는 보통 죽음보다 훨씬 깊은 싸움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하나님께 버림받은 느낌을 겪으셨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신뢰하는 데서는 흔들리지 않으셨습니다. 버림받았다고 외치는 순간에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이 사실은 두 고대 이단을 반박합니다. 그리스도에게 사람의 영혼이 없었다는 아폴리나리스의 주장, 그리고 그리스도에게 의지가 하나뿐이라는 단의론의 주장입니다.

  1. 복음서는 그리스도의 두려움을 분명히 보도한다
  2. 영혼의 고통이 없었다면 '몸의 구속자'일 뿐이다
  3. 그분의 감정은 죄 없고 절제되어 있었다
  4. 버림받은 느낌 속에서도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
  5. 아폴리나리스·단의론을 반박한다
요한복음 13:21
심령이 괴로우셨다는 보도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6:37
슬퍼하고 고민하셨다는 보도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히브리서 4:15
모든 일에 시험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심, 우리의 위로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2:17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아지심, 감정의 절제와 연결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누가복음 22:44
핏방울 같은 땀, 보통 죽음 이상의 싸움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누가복음 22:43
천사가 힘을 더함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마태복음 26:39
“이 잔을 지나가게 하옵소서”, 세 번 반복된 기도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사도행전 2:24
죽음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 신뢰가 지켜짐
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마태복음 27:46
버림받은 중에도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심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요한복음 12:27-28
“이때를 면하게 하소서” 그러나 “이를 위해 왔나이다”, 두 의지의 증거
27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그리스도의 부활, 승천 그리고 보좌에 앉으심. 13-16

📜13.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부활이 없으면 지금까지의 모든 이야기는 불완전합니다. 십자가와 죽음과 장사에는 연약함만 보이므로, 믿음은 그 위로 뛰어올라야 힘을 얻습니다. 구원은 죽음에서 성취되었습니다. 화목과 심판의 만족, 저주 제거, 형벌의 값이 거기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런데도 성경은 우리에게 '산 소망'을 준 것이 부활이라고 말합니다. 칼빈은 로마서 4:25로 둘을 나눕니다. 죽음으로 죄가 제거되고 죽음이 소멸되었으며, 부활로 의가 회복되고 생명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부활 덕분에 죽음의 효력이 우리에게 나타납니다. 죽음에 져 버린 분이 어떻게 우리를 위해 승리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성경이 '죽음'만 말할 때도 부활이 함께 들어 있고, '부활'만 말할 때도 죽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칼빈은 이것을 '제유법'(일부를 말해 전체를 가리키는 표현법)이라고 부릅니다. 부활의 혜택은 셋입니다. 첫째는 의와 생명의 회복이고, 둘째는 우리가 새 생명으로 사는 힘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본받으라는 권고를 받을 뿐 아니라, 그분의 능력으로 이미 거듭났다는 것을 배웁니다. 셋째는 우리 자신의 부활에 대한 보증입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과 똑같이 실제로 죽으셨고, 같은 몸으로 죽지 않는 생명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1. 부활이 없으면 모든 것이 불완전하다
  2. 죽음은 죄를 없애고, 부활은 의를 세운다
  3. 죽음과 부활은 늘 함께 말해진다
  4. 부활은 새 생명으로 사는 힘이다
  5. 그분의 부활이 우리 부활의 보증이다
베드로전서 1:3
부활로 산 소망을 주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그의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로마서 4:25
범죄 때문에 내줌이 되고 의롭다 하시려 살아나심, 역할 구분의 핵심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로마서 1:4
부활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심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부활하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고린도후서 13:4
약함으로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심
그리스도께서 약하심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으나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 계시니 우리도 그 안에서 약하나 너희에게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그와 함께 살리라
빌립보서 3:10-11
부활의 권능과 죽으심을 함께 알고자 함
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어떻게 해서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베드로전서 1:21
살리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께 믿음과 소망을 둠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고린도전서 15:17
부활이 없으면 믿음도 헛되고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음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로마서 8:34
죽으실 뿐 아니라 살아나 간구하시는 분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로마서 6:4
새 생명 가운데 행하게 하심, 둘째 혜택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골로새서 3:3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골로새서 3:5
땅의 지체를 죽이라는 결론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골로새서 3:1-2
함께 살리심을 받았으니 위의 것을 찾으라
1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2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고린도전서 15:12-26
우리 부활의 보증, 셋째 혜택
12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어찌하여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13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리라 14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5또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지 아니하셨으리라 16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었을 터이요 17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
📜14. "하늘에 오르사"

부활에서 그리스도는 영광을 다시 드러내기 시작하셨지만, 그분의 나라가 참으로 시작된 것은 승천 때입니다. 겉으로는 모순 같습니다. 떠나가셨는데 오히려 더 가까이 계신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칼빈은 몸으로 낮게 이 땅에 계실 때보다 떠나신 뒤가 우리에게 더 유익하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이 영광을 받기 전에는 성령이 아직 오지 않으셨고, 예수님은 떠나야 보혜사(곁에서 돕는 분, 곧 성령)가 오신다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그분은 제자들을 고아로 두지 않고 보이지 않지만 더 나은 방식으로 다시 오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실제로 승천 뒤 성령이 풍성히 부어지고 나라가 놀랍게 퍼졌습니다. 몸은 우리 눈에서 사라졌지만, 그분은 이 땅을 순례하는 신자들과 함께 계시고 하늘과 땅을 더 직접적인 능력으로 다스리십니다. 칼빈은 아우구스티누스를 길게 인용합니다. 몸의 임재로는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않을 것”이라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위엄의 임재로는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는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교회는 그분의 몸을 며칠밖에 모시지 못했고, 지금은 믿음으로 모십니다.

  1. 나라의 참된 시작은 승천이다
  2. 떠나심이 오히려 우리에게 유익이다
  3. 승천 뒤에 성령이 부어졌다
  4. 몸은 하늘에, 능력과 위엄은 우리와 함께
  5. 지금은 눈이 아니라 믿음으로 모신다
에베소서 4:10
하늘 위에 오르신 것은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7:37
목마른 자를 부르시는 초청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이르시되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요한복음 7:39
영광 받기 전에는 성령이 아직 오지 않으심
이는 그를 믿는 자들이 받을 성령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않으셨으므로 성령이 아직 그들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요한복음 16:7
떠나가는 것이 유익, 보혜사가 오심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요한복음 14:18-19
고아로 두지 않고 다시 오심
18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19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요한복음 16:14
성령이 그리스도를 영광스럽게 하심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시겠음이라
사도행전 1:9
몸이 눈에서 사라지심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마태복음 28:20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겠다는 약속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26:11
(아우구스티누스) 몸으로는 항상 함께 있지 않음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사도행전 1:3, 9
(아우구스티누스) 40일간 함께하시다가 올라가심
사도행전 1:3 그가 고난 받으신 후에 또한 그들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살아 계심을 나타내사 사십 일 동안 그들에게 보이시며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니라
사도행전 1:9 이 말씀을 마치시고 그들이 보는데 올려져 가시니 구름이 그를 가리어 보이지 않게 하더라
마가복음 16:19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 우편에 앉으심
주 예수께서 말씀을 마치신 후에 하늘로 올려지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니라
히브리서 1:3
(아우구스티누스) 위엄의 임재는 사라지지 않음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그의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드시며 죄를 정결하게 하는 일을 하시고 높은 곳에 계신 지극히 크신 이의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15.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이 표현은 왕이 자기 대신 나라를 다스릴 신하를 곁에 앉히는 모습에 빗댄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뜻이 그리스도 안에서 높여지고 그분의 손으로 다스림이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우편에 앉히셨다고 말합니다. 그분은 하늘과 땅의 주권을 받으셨고, 심판 날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 다스리십니다. 목적은 모든 피조물이 그분의 위엄을 우러러보고 다스림을 받으며 복종하게 하는 데 있습니다. 사도들이 이 사실을 자주 말한 것도 모든 일이 그리스도의 결정에 달려 있음을 가르치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편에 앉으심'을 그저 그분이 하늘에서 복을 누리신다는 뜻으로 보면 잘못입니다. 스데반은 그리스도가 '서 계신' 것을 보았지만 문제 될 것이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몸의 자세가 아니라 권위의 위엄이기 때문입니다.

  1. 왕이 대리 통치자를 곁에 앉히는 비유다
  2. 하늘과 땅의 주권을 받으셨다
  3. 심판 날까지 다스림은 계속된다
  4. '복을 누림'만의 뜻이 아니라 '통치'의 뜻이다
  5. 앉음/섬은 자세가 아니라 권위의 표현이다
에베소서 1:20-21
모든 통치와 권세 위에 앉히심
20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빌립보서 2:9
모든 이름 위의 이름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고린도전서 15:27
만물을 그 발아래 두심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두셨다 하셨으니 만물을 아래에 둔다 말씀하실 때에 만물을 그의 아래에 두신 이가 그 중에 들지 아니한 것이 분명하도다
에베소서 1:22
만물을 복종하게 하심
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2:30-36
사도들의 선포: 우편에 높이신 주와 그리스도
30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31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32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34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35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
사도행전 3:21
하늘이 그리스도를 받아 둠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히브리서 1:8
아들의 보좌는 영원함
아들에 관하여는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영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서 계신' 그리스도를 봄, 자세보다 위엄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16. 그리스도의 승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칼빈은 승천의 유익을 셋으로 정리합니다. 첫째, 아담 때문에 닫혔던 하늘 길이 열렸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와 같은 육체로, 마치 우리 이름을 걸고 들어가신 것처럼 하늘에 들어가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소망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소유하고 있습니다. 둘째, 그리스도가 하늘 성소에서 우리의 변호인이자 중보자로 아버지 앞에 계십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시선을 우리 죄가 아니라 자기 의로 향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죄인에게 두려움으로 가득했을 하나님의 보좌가 은혜와 자비의 보좌가 됩니다. 셋째,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그분은 원수를 사로잡고 백성을 부요하게 하십니다. 영적 생명으로 살리시고, 성령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교회에 여러 은사를 주시고, 해로운 것에서 지키시고, 십자가와 구원의 원수들을 누르십니다. 모든 원수를 굴복시키고 교회 세우기를 완성할 때까지 이 일을 계속하십니다. 칼빈은 이것이 그분 나라의 참모습이며, 마지막 일은 심판이라고 말합니다.

  1. 첫째: 닫혔던 하늘 길이 열렸다
  2.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을 이미 소유한다
  3. 둘째: 아버지 앞의 변호인이 계신다
  4. 심판의 보좌가 은혜의 보좌로 바뀐다
  5. 셋째: 그분의 능력이 교회를 살리고 지킨다
요한복음 14:3
처소를 예비하러 가심, 하늘 길이 열림
가서 너희를 위하여 거처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에베소서 2:6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힘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히브리서 7:25
항상 살아 간구하심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히브리서 9:11-12
손으로 짓지 않은 하늘 성소에 들어가심
11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것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로마서 8:34
우편에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심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에베소서 4:8
사로잡힌 자들을 사로잡고 선물을 주심
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그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시편 68:18
에베소서 4:8의 원래 시편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들을 취하시고 선물들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반역자들로부터도 받으시니 여호와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이로다
고린도전서 15:25
모든 원수를 발아래 둘 때까지 다스리심
그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에 둘 때까지 반드시 왕 노릇 하시리니
시편 110:1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통치의 원래 약속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17. "거기로부터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그리스도는 지금도 백성에게 능력을 보여 주시지만, 이 땅에서 그분의 나라는 육체의 낮음 아래 숨겨져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마지막 날 눈에 보이게 나타나실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그분은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위엄과 천사들과 함께 다시 오십니다. 우리는 그분을 구속자로 기다리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양과 염소를 가르시고, 산 자든 죽은 자든 아무도 그 심판을 피하지 못합니다. '산 자와 죽은 자'를 다르게 풀던 고대 저술가들도 있었지만, 칼빈은 그 해석을 자세히 소개하지 않습니다. 그는 문자 그대로의 뜻이 더 분명하고, 일반 신자를 위해 만든 사도신경의 취지에도 맞는다고 봅니다. 그런데 사람은 한 번 죽는다고 성경이 말하니, 마지막 날 살아 있는 사람은 어떻게 될까요? 칼빈은 그들이 자연스러운 죽음을 겪지는 않지만, 순식간에 변화되어 육신의 삶이 끝나는 일을 겪으므로 그것을 '죽음'이라 불러도 무리가 없다고 답합니다. 결국 산 자와 죽은 자가 모두 심판대 앞에 섭니다. 칼빈은 이 표현이 베드로의 설교와 바울이 디모데에게 준 훈계에서 왔을 가능성이 높다고 봅니다.

  1. 지금 나라는 낮음 아래 숨겨져 있다
  2.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보이게 오신다
  3. 누구도 심판을 피하지 못한다
  4. '산 자와 죽은 자'는 문자 그대로의 뜻이다
  5. 그날 살아 있는 이들은 순식간에 변화된다
사도행전 1:11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심
이르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마태복음 24:30
능력과 영광으로 구름 타고 오심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5:31-33
양과 염소를 나누심
31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32모든 민족을 그 앞에 모으고 각각 구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것 같이 하여 33양은 그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
나팔 소리, 죽은 자와 산 자가 모두 소집됨
16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17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히브리서 9:27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일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고린도전서 15:51
다 잠잘 것이 아니라 다 변화됨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고린도전서 15:52
순식간에 변화됨, 곧 죽음과 같은 변화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사도행전 10:42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 표현의 출처
우리에게 명하사 백성에게 전도하되 하나님이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증언하게 하셨고
디모데후서 4:1
같은 표현의 출처
하나님 앞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가 나타나실 것과 그의 나라를 두고 엄히 명하노니

결론: 오직 그리스도뿐임. 18-19

📜18. 우리의 구속자께서 심판주이심

여기서 큰 위로가 나옵니다. 심판하실 분은 우리에게 함께 심판하는 영광까지 나누어 주기로 정하신 바로 그분입니다. 자비로운 왕이 자기 백성을 멸하실까요? 머리가 자기 몸의 지체들을 흩어 버릴까요? 변호인이 자기가 맡은 사람을 정죄할까요? 바울이 “그리스도께서 간구하시니 누가 정죄하겠느냐”고 외쳤다면, 그 변호인이 직접 심판하실 때는 더 확실합니다. 우리는 낯선 법정이 아니라 구속자의 심판대 앞에 섭니다. 지금 복음으로 영원한 복을 약속하시는 분이 그날 심판으로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아버지가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신 목적도 떨고 있는 백성의 양심을 돌보게 하시려는 데 있습니다. 칼빈은 이어서 자신이 사도신경 순서를 따른 이유를 밝힙니다. 사도신경은 구속의 요점을 몇 마디로 정리한 '도표'와 같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실제로 썼는지는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옛 저술가들은 대체로 사도들의 것으로 보았고, 칼빈 자신은 사도 시대부터 교회가 공적 고백으로 받아들였다고 판단합니다. 중요한 것은 믿음의 역사 전체가 간결한 순서로 담겼고, 성경이 보증하지 않는 것은 하나도 없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저자 문제로 싸우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말합니다.

  1. 심판주가 곧 나의 구속자요 변호인이다
  2. 낯선 법정에 서는 것이 아니다
  3. 복음의 약속을 심판으로 지키신다
  4. 사도신경은 구속의 요점을 담은 도표다
  5. 저자보다 성경에 맞는 내용이 중요하다
마태복음 19:28
제자들이 심판의 영광에 참여함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
로마서 8:33-34
그리스도가 간구하시니 정죄할 자가 없음
33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요한복음 5:22
아버지가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심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19. 오직 그리스도만이 모든 축복의 근원이심

구원 전체와 그 모든 조각이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그러니 아무리 작은 조각이라도 다른 데서 끌어오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생애를 구원의 목록처럼 펼칩니다. 구원은 '예수'라는 이름에, 성령의 은사는 기름 부음에, 힘은 다스림에, 순결은 잉태에 있습니다. 온유는 탄생에 있는데, 그분이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아져 우리의 고통을 느끼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구속은 고난에, 죄 사함은 정죄받으심에, 저주에서 벗어남은 십자가에, 죄값의 보상은 희생에, 정결은 피에 있습니다. 화목은 지옥 강하에, 육체를 죽임은 무덤에, 새 생명과 영원한 생명은 부활에, 하늘의 상속은 승천에 있습니다. 보호와 안전과 충만한 복은 그분의 나라에, 심판을 안심하고 기다릴 근거는 그분의 심판 권세에 있습니다. 모든 좋은 것이 이 샘에 가득하니 다른 샘을 찾지 말자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에게 주로 관심을 두면서도 생각 일부를 다른 데로 돌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칼빈은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제대로 안다면 그런 불신이 끼어들 수 없다고 말합니다.

  1. 구원 전체와 모든 조각이 그리스도 안에
  2. 생애의 각 장면이 구원의 각 복에 대응한다
  3. 작은 조각도 다른 데서 찾지 말라
  4. '반은 그리스도, 반은 딴 데'도 불신이다
  5. 이 샘에서 마음껏 마시라
사도행전 4:12
다른 이름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음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고린도전서 1:30
그리스도가 우리의 지혜·의·거룩·구속이 되심
너희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고 예수는 하나님으로부터 나와서 우리에게 지혜와 의로움과 거룩함과 구원함이 되셨으니
히브리서 2:17
모든 면에서 우리와 같아지심, 온유의 근거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히브리서 5:2
연약한 자를 너그러이 대하심
그가 무식하고 미혹된 자를 능히 용납할 수 있는 것은 자기도 연약에 휩싸여 있음이라
갈라디아서 3:13
저주에서 벗어남은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에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다른 샘을 구하지 말고 바로 이 샘에서 마음껏 마시자는 것이다.”
⚖️오해와 반론
입장주장칼빈의 답근거 구절
예상되는 질문 (2–4절)하나님이 우리 '원수'였다면 사랑하셨다는 말과 모순 아닌가진노는 눈높이에 맞춘 말이지만 사실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만든 악은 미워하시고 그분의 작품은 사랑하셨다. 사랑이 먼저이고 화목이 뒤따른다요한일서 4:19, 로마서 5:8, 로마서 5:10, 에베소서 1:4-5
요한일서 4:19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로마서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로마서 5:10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
에베소서 1:4-5 4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오해 (6절)그리스도는 저주에 짓눌려 무너지셨다저주를 지셨지만 그 힘을 부수셨다. 십자가는 승리의 개선 마차가 되었다골로새서 2:14-15, 히브리서 9:14
골로새서 2:14-15 14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15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지 못하겠느냐
'지옥=무덤' 해석 (8절)지옥 강하는 '장사되어'의 반복일 뿐이다분명한 말을 흐린 말로 되풀이할 리 없고, 짧은 신경에 헛된 반복은 없다(논리로 답함)
림보·족장 해방설 (9절, 후대 전통)그리스도가 지하 감옥의 구약 성도들을 풀어 주러 내려가셨다근거 구절은 포로 해방에 관한 말씀이다. 영혼 감옥이라는 발상은 이야기에 불과하다. 죽음의 능력이 먼저 죽은 이들에게도 미쳤다는 뜻이다시편 107:16, 스가랴 9:11, 베드로전서 3:19
시편 107: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스가랴 9:11 또 너로 말할진대 네 언약의 피로 말미암아 내가 네 갇힌 자들을 물 없는 구덩이에서 놓았나니
베드로전서 3:19 그가 또한 영으로 가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시니라
순서 문제 제기 (10절)장사 뒤에 지옥 강하를 둔 것은 순서가 뒤바뀐 것이다보이는 고난을 먼저, 하나님 앞의 보이지 않는 고난을 나중에 적었을 뿐이다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대리 발언설 (11절)“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는 다른 사람들의 생각을 대신 말한 것이다개연성이 없다. 그분 마음 깊은 고뇌에서 나온 외침이다마태복음 27:46, 시편 22:1
마태복음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시편 22: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과장된 오해 (11절)그렇다면 하나님이 아들을 미워하셨다는 말인가아니다. 사랑하는 아들을 미워하실 수 없다. 미움받은 분이라면 진노를 가라앉히지도 못한다. 다만 형벌의 무게는 다 받으셨다마태복음 3:17, 이사야 53:5
마태복음 3:17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칼빈의 비판자들 (12절)영혼의 구원을 두려워하셨다는 말은 그리스도께 절망을 돌리는 모욕이다. 두려운 척하셨을 뿐이다복음서가 두려움을 보도한다. '척'은 회피다. 버림받은 느낌 속에서도 신뢰는 흔들리지 않았다요한복음 13:21, 마태복음 26:37, 마태복음 27:46
요한복음 13:2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심령이 괴로워 증언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 하나가 나를 팔리라 하시니
마태복음 26: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마태복음 27: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칼빈의 비판자들 (12절)그 자체로 악한 감정을 그리스도께 돌리면 안 된다그분은 죄 없이 시험받으셨다. 그분의 감정은 우리처럼 넘치지 않고 절제되어 있었다히브리서 4:15, 히브리서 2:17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브리서 2:17 그러므로 그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신실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속량하려 하심이라
칼빈의 비판자들 (12절)죽음은 두려워하셨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두려워하지 않으셨다그렇다면 죽음을 비웃는 범죄자보다 겁 많은 분이 된다. 피땀과 세 번의 기도는 보통 죽음 이상의 싸움을 보여 준다누가복음 22:43-44, 마태복음 26:39
누가복음 22:43-44 43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44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마태복음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아폴리나리스 (4세기 무렵)그리스도에게는 사람의 영혼이 없고 영원한 영만 있었다영혼이 없으면 순종할 마음과 의지도 없다. 그분의 영혼이 괴로워하신 것은 우리 영혼에 평안을 주시려는 것이었다요한복음 12:27
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단의론 (7세기 논쟁)그리스도에게는 의지가 하나뿐이다“면하게 하소서”와 “이를 위해 왔나이다”가 함께 있다. 신성의 뜻과 인성의 뜻은 구별된다요한복음 12:27-28
27지금 내 마음이 괴로우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 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러나 내가 이를 위하여 이 때에 왔나이다 28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하시니 이에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되 내가 이미 영광스럽게 하였고 또다시 영광스럽게 하리라 하시니
우편 해석 (15절)'우편에 앉으심'은 그리스도가 하늘에서 복을 누리신다는 뜻일 뿐이다통치권을 맡으셨다는 뜻이다. 자세보다 위엄이 핵심이다에베소서 1:20-22, 사도행전 7:55
에베소서 1:20-22 20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21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22또 만물을 그의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7: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히브리서 5:7 번역 (11절)'두려워하심'은 '경건하심'으로 옮겨야 한다말뜻으로도 사실로도 맞지 않는다. 두려움 속에서 기도하셨다는 뜻이다히브리서 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사도신경 저자 논쟁 (18절)사도들이 직접 썼는지가 먼저 확인되어야 한다저자보다 내용이 성경에 맞는지가 중요하다. 저자 논쟁은 무의미하다(논리로 답함)
📖용어
화목원수 관계였던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벽이 허물어져 다시 가까워지는 일.
속죄(보상)죄값을 대신 치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고 죄를 없애는 일.
대치(대속)그리스도가 죄인의 자리에 대신 서서 그가 받을 판결과 형벌을 받으신 일.
전가한 사람의 죄나 의가 다른 사람의 것으로 계산되어 옮겨지는 일.
아샴구약 제사법에서 죄를 위해 드리는 제물을 부른 히브리어로, '죄' 자체를 뜻함(개역개정 이사야 53:10의 '속건제물').
지옥 강하사도신경의 “지옥에 내려가사”. 칼빈은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와 버림받음의 고통을 영혼으로 겪으신 일로 풀이함.
림보구약 성도들의 영혼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머문다고 상상된 지하 장소. 칼빈은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봄.
우편에 앉으심왕이 대리 통치자를 곁에 앉히듯, 그리스도가 하늘과 땅의 통치권을 맡으셨다는 뜻.
아폴리나리스주의그리스도에게 사람의 영혼이 없었다고 본 4세기 무렵의 주장.
단의론그리스도에게 신성과 인성의 의지가 따로 있지 않고 하나뿐이라고 본 7세기의 주장.
💬청년의 삶으로
  • “또 같은 죄를 지었어. 하나님이 이제 나한테 질리셨을 거야.”

칼빈: 하나님은 화목 뒤에 사랑하기 시작하신 분이 아니라 먼저 사랑하셨다. 형벌은 이미 아들의 머리로 옮겨졌으니 남은 것처럼 떨며 살지 말라(3–5절).

  • “기도해도 아무 대답이 없어. 버려진 것 같아.”

칼빈: 그리스도가 그 버림받은 느낌의 맨 밑바닥을 먼저 겪으셨다. 그분은 그 속에서도 “나의 하나님”이라 부르셨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는 분으로 지금 우리 편에 계신다(11–12절, 히브리서 4:15).

  • “끊고 싶은 습관이 있는데(야한 콘텐츠, 충동구매, 연애 관계의 선) 의지로는 안 돼.”

칼빈: 그리스도의 죽음과 장사에 참여한 사람에게는 옛 사람을 죽이는 힘이, 부활에는 새 생명으로 사는 힘이 주어진다. 이것은 본받기만이 아니라 이미 받은 능력이다(7, 13절).

  • “부모님 장례를 치르고 나니 죽음이 너무 무섭다.”

칼빈: 그리스도는 죽음과 그 공포와 직접 싸워 이기셨다. 우리의 왕이 이미 삼키신 것이니, 우리는 더 이상 그 앞에서 종처럼 떨지 않아도 된다(7, 11절, 히브리서 2:14-15).

  • “예수님도 믿지만, 솔직히 스펙·연봉·사주 같은 데서도 안심을 찾게 돼.”

칼빈: 구원의 모든 조각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 주로 그리스도를 보면서 일부를 딴 데 두는 것도 그분의 풍성함을 모르는 불신이다(19절).

✅이 편의 결론
  • 하나님의 진노는 사실이지만, 그 진노를 해결하신 것도 하나님의 먼저 된 사랑이다.
  • 그리스도는 평생의 순종과 법정의 정죄, 십자가의 저주, 죽음, 영혼의 고통까지 모든 지점에서 우리 자리에 대신 서셨다.
  • 부활은 죽음의 효력을 우리에게 살아 있게 하고, 승천과 우편에 앉으심은 지금도 우리를 변호하고 다스리고 지키시는 일이다.
  • 심판주가 바로 우리의 구속자이시므로 믿는 이는 심판을 두려움이 아니라 약속의 성취로 기다린다.
  • 그러므로 구원의 어떤 조각도 그리스도 밖에서 찾지 않는다.

빛다방 학습 노트 · 존 칼빈 『기독교강요』(생명의말씀사)의 논증 구조를 우리 말로 정리한 것입니다(원문 미전재). 성경 장절은 개역개정 기준입니다. youtube.com/@빛다방